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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나의 어머니


BY 아줌마1 2003-01-31

난 지금까지도 날 낳아주신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 못합니다.

나에게 어머니의 모습은 두살때부터 지금껏 길러주신 어머니에 대한 기억 뿐입니다.

두살때 돌아 가신 친어머니의 기억은 전혀 없어 생모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살아 왔습니다.

생모가 돌아가시고 이듬해에 재혼하신 아버지는 시골에 여덟살 위의 누나와 나만 할머니에게

맡겨 놓고 그래도 장남이라고 두살위의 형만을 서울로 데리고 가서 살림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형은 내가 초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때에 시골 할머니댁에 놀러 왔다가 동네 저수지에서

사고를 당했습니다. 이제 외아들이 되어 버린 나는 형대신에 서울로 전학을 와서 자라왔습니다.

새 어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이 그리 어렵진 않았던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초등 1~2학년의

어린나이에 꼭 필요 할 것만 같았던 모정이란 것은 별로 느껴보진 못했습니다.

지금도 아쉬운 부분이지만 어려서인지 철이 없었는지 친엄마에 대한 생각도 별로 없었습니다.

어차피 나의 기억속에는 생모에 대한 추억이나 뭐 그런게 없었으니까요...

그저 그렇게 살아 오다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에야 생모에 대한 그리움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생모가 돌아 가신 것을 알면서도 기일도 모르고 그냥 그렇게 무덤덤하게

살아 왔었습니다. 집에서도 아버님은 새어머니의 눈치때문에 생모의 제사를 모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도 외가집은 생모의 외가집을 다녔는데 고등학교에 입학할무렵 외가집에 인사를 갔을때

외할머니가 물으셨습니다.



"그래 니 에미 제사는 지내니?"

"......."

" 너 에미 죽은 날은 아니?"

" ......"

" 시월 열흘이 니 에미 제사다.."



난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부끄러운 마음에 어쩔줄 몰라 했습니다.

그때 외삼촌이 작은 골방으로 부르더니 누렇게 변한 사진과 몇가지 종이를 보여 주셨지요.

어머니의 처녀때 사진과 일제시대 소학교 다닐때의 성적표였습니다.

나는 그 것들을 보는 순간 난 눈물이 글썽여졌습니다. 마치 엄마의 분신을 보는 것 같아서...

그것들을 가슴속에 소중히 챙겨들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는 조용한 시간을 이용해서 아버님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니 엄마 산소는 재너머 뒷산에 있는데 재용이네가 돌봐주고 있단다..."

알고 보니 내가 살았던 곳에서 바로 고개하나 너머에 엄마의 산소가 있는데도

아직 한번도 찾질 못했던거였습니다.

나는 며칠후 혼자서 어머니의 산소를 찾아 나섰습니다.

돌아가시고 하나뿐인 아들이 한번도 찾지 않았으니 얼마나 쓸쓸 하셨을 것인가? 생각하니

그냥 가만히 있을수가 없었습니다. 시골에 가서 산소를 돌봐주신다는 재용이네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산 중턱의 얕으막한 산소 하나를 가르키며 " 저게 느이 엄마 산소란다" 하셨습니다.

아직 겨울이 가기전이라 잔설이 남아있는 산을 올라보니 양지바른 언덕에 잔디도 별로 없는

얕으막한 산소가 하나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산소였습니다.

올라가는 동안은 가슴이 조금 뛰는 정도이고 큰 감흥은 없었는데

막상 산소를 직접 보는 순간 속에서 뭔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나는 아직도 눈이 덜 말라 젖어있는 산소앞에서 큰 절을 한번하고 나는 일어서질 못했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M지도 못하고 또 다시 절을 하고, 또 다시 절을 하면서 나는 크크크~하고

울음을 찾다가 결국에는 몇포기 남지도 않은 산소의 풀을 쥐어 뜯으며 통곡을 했습니다.

" 어머니~~~"

" 엄마~~~~~"

" 엄마~ 나 에요~ 저 이제 왔어요..."

" 형은 죽었구요..... 나 혼자 이제 다 커서 엄마 찾아 왔어요..."

아무도 없는 산소에서 나는 절을 몇번하다 엎드려선 한참을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눈물은 그칠줄 몰랐고 울음소리는 참으려해도 참으려해도 참을수가 없어 한참을 울었습니다..



엄마..... 보고 싶어요....



그렇게해서 어머니의 산소를 찾길 몇해 끝에 군대를 갔습니다.

그런데 제대를 하고 집에는 얘기를 안하고 엄마산소를 찾아가니 산소가 없어 졌더군요

어머니의 산소가 있던 양지바른 그 자리에는 군부대가 들어 섰습니다.

망연자실 그 자리를 쳐다보며 눈물을 흘리다 집에와서 자초지종을 들으니 군부대땅으로

수용이 되어 이장을 해야하는데 군에 있는 저의 의견을 듣지도 않고 아버지께서

화장을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나만큼이나 고생하며 살아오신 불쌍한 아버지께 싫은 소리 한번 못하고

"왜 그러셨어요? 저한테 연락이라도 하시지...." 하는 소리 밖에는 못했습니다.



그후 나는 결혼후에도 5년간을 부모님과 같이 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없어진 어머니의 산소를

찾을수도 없고 기일에도 새어머니 눈치에 제사를 모시지도 못하고 또 다시 무덤덤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작은 아파트를 하나 장만해서 분가해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온 어머니의 기일에 처음으로 나 혼자서 제사를 모셨습니다.

제사 지내는 법도 제대로 몰라 제례책을 들여다보면서 젯상을 마련하고는 제사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제 유치원에 막 들어간 아들 두 놈을 옆에 세우고 절을 하는데 또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영문몰라하는 애들은 아무런 느낌 없이 시키는 대로 절만 하고....

나는 처음 제사를 모시며 첫절을 한 후에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으며 일어 나질 못했습니다...

" 어머니.... 이제야 모시게 되었습니다.."

" 여기 당신 며느리와 손자 둘이 있습니다..."

" 어머니...핏덩이 같은 저를 두고 어찌 눈을 감으셨나요?"

눈물이 범벅이 된 저의 모습을 보고 애들 엄마도 울고 애들도 더불어 울고...

온가족이 울었습니다..

지방을 태우고 재를 아파트 배란다에서 날려 보내며

조용히 되내어 봅니다...



" 복도 없으신 울 어머니..... 이제라도 부디 편히 쉬소서...."




-일어서는 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