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2,359

윤민석씨가 이회창 후보께 드리는 글


BY dumani 2002-10-02

윤민석씨가 이회창 후보께 드리는 글

일명 '이회창가'로 널리 알려진 '누구라고 말하지는 않겠어'라는 노래와 관련해 선관위와 한나라당 측으로부터 고소.고발된 윤민석씨(송앤라이프 대표)가 9월 30일 2시 서울지검에서 조사를 받는다. 서울지방검찰청으로부터 전화로 검찰출두를 명받은 날는 9월 16일~19일 사이지만, 변호사와 일정을 맞추느라 조금 연기돼 30일로 확정된 것.

송앤라이프측에서는 정식으로 '출석요구서'를 보내라고 요구했으나 서울지검에서는 전화통지로도 충분한 법적 효력이 있다며 이를 거부했다는 후문이다.(윤씨는 지난 5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로부터 건네받은 출석요구서를 홈페이지 X-file란을 통해 네티즌들에게 전면 공개한 전력(?)이 있다.)


윤씨에 대한 기소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검찰조사가 본격화됨에 따라, 송앤라이프측에서도 적극대응을 해 나가기로 방침을 정했다. 송앤라이프가 공지사항을 통해 천명한 대응의 핵심은 문제가 된 '누구라고 말하지 않겠어' 노래를 널리 홍보한다는 것. 이번 사안과 관련, '누구라고 말하지는 않겠어'라는 노래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를 위해 송앤라이프는 우선 신문광고를 내기로 했다. '누구라고 말하지는 않겠어'라는 노래의 악보와 가사를 신문광고란에 게재해 보다 많은 이들에게 그 내용을 알리겠다는 취지에서다.신문광고에 들어가는 경제적 부담은 후원자들과 시민들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충당하기로 했다.(후원금을 보내시려는 분들은 <국민은행 088-21-0648-424 예금주 송은영> 앞으로 보내시면 된다.)


또한 이 노래가 수록되어 있는 'Songnlife Vol 1&2' 카셋트 테이프를 오프라인에서 주변에 두루두루 전해주기를 당부하는 한편,온라인을 통해서도 송앤라이프 링크와 노래 소개를 여러 사이트 게시판에 알려 주기를 요망했다. (카셋트테이프를 구매하시려는 분들께서는 홈페이지 내 공지사항 오른편 배너그림을 클릭하면 된다.)


검찰출두 직전 윤민석씨는 송앤라이프에 올린 공지의 글을 통해 "항상 든든하게 송앤라이프를 지켜주실 분들이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힘이 넘쳐 난다"고 후원자들에게 사의를 표하고, "굽힘없이 당당하게 맞서 나갈 저희들의 모습을 앞으로도 계속해서 지켜봐 주시고 함께 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면서,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동봉했다. 다소 길더라도 전문 그대로 소개한다.





검찰의 출두요구에 응하며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님께 드리는 글


- 이 땅에서 살아 가야하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


이후보님.먼저, 바쁜 정치일정과 대선준비로 이런 글은 읽을 시간조차 없으시겠지만, 부디 내키지 않으시더라도 끝까지 읽어주시길 감히 부탁드립니다.


혹 제가 이런 글을 쓰게 된 이유를 이후보님 자신은 전혀 모르고 계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저의 소개를 먼저 드리겠습니다. 물론, 이후보님이 대표로 있는 한나라당에는 과거 5, 6공 시절부터 안기부나 검찰출신의 공안전문가 분들이 많이 있어서 저에 대해 알아보시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겠으나 그래도 간략히 밝히자면, 저는 민중가요작곡가 윤민석 이라는 사람으로, Songnlife.com 이라는 사이트의 대표로서 'Fucking U.S.A' 라는 노래를 비롯하여 많은 민중가요를 발표해오고 있는데, 지난 4월에 ‘누구라고 말하지는 않겠어’ 라는 노래를 저희 사이트에 발표하였다 하여 이후보님이 총재로 있는 한나라당의 선대본부장 신경식씨에 의해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위반’이라는 혐의로 고발을 당한 상태에서 검찰의 출석요구를 받아 이에 응하며 저의 의견을 밝히고자 합니다.(그리고 혹 의심하실까봐 먼저 말씀드리는데 저의 고향은 경상도입니다.)


