이 후보가 '안보' 논할 자격 있나?
보복과 응전은 피의 악순환일 뿐이다
권태윤 기자 bigmankty@yahoo.co.kr
서해교전 사태와 관련해 "보복과 응징을 해야 한다"거나 "햇볕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따위의 말들이 많다. 하기야 아까운 젊은 생명이 죽거나 다친 일은 누가 뭐래도 참으로 비통한 일임에 틀림없으니 흥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금이야 옥이야'하며 기른 자식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온 기막힌 현실 앞에서 전사자 부모들이 느꼈을 비통함이란 자식을 키워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비통함과 분노에도 불구하고 정당과 정부가 이성을 잃고 흥분해서는 안된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괴롭고도 슬픈 현실에도 불구하고, 어떤 대응이 결국 우리 모두를 위해 바람직한 일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 이유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순간의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대응이 자칫 민족 전체의 비극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참으로 끔찍한 위험성 때문이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서해교전 사태가 발발한 뒤 곧바로 "철저한 응징과 보복"을 주장했다. '단호한 응징'만이 그와 같은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길이란 주장이다.
그러나 일면 그럴 듯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런 주장은, 애석하게도(?) 지극히 단세포적인 발상에 불과하다. 왜냐면 '응징'은 지극히 상대적이며 그 끝이 없다는 당연한 역사적 교훈 때문이다. 응징은 상대의 또 다른 응징을 자연적으로 잉태하는 것이며, 우리나라에 있어서 특히 그 피해는 고스란히 힘 없고 돈 없는 사람들만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서해교전사태와 관련해 이 후보의 '응징'이니, '안보'니 하는 소리를 들은 주변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한마디로 "너나 잘해라"라는 것이었다. 그 말은 물론 이 후보의 두 아들이 체중미달이라는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은 사실을 비꼬는 표현이다.
자기 아들은 군대 안 보내 놓고 '안보'니 '응징'이니 하는 소리를 하고 있으니 가소롭다는 것이다. 마치 세금 안내고 탈세한 사람이 "탈세한 사람을 철저하게 추적해 응징해야 한다"고 열을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이는 대선후보인 이회창 후보가 향후 정권을 잡더라도 군의 통수권자로서 심각한 결함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서해교전 사태와 관련해 조선일보와 한나라당 측에서 주장하는 햇볕정책 전면수정, 금강산관광사업 중단, 대북지원 중단 등의 조치는 사태의 해결을 위한 방안이 될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사태를 꼬이게 하고 남북관계를 경색시키는 하수(下手) 중의 하수일 따름이다.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보복과 응징의 대립상황들을 놓고 볼 때 그것이 결코 개선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런 식의 반복적 보복은 더 많은 생명과 재산의 손실만을 가져올 뿐이라는 것은 오늘의 역사가 너무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갈등과 대립을 푸는 길에는 수많은 방해요소들이 즐비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수십 년 묵은 갈등과 충돌의 앙금이 그렇게 쉽게 풀릴 것이라면, 이 세상은 그야말로 진즉 유토피아가 되었어야 했다. 한민족 한 핏줄인 남북이 서로의 가슴에 총질을 하고 못을 박은 아픈 상처를 씻는 일에도 더 많은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하다.
서로가 이해하고 상대방이 행동하는 방식에 걸맞게 대응한다면 애당초 남북간의 대결과 대립상황은 해결되었어야 옳다. 문제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고, 이젠 그런 방식을 선택해서는 결코 답이 안나온다는 점이다. 서로가 공멸하는 길을 원하지 않는다면, 보다 큰 승리를 위한 최선의 방법은 '그래도' 좀더 참고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다.
물론 남북간 문제해결을 위해 무작정, 무한정의 인내만 계속하자는 것이 아니다. 예수가 한 것처럼 "오른뺨을 맞았어도 왼뺨을 내주라"는 것이 아니다. 부분과 전체를 철저하게 분리해서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사건을 전체적 정책과 연계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런 비유가 적당할지 알 수 없지만, 만약 히딩크 감독이 자신을 비난하는 우리의 언론에 맞대응해 "기분 나쁘다"며 보따리를 싸버렸다면 지금과 같이 온 국민을 기쁘게 만든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지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히딩크는 "세계를 놀라게 할 성적을 내겠다"는 크고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에 그런 비난을 묵묵히 견뎌냈고 결국 자신의 결정이 옳았음을 온 세상에 입증해 보였다.
우리에겐 남북한이 전쟁이 아닌 화합과 평화적인 방법으로 민족통일을 이룬다는 크고도 분명한 목적이 있다. 이 목적을 이뤄내는 과정에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고, 그런 문제들이 목적마저도 흔들리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목적과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따라서 이번의 서해교전 사태를 정부의 통일정책과 연계해 응징과 보복을 주장하고 세계적으로도 인정하고 공감하는 햇볕정책의 수정을 부르짖는 것은 한마디로 눈앞의 현실에 정신이 팔려 궁극적 목표를 상실해도 좋다는 지극히 무모하고 안일한 발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더욱 큰 염려는 대응이니 응전을 주장하는 그들이 과연 전쟁이 가져 올 엄청난 재앙을 온몸으로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가뜩이나 제 자식 귀한 줄만 알고 군 면제를 받기 위해 갖은 수단방법을 동원하고, 아예 외국국적을 얻기 위해 출산원정마저 마다않는 수많은 특권층들이, 과연 전쟁이 일어났을 때 어디에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정말 아찔한 일이다. 과거 6·25동란 때도 특권층들이 남으로 외국으로 도망가기 바쁠 때 끊어진 한강철교를 넘다 목숨을 잃은 건 힘 없고 '빽'없는 서민들이었다.
서툰 응징이 더 큰 보복을 불러오고 그런 악순환이 결국 전면전으로 비화된다면, 우리의 특권층, 특히 본인이 군대 안거나 자식 군대 안 보낸 돈 많고 권세 높은 우리 특권층은 너도나도 도망가기 바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런데도 전쟁 운운하는 무모한 사람들이야말로 진정 과격분자요, 내 목숨 아까운 줄만 알고 남 목숨 하찮게 여기는 족속이다.
큰 목적과 원칙을 유지하는 선에서 사건을 분리해 생각하고 대응해야 하는 것은 결국 힘없고 약한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어설픈 전쟁선동에 현혹되어서는 안 되는 가장 큰 이유가 그것이다. 이번 서해교전 사태를 통해 성급한 대응전을 부추기기보다는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궁극적인 방지책을 강구하는 것이 진정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현명한 사람들의 유일한 대응책이 될 것이다.
2002/07/02 오후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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