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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어린시절의 추억 1


BY lsm7027 2003-01-08

아름아운 이야기!

나는 어린 시절을 두메산골에서 보냈다.
첩첩이 산에 둘어싸여 하루에 한두대 버스가 다니는곳!
그래도 행복에 겹게도 정부에서 산골마을에 '육영제단'에서 어린이집을 선물해 주었기에 유년시절을 동화같은 넘 이쁜 어린이집에 나녔다.

부모님께서 종일 들에서 일을 하셔야 했기에 어린 우리 남매들은
하루종일 유아원에서 선생님들과 지냈다. (사실 더 좋았지만...)
낮잠도 자고 맛있는 간식과 점심을 먹는 재미가 신나던 시절이었다.
인생의 3분의 1도 살지 않았지만 정말 아름다웠던 시절은 유아원다니던 시절과 어린시절이라고 생각이 든다.

울집은 과수원을 했는데.. 내가 어렸을?? 과수묘목을 막심었을때라
수학기가 아니고 돌볼시기였다. 부모님은 온통 사과나무에 신경을 쓰시느라 우리가 자라는지 공부를 하는지 도통 관심이 없으셨다.
그럴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이 든다. 먹고 사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가 말이다. 자그마치 자식이 다섯명이나 되니....

나는 고작해야 1년을 유아원에 다녔지만 내 남동생들은 둘다 3년씩이난 다니는 행운을 누렸다. 곧 초등학교에 들어갔고 역시 산골마을에 주어진 첫번째 특권으로 한달에 3천원만 내고 맛난 점심을 제공받는 급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4년위언니는 1년을 먹었고,큰 언니는 한번도 먹지 못하였다. 그러니 나는 얼마나 행운아인가!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 되자 나도 제법 일할 나이가 되었다.
언니들은 좀 힘든 밭매기를 했지만 나는 과수원에 열매가 달려 우리집에 수입이 생기기 시작했으므로 우리들의 적인 까치쫓기를 시작했다.
즐거운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책가방을 휙 던져 놓고 구불구불한 길을 10분정도 걸어가면 깊은 산 밑에 우리식구들의 과수원 밭이 보인다. 멀리서 아빠와 엄마가 허리도 못피고 일하는 모습이 보인다.
"엄마?"하고 크게 부르고 막 달려 간다. 한 여름 더워서 짧은 반바지를 입고는...이제 초록빛을 뽐내며 여름사과가 익어가고 있다.

까치란 녀석들은 얼마나 영리한지 사과에 종이 봉지를 씌어놓았는데도 가장 잘생기고 맛난 사과를 골라 쪼아먹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만들어준 깡통에 작은 돌멩이 몇개를 넣고는 줄을 잡고 막대기로 깡통을 때리며,흔들며 "훠이 훠이" 하고 까치를 쫓았다.

어떨땐 혼자가 심심해서 동네 칭구들을 불러 사과 몇개 주고 종일 함께 까치를 몰아내기도 했다. "훠이 훠이" 종일 일하느라 온 가족이 모두 힘이 들었다. 그래서 저녁9시가 좀 넘으면 8시 연속극을 보고는 다들 골아 떨어졌다. 자식을 여러명 둔 덕에 우리 부모님은 그래도 좀 일하시기에 수월하셨을까? 그렇지만 힘들다고 한번도 투덜댄적없고...부모님이 새벽에 일어나셔서 마당을 쓸고 쇠죽을 끓이고 일하러 나가셔서 어두워서야 들어오시는데 어찌 힘들다고 놀고 싶다고 불평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좀 피곤했고..공부를 할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공부는 따라갔고...예술적 재능이 풍부했던지..그림을 잘그려서 최우상도 여러번 탔고 글짓기며 노래도 잘불러서 학예회땐 독창을 부를 수있었다. 그래서 울 아버지는 동네방네 세째딸 자랑을 하며 돌아다니셨다. 그때 피아노 학원이나 미술학원에 다녀서 재능을 키웠더라면 그림이나 음악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뭏든 중학교를 고향에서 졸업할때 까지 학원에는 한번도 다녀보지 않았고 학습지도 한번 해보지 못했다. 그당시 그 시골에도 '아이템플'이라는 학습지가 유행처럼 들어와서 그래도 교육열 놓은 젊은 부모를 둔 친구들 은 학습지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식구들과 일속에 묻혀 공부는 보충학습처럼 하고 지냈지만....지금 생각해보면 두고두고 식구들과 한몸이 되어 열심히 일했던 그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이 그립다. 엄마가 우리를 위해 커다란 가마솥에 팥을 넣고 하얗게 쪄 주던 그 맛있는 찐빵이 다시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