사실 저는 이후보님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이후보님과 일면식도 없는 제가 엘리트가문출신의 최고위급 정치인이자 현재 가장 유력한 대통령후보인 이후보님과 관련된 일을 알 수 있는 방법이란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그저 언론을 통해 보고 듣는 한정된 내용이 고작이지요. 하여, 이후보님에 대한 저의 판단이 부정확할 가능성도 있지만, 적어도 제가 언론보도를 통해 접한 이후보님과 관련한 내용들을 근거로 판단할 때, 저는 이후보님이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는 일에 대하여 깊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돈많고 힘도 있어 국적까지도 선택할 수 있는 소수의 특권층을 제외한 저 같은 무지렁이 서민들은 그 소수의 특권층에 의해 결정되는 나라와 민족의 운명에 따라 개인의 운명이 크게 좌우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역사 속에서 우리는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의 삶이 여지없이 파괴되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참으로 자주 이후보님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법과 원칙을 이야기하시더군요. 맞습니다. 지금 이 사회에 시급히 필요한 것이 법과 윈칙을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법도, 그 어떤 원칙도 상식의 범주를 벗어나서는 안됩니다.


온 민족이 일제의 총칼아래 신음할 때 민족을 배신하고 일신과 가문의 영달만을 꾀했던 친일파는 마땅히 처벌되어야하고, 항일독립군의 후손들은 칭송과 예우를 받아야 하고, 그 어떤 이유로도 부정부패와 비리는 용납될 수 없기에 진실을 낱낱이 파헤쳐 그 죄과를 물어야하고, 분단된 나라는 통일되어야 하며, 이 나라에 주둔한 외국군대에게는 자주적이고 당당하게 대할 수 있어야 하고, 학벌과 지역연고가 아니라 능력으로 평가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어야 하고, 사회적 약자나 소외 받는 이들과 모성이 보호되어야 하고, 국민의 의무와 권리는 누구에게나 공평히 나누어져야 하고, 다양한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며, 제 국민에게 총칼을 휘두른 쿠데타와 학살의 원흉들은 감옥에 가야 한다는 것.... 이런 것이 상식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모두 헌법에 명시된 내용들이지요.(하지만 여지껏 우리는 불행하게도 단 한 번도, 이러한 상식이 제대로 구현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상식의 최소한의 강제가 법이며, 만인은 이 법 앞에 평등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고, 이 법과 원칙을 굳건히 세워 좋은 나라를 만들어서 후대에게 물려주는 일 또한 우리가 이미 교과서에서 배운 진정으로 고귀한 상식이며, 이러한 상식을 지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양심입니다.


하지만 이후보님이 역설하는 그 법과 원칙에는 이와 같은 상식이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가진 자들과 특권층의 이익을 대변하고, 사회적 약자나 정치적 반대자를 공격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법,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마음대로 바뀔 수 있는 원칙, 민족과 서민의 이해보다는 미국과 기득권층과 수구세력의 입장을 대변하여 평화통일에 적대적이고 위압적인 황제의 모습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제가 이렇게 판단한 근거자료는 이미 ‘누구라고 말하지는 않겠어’ 라는 노래를 발표할 때 첨부하였던 노래이야기에 적시하였으니 궁금하시다면 참고하십시오. 사이트 주소는 "http://www.songnlife.com" 입니다. 혹 필요하시다면 따로 송부하겠습니다.)


만약 이후보님이 ‘동네 이장선거’나 ‘동창회장 선거’에 출마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저의 생각에도 불구하고 굳이 제가 나름의 귀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누구라고 말하지는 않겠어’와 같은 노래를 만드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또 만약, 명문귀족양반가문출신만이, 현재 가장 힘있는 정치인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 당연히 이후보님 앞에 다른 후보들은 명함도 못 내밀겠지요.


하지만 제가 살아야 하고 또 제 아이가 살아갈 수밖에 없는 21세기 이 나라의 대통령이, 이조시대 왕의 자리가 아닌 다음에야 출신성분이나 학력 따위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참정권을 가진 국민으로서 나름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그에 대한 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천부의 인권이자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라고 믿기에, 노래의 상품화보다는 사회적 기여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민중가요작곡가로서 보다 많은 이들에게 판단의 근거를 제공하고 알려서, 이 나라의 다음 지도자를 선택하는 데 조금이나마 참고와 도움이 되고자, 판단의 과정과 결과로서의 제 생각을 노래로 표현한 것이 바로 ‘누구라고 말하지는 않겠어’ 라는 노래입니다.


그것은 마치 이후보님의 당에서 어떤 사안에 대해 나름의 논평을 내고, 수많은 신문이 시사만평을 하거나 사설을 싣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이 노래가 죄가 된다면 기간의 많은 논평과 사설, 칼럼이나 시사만평 또한 단죄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겠지요. 또한 저는 이 노래에서 제목처럼 노래의 소재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고, 언론에 보도된 기사를 노랫말로 쓴 것인데 도대체 어떤 부분이 위법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그 노래를 들어보기는 하셨는지요....


