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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치아지매 -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BY handk94 2002-12-11

{제가 노무현홈피 게시판에서 퍼온 글입니다}



글 제목 자갈치아지매 -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필명 허경진(root) 날짜 2002-12-10 오후 5:13:00

IP Address 220.73.6.132 조회 /추천 16038/635 ==>이것까지 퍼와도 되는지 잘 모르겠네요


<자갈치 아지매의 눈물과 소망>

안녕하세요?
저는 노무현 후보의 TV 찬조연설 '자갈치 아지매'편을 연출한 민주당 찬조연설단
연출 2팀장 허경진이라고 합니다.
먼저 '자갈치 아지매'의 찬조연설을 봐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제가 연출한 찬조연설이 방송되고 나서 국민 여러 분의 많은 호응과 지지를 받으면서 잠시
공중에 붕 떠있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아주머니를 향해 쏟아지는 찬사가 저에게 향하는 칭찬으로 들렸고, 전국 각지에서 아주머니의 아구를 사고 싶다는 주문이 들어왔을 때는 마치 저의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뒤이어 일부 사람들의 테러에 가까운 협박이 이일순 아주머니에게 가해지고, 수십년을 함께 살아오신 자갈치 시장 사람과의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안타까움과 죄스러움, 그리고 전화로 아주머니를 위로해드릴 수 밖에 없는 무기력에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걱정보다 아주머니는 훨씬 강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위로의 말을 꺼내려고 하면 아주머니는 "?I찮다....나는 걱정말고 니가 힘들어서 어쩌노?"하고 오히려 저를 걱정해주십니다.
부디 19일이 지나 다시 부산에 가서 만날 때까지 건강하고 질박한 미소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영화를 하는 사람입니다.
아직 데뷔작도 내놓지 못한 터라 감독이라는 호칭이 쑥스럽지만, 선거 직전까지 작품을 준비하다 평소 절친하게 지내던 선배님의 부름을 받고 노후보님의 선거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당장 촬영이 진행되고 있거나 하는 상황이 아니어서 선뜻 선배님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 나라 역사가 한 발이라도 앞으로 가야지 뒤로 퇴보할 수는 없다는 평소 생각이 있었기에 가능한 판단이었겠지요.

11월 초에 캠프에 합류해서 중순까지는 찬조연설의 기조와 방향에 대한 회의가 계속 있었습니다.
단장님이 하나의 틀을 정해놓으면 그것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아무나 생각나는대로 얘기 하고,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그때 그때 정리하며 하나씩 구체적인 내용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무척 유쾌하고 한편으로는 진지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찬조연설'의 기조와 방향이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는 대선 캠페인'으로 정해지고, 계층별로, 세대별로, 또 지역별로 구체적인 대상자가 정해졌는데, 부산 자갈치 아지매로 그 중 한 명으로 선정됐고, 제가 그 일을 맡게 됐죠.

단장님의 지시를 받고 11월 19일 아침 고속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부산시내에서 보다 가까운 연제 지하철역 정류장에 내려 남포동으로 향하기 위해 택시를 탔습니다.
기사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 받던 중에 화제가 자연스럽게 대통령 선거로 옮아갔는데
"관심없어."라는 기사님의 한 마디에 저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남포동에서 택시를 내린 저는 씁쓸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부산에 계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남포동 자갈치 시장으로 향하는 길 반대 건너 편이 부산국제영화제의 거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마침 영화제가 열리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습니다.
"내 영화를 들고 여기를 찾아왔어야 하는데...."
솔직히 그때 기분은 그대로 시장 꼼장어집 아무 곳에나 들어가 소주나 한 잔 하고 싶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냥 질척거리는 생선물로 질척거리는 거리를 걸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좌판 아주머니들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내가 부산에 왜 왔나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저분들이 서민들 중에서도 가장 힘들게 사시는 분들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선뜻 가서 말을 걸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지치고 힘들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저는 부산에 내려가기 전 마음 속에 두 가지 원칙을 세우고 고속버스에 올랐습니다.
'진실과 희망'이 그것입니다.

