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청소하고 설겆이하고 마지막으로 큰솥에 고구마 찌는데 마침 어찌나 잠이 오던지 나도 모르게 잠을 잤다. 얼마나 잤을까?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 같기에 동시에 아참 하는 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방문을 연순간 이런 이런 부엌은 온통 새까만 연기로 가득차
있었다. 고구마는 군고마가 된지 오래되었고 큰솥은 마치 까마귀를 삶은 것처럼 새까맣게 변하고 있었다. 안절부절 못하고. 냄새가 너무
지독해서 창문이라는 문은 다 열어 놓고 새까만 솥을 닦다가 팔뚝은
조그만 화상을 입지 않나. 정말이지 왜 이렇게 요즘 정신이 없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나는 건망증이 심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금은 있는 것 같다. 갑자기 친구들 전화번호가 생각나지 않고 부엌에 갔다가도 내가 왜 왔는지를 몰라서 다시 방으로 들어오기도 하고 애기아빠가 부탁한 것도 새까맣게 까먹고 잊어먹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처음에는 웃음이 나왔는데 요즘은 새삼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직도 부엌에 나가면 탄냄새가 나는 것 같다. 아이도 유치원에 다녀와서 코를 막는다. 엄마 뭐 태웠냐고. 그럼 나는 고개를 젓고 있지만
속으로는 이걸 어쩌나 하는 생각에 몸둘 바를 모른다. 큰일이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가다 보면 건망증도 장난이 아닐텐데. 걱정이다.
추운날씨에 문열어 놓고 있는 집은 우리집 밖에 없다. 남들은 모르겠지. 왜 우리집이 문이 열려 있는지 말이다. 정말 심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