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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남자의 갈비뼈 만큼의 존재가 아니다.


BY 새해, 떠오르는 2002-12-30

시아버님 되실 분의 생신이 1월 1일이에요.
이런 생각은 정말 괘씸한 거지만 좀 아쉽더라구요.

아직 철없는 아가씨인지라 결혼해서두 새해 떠오르는 태양을 바닷가에서 바라보며 지낼 수 있는 기회가 없겠구나 했죠. 정말 낭만적일텐데...

작년 31일에 내려갔죠. 오빠네가 큰집이기 때문에 이모님 고모님 식구들이 모두 내려오셨어요. 오빠네 가족들은 제가 봐도 정말 우애가 있는 따뜻한 가정이지요.

저와 오빠, 그리고 시누이 될 돌생과 그 남자친구(아마 이 커플이 저희보다 먼저 식을 올리게 될 것 같아요.)총 4명이 함께 내려갔죠. 저두 저 예뻐해주시는 시아버님의 생신에 기쁜 맘으로 도착했는데...

달라지는 나의 처지와 시누 남자친구의 처지...며느리와 사위의 차이인가요?
계속 밀려오는 친지 분들의 상을 계속 차려드려야 했는데 그 분은 이모부 고모부님과 어울려 술과 담소를 나누시고 저는 열심히 설거지통에 손담고 있었답니다.

시누될 동생은 아기를 보고 방에서 있었구요. 아기보는 거 힘든 줄 저 잘알기 때문에 가만히 열심히 일했습니다. 시이모 되실 분들은 벌써 뭘 하느냐 저리가서 이거 먹어라 하시는데 정작 시어머니께서 아무 말씀 안하시고 아니,, 한말씀 하셨습니다.
"옷에 물 묻으니 앞치마 하고 해라."
또 시누될 동생이 나와서 한말 합니다.
"언니, 힘들지, 그래도 어쩌겠어. 시대가 바뀌어도 시댁와서 할 일은 해야지."

오빠는 제 눈치를 보고 슬쩍슬쩍 와서 말은 걸지만 행동으로 도와 주지는 못하더군요. 그러다가 나중에 막바지 설겆이 할때는 같이 옆에서 설겆이 했습니다. 그랬더니 시어머니 내가 할텐데 저리가라 그러셨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다시 1월 1일이 오는군요. 저 하루종일 평등하게 막노동하라면 정말 제 한몸 불살라 열심히 할 수 있어요. 직장에서 일요일날 남자들이 페인트칠하면 저도 나가 열심히 칠하고 책상 교탁 번쩍 번쩍 들어올립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술마시고 여자들은 부엌에서 헤어날 줄 모르는 그런 불공평한 상황에서는 몇번 설거지(저는 힘세서 정말 그거 별거 아닙니다.)하는 것이 폭발할 만큼 정신적으로 힘듭니다.

오빠는 제가 그렇게 한번 집에서 잘해주고 오면 몇 달은 정말 저에게 설설 깁니다. 제가 그만큼 불공평에 예민하다는 것을 잘 알거든요. 이번에도 내려가 사위 먹고 놀때 나는 열심히 일해야 하는가 고민하다가 꾀를 내었습니다.
오빠에게 말했죠.
"오빠, 우리 집 요즘 분위기도 있고 아빠 혼자 연말 보내면 쓸쓸할 것 같으니까 나 1월1일 오전에 내려갈께. 오빠 혼자 31일날 내려가."
사실 아빠와 할머니 동생만 두고 가기도 걸리긴 하나 제가 일부러 그러는 게 더 큰 이유지요. 오빠는 벌써 제 마음을 꿰뚫어보고 서운해 하는 것 같습니다. 31일날 손님들이 오셔서 생신잔치 하기 때문에 정작 1월 1일은 바쁘지 않거든요.

저 자랄때는 친척도 많지 않아 남자여자 겸상하는 것도 본적이 없어서 그런 장면이 연출될 때면 제가 막 화납니다. 정작 아무렇지도 않은 연세 지긋하신 시이모고모님들은 가만히 계신 것 같은데요. 저 꼭 아들 딸 낳아 남녀평등의식 심어주고 의식 깨어있는 아들, 독립적이고 강한 딸 키우고 싶은 그런 예비 신부인데요. 정작 저 자신은 그렇지 못한 삶은 살까봐 두렵습니다. 저는 나중에 대학원에 진학해서 여성학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학위를 받자는 것이 아니라 정말 여성들의 불공평한 처우를 생활속에서 그리고 내 아이들에게 깨우쳐 주고 싶습니다. 저는 국어를 가르치는데 예를 들어 국어교과서에도 여성차별적인 내용이 은연중에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부장적인 모순들은 공기처럼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지요. 하지만 저는 아들은 강하고 독립적으로 딸은 얼굴 예쁘고 애교많게 그런식으로 키우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저의 현실은요. 시댁의 사랑을 받으려면 두 눈 질끈 감고 부엌에서 손님을 치뤄야 하는 처지에 부딪칩니다. 오빠는 네가 결혼해서 조금씩 변화시켜라 하지만 그랬다간 버릇없다는 소리 듣게 될 가정분위기 입니다. 아, 정말 제가 구체적인 결혼전에 행동해 왔던 저의 주관과 실제의 생활에서 제가 하게 되는 여러가지 행동들. 정말 제 머리속에서 갈등하고 충돌하게 됩니다.

아!선배님들 우리도 남자들과 똑같이 교육받고 부모님사랑받으며 컸는데 왜 아직도 가정에서 여자들은 제사에 손님맞이에 주체가 되지도 못하면서 뒤에서 일하는 존재로 남아야 하는 걸까요. 우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