아무리 원고를 우리 찬조연설단에서 써 준다고 해도 연설자 자신의 생활이나 마음과 동떨어진 내용은 결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연설자 자신의 얘기를 자신의 입으로 하도록 하자.
한 마디로 진실해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서민들이 자신의 얘기를 하되 단순한 한풀이 수준의 얘기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말해야 한다.
연설을 마치는 순간 노무현이라는 이름 석자와 서민의 질박한 미소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아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무지이고 편견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좌판 아주머니들에게서는 희망을 얘기하기 힘든 슬픔 같은 것이 베어나왔습니다.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려 자갈치 시장의 본류가 있는 커다란 컨테이너 박스로 들어갔습니다.
천천히 시장 안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거친 듯 하면서도 특유의 질박한 미소를 보이는 아주머니들....
처음엔 모든 아주머니의 모습이 제가 원하는 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다시 돌아걸었습니다.
눈에 띄는 아주머니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지금의 이일순 아주머니도 좋은 인상을 가진 후보 중 한 분이셨습니다.
5번을 시장 안을 돌았습니다.
그날 날씨에 어울리지 않게 카키색 파카입은 놈이 시장 안을 어슬렁거리는걸 왠만한 상인분들은 거의 목격하셨을 겁니다.
이제는 지지여부가 문제였습니다.
마음에 두고 계셨던 아주머니들의 답이 모두 똑같았습니다.
"관심없다."
그 중 단 한 분 이일순 아주머니가 '노무현이가 사람은 괜찮다고 하는데....' 하는 여운을 남기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미 마음 속에 노후보님을 두고 경상도 분 특유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모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멀리서 아주머니를 지켜보았습니다.
넉넉한 미소, 다소 거친 듯한 부산 말투.....전형적인 우리네 서민의 어머니 모습 등....
볼수록 제가 찾고 있던 모습이었습니다.
그 다음 날 아침 한 번 더 돌아본 후에 이일순 아주머니를 포함해서 후보자 3명 정도를 선정해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물론 친구들이 머물고 있는 해운대에 잠시 들러 영화제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죠.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 각자가 맡은 찬조연설자의 섭외 여부에 따라 진행상황이 체크되고 순서와 연설의 기조 등이 점검되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연사로 '자갈치 아지매'가 선정되었습니다.
중량감있는 인사가 첫 주자로 나서야 한다는 반론도 내부에서 만만치않게 있었지만 조광한 단장님이 밀어부쳤고, 결국 해보자는 쪽으로 결정이 난 것이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아주머니를 만나서 의도를 설명하고 승낙을 받아내야 하는 일이 저에게 떨어졌습니다.
부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첫 번째 주자라 부담이 더 했습니다.
스스로 최소한 저쪽은 이기자....이길 수 있다고 목표를 정했습니다.
저쪽은 낡은 사고가 지배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고의 전환이 구조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다.
저쪽은 이길 수 있다는 것은 묘한 자신감을 심어주었습니다.

다시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아주머니를 만나 의도를 설명드리고 승낙을 구했습니다.
잠시 머뭇거리시더니 허락을 해주셨습니다.
아마 아주머니께서는 저를 이때 처음 만난 것으로 알고 계실겁니다.
처음에는 그저 지나치면서 보기만 했으니까요.
지난 번 인터뷰 기사를 보니까 실제로 그렇게 기억을 하고 계시더군요.

서울로 올라와 연습과 녹화 일정을 잡고 구제적인 인터뷰를 위해 다시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아주머니의 영업이 대충 끝난 12월 2일 오후 5시쯤 아주머니가 남포동 파출소 앞으로 마중을 나오셨습니다.
그런데 아주머니의 모습을 처음 보고 저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진땀을 빼야 했습니다.
아주머니가 평소와는 다르게 화장을 예쁘게 하고 나오신겁니다.
인터뷰를 한다니까 카메라를 들고 찍어간다고 생각하신 모양입니다.

