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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부자동네에서 경비하시는 우리아버지 이야기...안하무인,인격장애의 사람들


BY sumom 2003-04-11

저는 딸아이를 하나 둔 이제 곧 서른이 되는 평범한 가정주부입니다.
이곳 아컴에 몇번 에세이글을 올린 적도 있구요 많은 분들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에 힘을 내곤 했던 신참주부입니다. 대학교육까지 받았고 대기업에서 근무한 경력도 있으며, 지금은 학원에서 중국어를 가르치며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제 자랑을 하려는 것이 아니구요, 기본적인 교육을 받고 기본적인 양심의 잣대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임을 말씀드리며, 혹여 지금부터 제가 쓰는 글이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에 치우쳐 일부 사람들에서 독소를 내뱉으려 함이 아니라는 것, 또 비열한 열등의식에서 비롯된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려함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현재 강남구의 대단위아파트단지에서 경비일을 하고 계십니다. 여기에 들어오시는 분들 중에도 그쪽에 살고 계시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희 아버지 이제 곧 육순을 바라보시는 나이에 힘들지만 열심히 근무하고 계시답니다. 요즘 그런 저의 아버지가 너무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서 저 역시 속이 많이 상합니다. 저희 아버지도 배울만큼 배우신 분이지만 저희 형제들을 데리고 살아오시면서 수없이 힘든 고비를 넘기시느라 지금 그리 넉넉치 못한 형편이시기에 힘들고 어려워도 일을 그만두시지 못하고 계십니다. 하루 24시간 꼬박 근무하시고 다음날 오전에 집에 들어오시면 아침도 뜨시는둥 마는둥 하시고 2-3시간 주무신 후에 저녁이 되면 또다시 다음날 출근하실 준비를 하신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힘들고 피곤한 2교대 근무, 하지만 아버지의 성격상 절대 대충 넘어가는 일 없이 꼼꼼하게 열심히 근무하신답니다. 봉사활동이 아닌 타인에게 급여를 받고 하는 일인데 얼렁뚱땅이란 있을 수 없겠지요. 분명 잘못한 일이 있으면 시정을 해야 할 것이고 직장생활이란 것이 쉬울 수 만은 없는 것이기에 무조건 아버지 편을 들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피고용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자존심이나 인권까지 침해당하는 일이 당연한 건 아니겠지요. 아버지 위에 계시는 일부 사람들의 기본이 안된 언행과 지시로 인해 아버지가 겪고 있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말도 못합니다. 어쩌다 경비초소의 직원중 한명이 잠깐이라도 졸고 있을라 치면 바로 이어지는 막말과 조그만 일에도 시말서를 요구하며 은근히 해고의 압력까지 가하는 사람들... 얼마전에는 다른 동료분들께 욕설과 폭언까지 해댔다고 합니다. 경비... 그들이 터미네이터는 아니지요. 물론 졸면 안되겠지요. 졸아서는 안됩니다. 돈받고 아파트지키는 경비로서 자면 되겠습니까? 하지만 인간적인 모욕감 주지않고도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졸지 않고 24시간 로봇처럼 일하면 좋겠지만 모두들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이기에, 그리고 대부분의 아저씨들이 60을 바라보는 연세이시기에 피곤함을 느끼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겁니다. 20대의 천하장사같은 체력을 가진 젊은이들이 닭장같은 아파트 초소에서 경비일 하겠습니까? 경찰도 군인도 아닌 경비아저씨들이 아파트에 들고나는 도둑들 다 책임질 수 있겠으며 크고 작은 도난사고 완벽히 막을 수 있을까요? 물론 주민들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 고용된 사람들이 경비직근로자분들이지만 그들이 주민이나 일부 책임자들의 노예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보면 아버지 수고하신다고 음료수며 작은 선물들 챙겨주시는 고마운 주민들도 물론 계십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경비직근로자들이 무시와 냉대속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일 것입니다.
아버지께 당장이라도 그만 두시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것만이 최선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는 많은 것을 갖고 있는 소위 부자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표를 내는 것 또한 비겁한 일이라 생각하니까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물론 근로자본인들의 과실과 책임또한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책임자의 입장에서 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피고용인이 한둘이 아니겠죠. 하지만 지금은 불법외국인 근로자들의 인권보호가 심각하게 이슈화되고 있는 2003년의 오늘입니다. 제5공화국 시절이 분명 아닙니다. 아무리 하찮고 보잘 것 없어 보여도 그들 근로자 한명한명의 인권도 분명 소중한 기본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좀더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고 격려할 순 없는 걸까요? 조금 가졌다고 해서, 힘이 있다고 해서 막 대하고 깔보고 무시하면 그 사람들의 체면과 권위가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현대인의 일부가 심한 인격장애를 겪고 있다고 어느 책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타인에게 멸시와 고통을 주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인격장애를 지닌 미성숙한 성인일 것입니다.
너무 속상하고 답답해 털어놓았습니다. 그곳에 살고 계시는 분들 모두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이 아닌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혹여 마음에 거슬리시는 부분이 있더라도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아버지 이야기이니까요.
비오는 날 힘들게 일하고 계실 아버지한테 기운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