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마을의 히딩구
이세형 기자 eelhs@hanmail.net
어떤 마을이 있었습니다.
이 마을의 아이들은 공부를 어느 정도 하는 편이었지만, 아주 잘 하지는 못했습니다.
이웃마을 아이들과 시험을 치르면 그럭저럭 점수가 나왔지만, 온 나라의 아이들이 모이는 월드껌 수능대회만 나가면 점수가 형편없이 나왔습니다. 4년마다 열리는 이 월드껌 수능대회에서, 고작 50점을 받은 것이 여태까지의 최고점수로, 전체 32명 가운데 29등 또는 30등을 하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동네 주민들의 소원은 제발 월드껌 수능에서 한 과목만이라도 100점을 받아보는 것이었습니다.
1998년 월드껌 수능이 다가오자, 이 마을 주민들은 이 마을 출신으로 도길이라는 마을에 가서 공부하고 돌아 온 선생님을 과외 선생님으로 붙여 열심히 준비하였지만, 결과는 역시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이 마을 주민들은 고민 끝에 고액과외라도 시켜서, 자기 동네에서 실시되는 2002년 월드수능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얻어보기로 결정하고, 마침내 월 1만원이라는 거액을 주기로 약속하고 1998년 월드껌 수능대회에서 자기동네 아이들이 4위를 하도록 이끈 너덜난도라는 마을 출신의 히딩구라는 과외 선생을 초빙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히딩구 선생을 모시고 고액과외를 시작한지 처음 몇달간은, 도대체 성적이 올라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히딩구 선생은 아이들에게, 시험을 어떻게 하면 잘 볼 것인지는 가르치지 않고, 시험볼 때 지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팔펴 굽히기, 아랫몸 일으키기, 왕복달릴때까지 쓰러지기...이런 것만 가르쳤으며, 또 한 아이가 어느 한 과목만 맡아서 잘하기보다는, 모든 아이들이 모든 과목을 잘해야 한다며, 이것 저것 섞어서 멀티과목이란 걸 가르치는 바람에 도대체 아이들의 시험실력이 향상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몇 번의 모의고사에서 다섯과목이나 0점을 받는 일이 반복되자, 마을의 소식지를 만드는 일부 어른들이 나서, 이제는 제발 시험을 잘 보는 방법, 즉 고개 움직이지 않고 눈알돌리기, 눈치채지 않게 손바닥 뒤집어 보기, 볼펜속 컨닝페이퍼 빨리 꺼내기, 앞자리 아이 답안지 훔쳐보기, 떨어뜨리지 않고 연필 굴리기 같은 최신 컨닝 기술을 가르쳐 주라고 핀잔을 주었고, 어떤이들은 히딩구 선생이 아이들을 가르친 이후 5과목에서 0점받은 일을 빗대 '오빵점'이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히딩구 선생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팔펴 굽히기, 아랫몸 일으키기, 왕복 달릴때까지 쓰러지기...등을 가르쳤고, 모든 아이들에게 모든 과목에 떨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라고 가르쳤습니다.
마침내 2002년 삐빠 월드껌 수능대회가, 이웃동네인 니뿡이란 동네와 공동으로 개최되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이번에야 말로 기필코 한 과목 이상에서 100점을 받고, 반드시 16등안에 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드디어 폴란드어 과목시험이 치러지는 날, 많은 동네사람들이 시험장에 찾아가 열렬히 응원전을 펼쳤고, 시험장에 들어가지 못한 50여명의 동네사람들은 시험장밖에 모여 응원을 하였습니다. 특별히 이날 아침은 온 동네 사람들이,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게 해주는 약효가 있다고 알려진 "계~란냉국"을 먹었으며, 또한 많은 엄마들이 비록 가계부가 적자로 기록되더라도 아이들을 끝까지 지원하자는 의미에서 "Be the Reds"라는 글자가 새겨진 붉은 옷을 입고 응원전을 펼쳐, "붉은 엄마"라는 명칭이 생겨났습니다.
이렇게 온 동네 사람들이 응원을 벌인 가운데 마침내 폴란드어 과목에서 100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날 밤 많은 동네사람과 붉은 엄마 응원단은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동네 골목을 쏘다니며 "계~란냉국", "오! 백점 별꼴이야!"등의 구호를 외쳤습니다.