늘 부시시한 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살림만 하시던 어머니가 어느 날, 정말 오랜만에 화장하시는 모습을 지켜보신 일이 있는지요?
이미 화장이 안먹을 정도로 쳐진 피부에 화장법도 잊은 듯 이리저리 해보다 결국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진한 화장으로 얼굴을 가리고 집 밖을 나서다 '쥐잡아 먹었냐'고 아버지에게 놀림을 당하시는 우리의 보통 어머니들 말입니다.
팽팽하던 피부와 젊음을 모두 자식과 함께 하면서 보낸 세월 속에 묻어버리신 어머니를 보면 항상 미안하고 안쓰러운 생각이 들곤 했지요.

우리네 보통 어머니의 모습 같아서 안쓰러움도 있었지만, 어쨌든 아주머니의 화장한 얼굴은 귀엽다는(죄송합니다.)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간신히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아주머니의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함께 내려간 연출팀이 모두 앉을만한 공간이 없을 정도로 작은 곳에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한 시간 넘게 아주머니는 담담히 자신의 인생과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우리는 그것을 녹음하고 받아적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이 생겼습니다.
공식적으로 인터뷰다 하고 얘기를 시작하니까 그렇게 호방하게 말씀을 잘 하시던 아주머니가 굳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실제 녹화에서 잘 할 수 있을까?'
이때 생긴 걱정은 녹화가 끝날 때까지 가슴 졸여야 했던 부분입니다.
인터뷰를 마친 우리는 서울로 먼저 올라왔고 아주머니는 시집간 첫째 딸과 함께 3일 저녁 서울로 올라오셨습니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또 연습을 위해 장소를 이동하는 동안 간간히 보여지는 굳은 표정에서 긴장하고 계시는 것을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 연습은 긴장을 풀고 방송에 익숙해지는 것 정도를 목표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 11시 너머까지 진행된 연습에서 어머니는 상당히 힘들어하셨고, 원고 내용을 잘 소화해주실 수 있을까 걱정이 안될 수가 없었습니다.
최소한 아주머니가 평소에 장사하시면서 보여주시는 모습은 나와야 하는데......

다음 날 다시 연습이 시작되었습니다.
함께 온 딸의 얘기를 들으니 밤에 자기 전에 딸의 구박을 받으며 연습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전날보다 조금은 나아진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평소의 모습은 아무리 연습을 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밀어부치면 힘들어하시고, 연습을 안하자니 결과가 뻔히 보이고.....
한 번 연습하고 쉬고, 한 번 연습하고 쉬고....
아무리 쉬엄쉬엄한다고 해도 힘든 과정이었을텐데, 아주머니는 '괜찮다....다시 해보자..."
며 힘을 내셨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쉬는 시간이면 눈을 붙이는 횟수가 늘어났고, 목소리는 조금씩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연습하다 정작 촬영에 들어가서 못버티시면 어떻게 하나....
저는 결정을 해야했습니다.
최소한 원고에는 익숙해졌고, 무엇보다 자신의 이야기이니만큼 읽어내려가는 것은 하실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연습을 중지하고 휴식을 취하기로 했습니다.
녹화가 예정되어 있는 방송국 근처로 가서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했습니다.
아주머니는 긴장을 떨어내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따님을 아주머니 곁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사사로운 집 안 이야기로 모녀가 티격태격하면서 조금씩 아주머니의 표정이 펴지는 것 같았습니다.
조금은 마음이 놓이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녹화....
방송을 처음 하시는 아주머니가 잘 할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아주머니는 힘들어하셨습니다.
계속되는 연습에, 바로 이어지는 녹화일정이 아주머니에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무리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기억에 아주머니는 한 번도 '힘들다', '그만 하자'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오히려 '기왕 하기로 한거 끝을 봐야지.'하며 우리를 격려하셨습니다.
결과가 어찌 됐든 고마웠습니다.
저도 결과에 대한 초조한 생각을 버리고, 제가 원하는 연출방향을 최대한 아주머니가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자고 마음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NG 끝에 녹화를 마쳤습니다.

