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학부형님과의 상담이 있었습니다.
아이때문이였는데 어렵게 시간을 내서 오셨더군요.
그 아인 3월 첫날 학교에 오지 않았습니다.
혹시 전출로 인한 결석인가 싶어 손전화로 전화를 하니 오늘이 개학인 줄 몰랐답니다.
5학년이 된 아이는 4학년이 된 동생과 집에 있다고 합니다.
내일은 곡 학교에 보내시라 말씀드리고 끊었지요.
다음날 학교에 온 아이는 키도 크고 웃는 얼굴의 멋진 아이였습니다.
첫인상이 참 좋았지요.
헌데 그 이후부터 전 그 아이로 인해 속상했습니다.
걷지 못하고 뛰는 아이,
교과서를 갖고 오지 않는 아이, 준비물이 없는 아이,
싸움이 나면 항상 관련이 있는 아이.
그러면서 이름이 자주 불리다보니 아이는 슬슬 제 눈치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아이를 남겼습니다.
그리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전 그 아이에게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엄마는 일주일에 4번 이상을 11시가 넘어야 들어 오시고 아빠도 당연히 늦으시고...
저녁은 4, 5학년의 두 남자애들이 찾아서 먹는답니다.
11시 넘어 들어 온 엄마는 집안 일 하시느라 자기들관 이야기 나눌 시간이 없답니다.
전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 아이에게 참 미안했습니다.
어머니와 어렵게 약속을 했습니다.
바쁘신 어머니는 약속시간이 2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오셨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1년 반전만 해도 항상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시던 어머니는 일을 시작하신 뒤로 욕심이 생겨
또 다른 공부까지 시작하셨답니다.
그러다보니 귀가 시간이 자꾸 늦어지고 아이들에게 소홀해질 수 밖에 없었다고 하더군요.
제 전화를 받고 아빠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달라지기로 하셨답니다.
7시 이전에 두 분 중 한 분은 반드시 집에 오시고 토요일도 아이들과 함께 보내시기로 했답니다.
전엔 토요일도 귀가시간이 11시였답니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학교에 와서 상담을 한다고 하셨습니다.
고맙다는 말씀도 몇 번을 하셨지요.
그리곤 갖고 오신 검은 비닐봉지를 내미십니다.
"음료수예요."
"그래요? 선생님들과 잘 마실게요.다음부턴 그냥 오세요. 속에 다른 것은 없지요?"
하며 속을 들여다보니 흰봉투가 보입니다.
꺼내서 드렸지요.
이 어머니 얼굴이 빨개지시면서 어떻게 하실 줄을 모르십니다.
학교 오기 전 많은 사람들에게 상의를 했는데 하나같이 봉투를 준비하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렸지요.
"많은 선생님들 중에는 정말 상담이 필요한데 이렇게 오해하실까봐 아예 상담 자체를 포기하시는 분도 많다."고.
그리곤 부탁드렸지요.
다음에 누군가 어머니께 상의하는 분이 계시다면 봉투는 절대 가져가지 마시라고 말씀드려달라고.
우리 동학년엔 오십이 가까운 선생님이 계신데 3월달에 봉투가 서너번 왔습니다.
그 선생님 참 속상해 하셨지요.
내가 나이가 많다고 이렇게 보내는 것 같다면서...
그러시면서 일일히 편지 써서 돌려 보내셨습니다.
저 같은 경우야 이제 이 학교에 4년째 있으니 그런 일은 거의 없습니다.
위의 학부형님은 이사온지 얼마 안 되어 저에 대해 잘 모르시지만 이 곳의 학부형님들은 대부분
저 자신보다도 저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여기 오시는 학부형님들께 부탁드립니다.
봉투 절대로 주지 맙시다.
문제가 있다면 만나서 얼굴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면 해결점이 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요.
그렇다고 봉투를 준다면 그것은 부모의 이기심입니다.
받는 사람이나 주는 사람이나 똑같습니다.
봉투! 주지도 받지도 맙시다.
상담한 그 아이, 요즘 얼굴에 미소가 가득입니다.
생활도 많이 차분해졌고 교과서, 준비물도 잘 갖고 옵니다.
교육은 학교에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학교, 가정, 사회가 함께 해야 할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