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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이름으로 낸 서글픈 가게


BY 나의복숭 2002-08-26

imf이후 사는건 누구나 다 빡빡하고 힘들다.
있는 사람은 있는 사람데로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데로..
나역시 예외는 아니다
겉보기엔 나름데로 열심히 산다고
잘 웃고 낄낄거리며 살고 있지만
한꺼플만 깨고 들어가면 비참함 일보 직전이다.
내 사정 남이 어찌 다 알랴.

언젠가 내 후배가 하는말.
'언니는 없다 없다 그래도 할꺼 다하고
없는 사람 같질 않아..."
그소릴 듣고서 생각했다.
아 내가 배고파 죽어도 남들에겐
배터져 죽었단 소릴 들을수도 있겠구나라고...
외견상으로는 작고 후지지만 아파트에 살고 있고
차도 있고 운동도 하고
이곳 저곳 여행도 자주 다니니
조금은 배부르게 보였나보다.
그러나 내 삶의 고단함과 슬픔을 나 아니고
그 누가 이해하며 알수있어랴.

저승사자같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온 집안의 기물에 딱지를 팍팍 붙이고난후
내 인생은 절망 바로 그 자체였다.
실타래가 엉키듯 꼬이기만 한 현실속에서
한번도 와본적없는 이곳 의정부에 올수
있었든건 순전히 남편 친구의 배려때문였다.
돈은 없지만
인덕이 너무나 많음에 언제나 감사를 하고 있다.
내가 여유롭게 지낼때는 실감을 못했지만
없어보니 그건 행운였고 축복였다.

새차를 사고선 타든 헌차를 고모인 내게
넘겨주면서 내내 미안해하는 내 조카넘.
신용불량자로 찍혀 카드하나 만들수 없는
우리 부부에게 아쉬울때 사용하라며
신용카드를 건내주든 시동생.
수확을 할때마다 잡곡이랑 비싼 양념을
푸짐하게 보내주는 친척들.
내가 갖고 싶은걸 용케도 알고 보내주는 내 후배들.
만날때마다 한번쯤 내가 낼려고하는 밥값 차값을
절대 못내게 하는 내 친구들.
뭐든 나를 위해 사주고 싶어하고 해주고 싶어하는
지인들.
언제나 사랑으로 나를 아껴주는 내 팬들.
이 사람들이 없었다면 내 생활은 얼마나
목말랐으며 힘들었을까?
돈만 재산이 아니었다.
돈으로 계산할수없는 내가 가진 인덕도 엄청난
재산였다.

또 있다.
내 사랑하는 아들.
부잣집 아들에서 졸지에 가난뱅이 아들로
전락하여 아르바이트를 하는 신세가 됐지만
현실을 인정하고 씩씩하게 잘 헤쳐나가는 넘이다.
집도 절도 없이 빈 털털이로 의정부로 와야할때
다니는 학교를 휴학하고 군대를 가면서
'걱정마세요. 제가 제대할때쯤 집은 원상복귀가
되어 있을꺼예요'
그러나 제대할때 원상복귀는 커녕
집은 더 어려워져 있었다.
안스러워하고 죄지은듯 미안해하는 내게
왜 한가족인 아들에게 그런맘을 갖느냐고 되묻든 넘.
나이많은 어미는 맨날 옛날 환상에서 못깨어나
사모님 시절을 그리워하지만
그넘은 속으론 어떤지 모르지만 옛시절을
절대 입밖에 낸적 없고 그리워한적 없었다.
그때는 그때데로 좋았고 지금은 지금데로 좋다며...
어미보다 더 철든넘 앞에서 어찌 입술을 깨물지
않을수 있으랴.

패기만만하든 남편이 무능력하게 됐을때
생활은 내 책임이었다.
글을 쓰서 돈을 벌었고
조금씩 알바도 하고 그랬다.
주위 많은분들이 도와주셨고
언제나 힘들때 사심없이 손내밀어 주셨다.
올해들어 더 힘든일이 많이 생겼다.
그래도 내가 넘어야할 산이였기에
씩씩하게 잘 헤쳐나간다.
좌절은 곧 절망이기에...

밑천이 없으니 그럴듯한건 못하고
그냥 배운 도둑질이라고 인터넷서 판매하는
수입 화장품 쇼핑몰을 열었다.
이야기는 잘 하면서도
보험 세일즈같은 남에게 권하는걸 잘못하는 성격은
아직 덜 답답해서 그런게 아니고
날 생각해주는 사람들에게 무언의 폐가 되는거
같아서 차마...
후배가 열심히 도와주는 덕분에
열었는 화장품 쇼핑몰인데
잘될지 안될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다.
내이름으로 낼수없어 딸이름으로 낸 서글픈 가게.
여자 팔짜 뒤웅박 팔짜라드니 늙그막에
이 무슨 꼴인가 한숨도 나오지만
그러나 어쩌랴.
삶이란 이런것인걸....


아컴님들.
제가 쇼핑몰을 열었답니다.
부담 갖지마시고요
그냥 한번씩 오셔서 지켜봐주세요.
혹 필요하신거 있슴 사기도 하시고요.
이것도 광고 맞죠?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주소: www.skincare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