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나 들나귀 같은 딸들이 되어"
- 가톨릭중앙의료원 여성노조의 현장복귀에 붙여
민주노동당 여성위원장 최현숙
남자들과 권력자들에 의해 게다가 수 천년 전에 구전되고 기록된 성서를 어디까지 문자그대로 믿을지를 의심하면서, 그럼에도 빗대어보자.
하갈(뜻:도망)은 이스라엘의 선조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몸종이었다. 늙도록 아이를 낳지 못한 사라는 대를 이어보자고 하갈을 남편 아브라함에게 바쳤고 하갈은 곧 잉태했다. 사라는 잉태한 하갈이 건방지게 군다며 아브라함을 들쓰셨고, 아브라함은 "네 맘대로!"라며 손을 씻었다. 사라는 하갈을 학대했고, 하갈은 학대를 견디다 못해 저들의 집을 도망 나와 광야에서 하늘에 대고 울부짖었다.
2002년 성탄 전야에 가톨릭중앙의료원 여성노동자 400여명은 명동성당 돌계단에서 216일째의 울부짖음을 마저 울었다. "직권중재"라는 저들의 법과 원칙에 맞서다 구속·수배·해고·무노동무임금·손해배상·가압류·병원 출입금지 가처분·경찰병력 투입과 강제해산에 밀려 광야로 떨려난 채, 한국 천주교회의 전당 명동성당 문전 천막에 아기 예수가 태어나주기를 목메어 울부짖었다. 그들 뒤 명동성당에서는 가톨릭중앙의료원 이사장인 정진석 대주교가 성탄대축일 전야미사를 집전하면서 '예수성탄 대축일' 담화문을 통해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 고통받는 자의 구원과 해방·사회평화를 기도하고, 그들에게 관심과 도움의 손길을 베풀 교회의 역할'을 설교하였다. 수많은 신자들은 그녀들의 천막과 울부짖음을 비껴지나 휘황한 구유 속 행복한 아기 예수를 경배하며 "하늘에는 영광·땅에는 평화"를 찬양하였다.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창세기 16: 9)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를 하느님의 사자가 하갈에게 알렸다.
봄날 떠난 저들의 병원을 그녀들은 다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216일의 파업을 풀고, 광야의 천막을 철거하며 "미완의 2002 투쟁"을 접었다. 끝끝내 대화를 거부하는 가톨릭중앙의료원에 대한 분노를 삼키며 거대한 종교권력의 오만한 권위주의에 철저히 외면당하고 짓밟힌 채로.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뜻 : 하느님이 들으신다)이라 하라...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 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창세기 16 : 10-12)
하느님의 소리를 품고 하갈은 저들의 집으로 들어가 아들을 낳았다.
통곡으로 천막을 접고 저들의 병원으로 돌아가면, 그녀들을 닮은 아기 예수가 이미 그녀들 속에 탄생하였음을 알리라. 자라나 들나귀 같은 딸들이 되어 크게 번성할 아기 예수들을 눈뜬 이들은 이미 함께 보았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