사실 아직도 반공, 반북의 냉전이데올로기와 지역감정의 망령이 떠돌고 최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해야하는 선거라는 장치 속에서는, 이후보님과 관련하여 작금에 제기되고 있는 비리나 의혹들이 만에 하나 사실로 드러난다고 해도 오히려 이후보님의 지지자들은 똘똘 뭉칠 것이고, (92년 대선 직전에 부산에서 있었던 ‘초원복국집사건’을 기억하고 계시겠지요) 지지율은 올라 갈 것이며, 정치를 혐오하는 젊은 세대들은 선거를 외면할 것이므로 이후보님이 대통령의 권좌에 오르는 일은 여론조사에서 보여지듯이 거의 확실한 듯 합니다.


제 주위의 지인들 조차 제게 이후보님이 대통령이 되면 또 한 번 감옥에 가게되는 것 아니냐고 걱정스레 물어오고, 저또한 이후보님에 대해 치명적인 폭로를 한 어떤 사람이 한나라당국회의원들에 의해 뒷조사를 당하고 인면수심의 짐승으로까지 묘사되는것을 보면서, 저도 그 대상에 포함되면 감옥살이는 차치하고라도 어린 시절의 치기 어린 옛사랑의 기억마저 들추어져서 난도질당하고, 졸지에 빨갱이나 파렴치한으로 매도되어 순식간에 천하에 몹쓸 놈이 되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섬뜩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후보님의 너그러운 용서를 구하는 대신 위의 노래에 이어, 이 글을 드리는 것은, 더 이상 제가 옳다고 믿는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고 제 딸아이의 눈망울 앞에 부끄러워지는 제 자신을 방치하는 일이 제게는 이 싸움의 힘겨움보다 더 힘들고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가 지난 8,90년대에 군부독재 정권에 항거하는 민주화투쟁에 나서게된 것이 무슨 크고 결연한 의지와 각오가 있어서라거나 제가 대단히 의로운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단지 양심의 명령을 외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듯이, 적지 않은 세월이 흐른 지금, 한 아이의 아빠이자 가장이 된 처지에서, 어쩌면 아버지나 남편으로서는 철없고 무책임할 수도 있는 이 같은 일을 하게 된 것도, 제 아이에게 능력 없는 가난한 아버지가 될 수는 있어도, 부끄러운 아버지가 될 수는 없다는 내 안의 양심의 소리를 더 이상은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청년의 때, 87년 그 폭압의 시대의 어느 날, 밤새워 만든 유인물을 배포하기 위해 품속에 숨기고 새벽거리로 나가며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저에게 다시 한 번 힘을 주고 용기를 내라 명령하던 나의 양심... 하지만 흐르는 세월 속에서 안락에 길들어져 가는 동안 내 마음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나 스스로도 짐짓 모른 채 하려고 애쓰는 사이 점점 거북살스러워져서, 이젠 내게서 영영 떠나간 줄 알았던 그 양심이라는 놈을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지금, 제 아이의 눈 속에서 다시 보았기 때문입니다.


훗날 제 아이가 자라나, 어떻게 이후보님 같은 사람이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느냐고, 그 때 아빠는 무얼 했느냐고 물어올 때, 그 초롱한 눈망울 앞에서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이나 하거나 가서 공부나 하라고 윽박지르는 그런 아버지가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제 딴에는 옳은 일 한답시고 돈도 잘 못 벌어서, 딸아이에게 먹일 분유를 고르면서도 일 이천원 더 비싸고 좋아 보이는 분유 앞에서 천원짜리 지폐를 만지작거리며 주저해야 하고, 얻어다 입히는 옷가지 몇 개에도 미안함에 목이 메는 못난 아빠이기에, 양심을 따라 사는 일이 죄가 되지 않는 아름다운 통일세상을 제 딸에게 물려주고 싶은 저의 마지막 꿈만은 죽어도 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후보님.


어쩌면 저와 같은 일 개 서민이 이미 원내 제 1당의 총재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이후보님에게 맞서는 일이란, 철수레를 멈추려는 사마귀같이 보잘 것 없고 부질없는 일이어서, 결국 제 노래와 글로 인해 또 다시 감옥에 가게되어 아직 돌도 채 지나지 않은 제 딸아이와 헤어져야 하는 나쁜 아빠가 되어야 할런지도 모르고, 사랑하는 아내와 연로하신 부모님께 또 한 번의 아픔을 주는 나쁜 아들, 나쁜 남편이 될 지도 모르지만...


87년 그 날의 새벽공기를 떠올리며,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위해 양심의 명령을 따르다 죽어간 그 날의 벗들을 기억하며, 내 아이의 눈을 통해 다시 나를 일으키는 양심의 이름과 이 땅에서 자식을 키우며 살아가야 하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후보님이 시작한 이 싸움에 당당히 나서겠습니다. 끝내 무릎이 꺾여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제 다시는 내 양심과, 벗들의 이름과, 87년 6월을 살아 낸 청년의 자부심을 초라하게 버려 두지 않겠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2002. 9. 30 윤 민 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