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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단편문학 - 도둑견습


BY 책한권 2002-11-25

그 돼먹잖은 의붓아버지란 작자는,
초저녁부터 어머니와 흘레붙기를 잘하였습니다.
양잿물로 절인 김치를 준대도
먹고 삭일 수 이을 만큼 먹새가 좋은 나는,
초저녁 잠이라면 도둑놈이 와서
뱃구레를 밟는대도 모를 지경입니다.
밥을 한입 문 채 그대로 잠으로 떨어진 적이
한두번이 아닐 만큼 나의 초저녁 잠을 그 두사람이
곧 잘 깨워내곤 하였으니깐요.
여름날 저녁,
고릴라의 그것과 버금가는 큰 골통에
이글거리는 외짝 눈깔이 박힌 괴물이
날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톱으로
내 모가지를 썰어대는 무시무시한 꿈때문에
디립다 비명을 내지르고 깨어나는 수가 많습니다.

나로 말하면 예수님처럼
사랑해주어야 할 원수놈이고
자시고 할 주제도 못되는 푼수에
그런 지랄 같은 꿈을 왜 밤마다 꾸어야 하는지
정말 이건 자다가 깨어나도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그런 꿈에서 깨어보면 십중 팔구는
실제로 모가지가 쓰리고 아팠습니다.
더운 때라서 어머니와 의붓아버지와 나는
보통 풀기가 깔깔한 홑이불을
함께 덮고 자는 게 예사였는데,
그놈의 풀멕인 홑이불 한쪽 귀퉁이가
내 목덜미를 쉴새없이 문지르고 있어
결국 내 모가지가 쓰려오게 되고,
그래서 잠이 깨어보면 싸가지 없는 어머니가
의붓아버지 가슴위에 올라가서
맷돌치기를 하고 있기 십상이었습니다.

나는 처음에,
달밤의 유난 체조라는 게 바로 저런 거로구나 싶어
두 사람의 동작을 실눈으로 뜨고 누워 바라보고 있었지요.
물론 어스름 달빛이 열린 채로인 문을 통하여
방안으로 밀려들고 있었기 때문에
의붓아버지의 가슴 위에서 껍죽대는
어머니의 윤곽이 뚜렷이 드러나 보였습니다.
그들은 내가 실눈을 뜨며 보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키들키들 웃음을 쥐어짜면서
체조를 열심히 씨루어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같은 동작을 열심히 되풀이 하면서
징글맞은 쾌감이 배어 있는 웃음을 토해냈습니다.
모든 힘과 열기를 오직 그 과정의 일에만 집중시켜
탕진하고 있었습니다.


(2)


그러나 홑이불이 들썩거리는 통에
모가지가 쓰라려 도대체
배겨낼 재주가 없었습니다.
무슨 놈의 장난을 하필이면
이 밤중을 골라서 저러고 있는지
이해할 수 가 없었습니다.
벌떡 일어나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참고 견디자니 그놈의 유난 체조가
언제나 끝장이 나줄지 모를 일아니겠습니까?
참 이 무슨 기구한 운명의 장난이란 말입니까?
그러나 그때 다급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여봇,좋지 그지? 기분 좋지? 대답혀."
어머니는 의붓아버지에게 기분이 좋으냐고
몇번이고 족쳐대며 되묻고 있었지만 의붓아버지는
소 죽은 넋이라도 덮어씌웠는지 아가리를 두고
말을 않고 있었습니다.
나 또한 다급하긴 마찬가지로
이대로 조금만 더 오래 가다보면,
내 모가지가 성한 채로 아침까지 가긴 글렀겠으므로,
"이새캬, 기분 좋다고 칵 뱉아뿌려.
내 모가지 작살내고 말텨?"
내가 느닷없이 버럭 소리치고 일어나 앉아버렸으므로
어머니는 너무 놀란 나머지
썩은 통나무 처럼 뒤로 벌렁 나자빠지고 말더군요.
그들이 너무나 당황하던 꼬라지라서 미안도 하였지만,
우선 끊어지려다 만 듯한 내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무말 않고 주섬주섬 옷들을
찾아 입는 눈치였습니다.


의붓아버지란 작자는
그제사 배를 척 깔고 엎디더니
성냥을 득득 그어 담배 한 가치를
빨아 무는 것이었습니다.
방 아래로 쥐들이 찍찍거리면서 어디론가
쭈르르 몰려가고 있었습니다.
골목 어귀에서 짬뽕통이라도 한개 발견한 모양이지요.
연기를 한모금 쭉 빨아 삼킨 의붓아버지란 작자가
트릿한 목소리로 어머니에게 한마디 쏘아붙였습니다.
"저자슥이 시방 날보구 이새끼 저새끼 하던 말
니 들었지이! "
들었으면 워쩔테고 못 들었으면
사람 잡을 테냐고,
네가 무슨 순경 할애비라도 되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나는 가만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머니 입에서
무슨 대답이 나오실까 싶어
더 궁금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얼른 대답을 못하고
숨 한번 땅 꺼지도록 내쉬더니,
"내 못난 탓이요."
딱 여섯 마디 내 뱉고는
위쪽으로 엉금엉금 기어가선,
내장 따놓은 가오리 모양으로 네활개 쫙 뻗고
발랑 누워 버리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