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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의 기본


BY 글쎄요. 2002-07-14

인간이 해야할 기본 도리라는 것이 무엇일까 한번 생각해보고 싶다.
난 며느리 노릇 이 십 년이 넘었지만 시어머니 생일상 한번 차린 적도 없고, 제사에 별로 참석해 본 적도 없고, 명절에 시댁에 가기도 하고 못가기도 하고, 갔어도 교통 혼잡을 핑게로 친정에 들러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이런 글을 올렸더니 기본이 안된 며느리라고 비난이 쏟아졌다.
며느리로서의 기본이 무엇일까?
시어머니의 생일상을 차리고 제사음식을 준비하고 명절에 손님 대접하는 것은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은 듯 하다.
난 그런 일들이 며느리의 기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시어머니의 생일상을 차리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울 남편도 장모인 내 어머니의 생일상 차릴 생각같은 것은 하지 않으니까...
울 어머니 아버지 생일에 전화할 생각도 하지 않는 남편하고 사는 내가 시부모 생일에 쫓아가서 생일상을 차려내고 마음이 편할 만큼 자신이 너그러운 사람이 아님을 나는 안다.
그래서 시어머니 생일상을 차리고 남편과 불화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차리지 않고 서로 불평하는 마음없이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사위가 생일상을 차리지 않는다고 울 부모가 불평하지 않듯이 울 시부모도 며느리가 생일상을 차려주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제사도 그렇다.
난 날 끔찍히 사랑해 주던 내 할아버지 제사에도 참석하지 못한다.
난 제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이고 아이들 키우고 살다보니 그런 날 까지 신경쓰며 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내가 본 적도 없는 시할아버지의 제사에 참석해서 음식을 장만하는 것이 내 기본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울 남편은 내 할아버지의 제사가 언제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왜 시할아버지의 제사 음식을 장만해야 한단 말인가?
명절도 그렇다.
시댁 어른만 어른이 아니다.
내게 더욱 중요한 것은 내 부모다.
시댁을 먼저 들르는 것만 해도 난 많이 양보하고 사는 것이다.
그럼 난 기본이 안 된 며느리니까 시집 식구들하고 불화하고 살 것 같은데 전혀 아니다.
그 반대로 난 시집 식구들에게 욕심이 없고 착한 며느리로 알려져 있다.
이 십 년을 넘게 살면서 시부모에게 야단 맞은 적도 없고 시누나 시동생, 동서들과는 항상 사이가 좋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우선 울 시어머니의 자식 사랑이 중요한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울 시어머니는 자식이라면 무조건 감싸고 돈다.
며느리도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잘 잘못을 따지기보다 무조건 감싸고 주위의 비난으로 부터 방패 역할을 하신다.
난 울 시어머니가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라고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그 무조건적인 사랑 앞에서 그저 감탄할 수 밖에 없다.
나도 물론 자식 역할을 하려고 한다.
시어머니가 나와는 다른 생각을 하고 그것이 내 맘에 안들어도 그냥 받아들인다.
내 부모에게 하는 것보다 더 잘하려고도 하지 않지만 덜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난 며느리와 시집 식구와의 관계에서 기본은 서로를 존중하고 다른 가치관도 인정하고 설령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더라도 사랑으로 감싸고 따뜻하게 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일이나 제사나 명절에 대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잘 잘못을 따지고 비난하는 것은 오히려 불화를 야기하고 가족의 근간을 뒤 흔들어 이혼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며느리와 시집 식구의 관계에서 기본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