사기가 충천한 이 동네 아이들은, 며칠 후 실시된 미국어 시험은 50점밖에 못 받았지만, 적어도 5등안에는 들어야 100점을 받을 수 있다는 그 어려운 포루투갈어 시험에서, 다시 당당하게 100점을 받는 놀라운 실력을 발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합계 250점으로 당당히 16등안에 들게 되었습니다.
붉은 엄마 회원은 점점 늘어갔고, 포루투갈어 시험 당일에는 무려 270여명의 동네주민들이 골목에 모여 응원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히딩구 선생은 사람들에게 영웅대접을 받기 시작했고, "나는 아직도 점수에 굶주린다", "오늘밤에는 와이프와 있겠다" 라는 히딩구 선생의 말이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날 시험장에 직접 나가 아이들을 응원했던, 이 마을 이장 김대준옹도, 감격에 겨워 "오천년 마을 역사상 가장 기쁜 날이다" 라는 말을 하였는데, 그 말을 들은 일부 주민들은 약 50년전에 이웃 니뿡마을에, 마을을 상징하는 대극기를 빼앗겼다 되찾은 것보다 과연 더 기쁜 일인지 의아하게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만, 그걸 따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어쨌든 이 마을 아이들은 8등이내를 뽑는 이탈리아어 과목에서, 시험종료 약 2분전까지 한문제도 풀지 못했지만, 종료 2분을 남기고 50점짜리 문제를 푼데 이어, 시험지를 제출하러 나오면서 나머지 50점짜리 문제를 풀어, 이번 대회 들어 가장 극적으로 100점을 받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일찌기 1966년에 빵국이란 마을에서 치뤄진 월드껌 수능대회에서, 형제마을인 북쪽의 부칸마을 아이들이 이탈리어에 100점을 받은 역사가 있었는데, 이번에 우연히도 똑같이 이탈리어 과목에서 100점을 받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4등이내를 뽑는 스페인어 시험...마을 골목길에는 약 450여명이나 되는 많은 마을사람들이, 붉은 엄마들을 중심으로 응원전을 펼쳤습니다. 마을 아이들은 연이은 시험에 많이 지쳐 있었지만, 이를 악물고 시험지를 응시하였습니다. 히딩구 선생이 집중적으로 체력단련을 시킨 덕분일까요? 끝까지 참고 견딘 마을 아이들은 시험종료와 동시에 연필을 굴려, 정확하게 정답을 찍어 100점을 받음으로서, 당당히 4등안에 들어가는 놀라운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이제 한 과목만 백점을 받으면, 대망의 금빛 삐빠 월드껌을 앞에 놓고 치르는 마지막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독일어 시험...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이들은 이제 남아있는 힘이 거의 없었습니다. 눈은 감기고, 허리는 비비 꼬이고, 답을 쓰는 손에 힘이 떨어져 연필끝이 마구 떨렸습니다. 750여명이나 되는 마을사람들이 골목길에 나와 열심히 응원한 보람도 없이 결국 0점을 받고야 말았습니다.
너무 큰 꿈을 꾼 것일가요?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꿈은 이미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3-4등을 가리는 터키어 시험에서 다시 0점을 받아 4등에 머물렀지만, 붉은엄마 응원단을 비롯해 모든 마을 주민들은, 그래도 4등이 어디냐며 환호성을 올렸습니다.
히딩구선생은 온 마을의 영웅이 되어 융숭한 대접을 받았고, 시험에 참가했던 아이들은 3만원이라는 거금을 상금으로 받았으며, 가는 곳마다 동네꼬마들이 따라다니며, 딱지에 이름받기 경쟁이 벌어질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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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을주민들이 영웅으로 받들던 히딩구선생은 자기 마을로 돌아갔습니다. 붉은엄마 응원단도 월드껌 수능대회가 끝난 것을 못내 아쉬워하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우리도 하면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가졌고, 그 뜨겁던 응원열기를 모아 마을융성에 힘을 쏟자고 말하고 있을 때, 마을 앞바다에서 망둥이를 잡던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부칸마을사람들과 돌멩이를 집어던지는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이 일 때문에 마을을 다스리던 경로당 사람들은 다시 싸움을 시작하였고, 소식지를 만드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만드는 소식지에 온통 다른 쪽을 욕하는 내용들을 채워 이집 저집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원래의 마을모습을 되찾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