그때가 밤 12시 30분,
자고 내려가자는 딸의 제안을 묵살하고 하루 장사 공친게 얼만데...하시며 새벽 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저런 의지가 시장에서 장사하면서 세딸을 대학까지 보낸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남아있는 편집 작업 때문에 방송국 앞에서 아주머니를 배웅하고 돌아섰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방송국을 나온 시간이 새벽 3시였습니다.
먼저 단장님에게 보고를 드렸습니다.
잠이 들지 않았을까 했는데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으시는게 좋겠다고....
알았다고, 수고했다는 답을 듣고 다시 당사에 있는 사무실로 돌아왔습니다.
원래 가졌던 목표치에 약 70퍼센트 정도 밖에 안나왔다고 생각했습니다.
100퍼센트가 다 원하는만큼 되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을텐데....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집으로 갈 수도 없었습니다.
마음 상태가 그랬습니다.
혹시 내가 한 일이 선거에 방해가 되는건 아닐까?
단장님을 포함해서 괜히 여러 사람한테 피해만 입히는건 아닐까?

함께 있던 조연출과 함께 새벽 3시 반쯤 사무실을 나와 포장마차로 향했습니다.
수고했다고 서로를 위안하며 술잔 몇 잔을 돌리고....
조연출을 집으로 보내고 저는 근처 사우나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조금 늦게 출근했는데 나를 바라보는 사무실 직원들의 표정에 환한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는 수고했다는 인사가 저에게 쏟아졌습니다.


여기까지가 '자갈치 아지메'를 진행한 과정의 전부입니다.
시장에서 수십년을 장사한 대가로 잘 커준 딸 셋이 대학을 나오고, 가격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집 한 칸 가지고 있을 정도의 보상도 없다면 우리 사회에 무슨 미래가 있겠느냐고....
물론 길가의 좌판 아주머니들도 있었지만, 그분들이 정말 어렵게 사는 서민들이라는 말에 백번 동의하지만, 찬조연설을 만들어야 하는 저의 입장에서 '희망'을 이야기하기에 너무 지치고, 힘들어보이는 그분들을 캐스팅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변명이 될까요?
노후보님이 대통령이 되시고 나서 그분들의 얼굴에서 희망이 빛이 보이기를 기대합시다.

민주당 부산시 영도 지구당 선대위원장과 이일순 아주머니가 이종사촌이라는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터넷 본부에서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가져와서 보여주기에 7일 밤 11시 넘어 직집 확인했는데 사실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럼 안되나?"하시면서....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저도 굳이 그런 관계에 대한 질문을 아주머니에게 드린 적이 없고, 아주머니도 특별히 그게 문제가 될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셨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일순 아주머니는 오늘도 새벽 5시에 졸린 눈을 비비고 해운대에서 버스를 타고 가게에 나와 커피로 정신을 깨며, 2천원짜리 찌개로 점심을 드시기 때문입니다.
아직 대학 졸업시키고 시집보내야 할 딸이 둘이나 있는 우리의 어머니가 이일순 아주머니십니다.

저는 이일순 아주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물론 저에게는 어머니가 있습니다만, 그냥 하다보니 어머니가 됐고....그런 호칭이 어머니와 저 사이에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어머니는 맛있는 회를 사주신다고 선거 끝나면 꼭 부산에 내려오라고 하십니다.
그럴 생각입니다.
부산 어머니의 정을 듬뿍 느껴볼 생각입니다.

저희는 지금 쏟아지는 잠과 가슴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열정 사이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기는 날까지 모두 같은 생각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힘을 냅시다.
그리고 이깁시다.

우리 한 가지만 약속합시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정치적으로 어떤 의사를 표시했든지, 그걸 갖고 서로 다투고 외면하는 일은 없어질 거라고.....

감사합니다


새천년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찬조연설단 허경진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