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이나 된 걸까?
그를 처음 보았을때가...
준비없이 나간자리..그곳에 그가 있었다.
수줍은 미소와...어눌한 말투....한 옥타브는 높은듯한 목소리..
그를 보면서 왠지 가슴이 설???
하지만 그 옆에는 다른사람이 있었다.
내 옆에 다른사람이 있었듯이..
편치않은 자리..편치않은 만남..
잠시..나를불러준 사람의 입장을 배려해 시간을 매웠다.
돌아오는길..허둥대는 발 걸음속에 그가 있었다.
몇 번일까? 그 이후로 그를 만난 것이.
노래방에도 갔었고..마주앉아 술잔도 기울였었다.
언제나 서로의 옆에는..또다른 사람을 앉혀 놓은체..
'참 좋은사람인 것 같다..'라는 느낌... 그랬다.
오늘처럼 비오는 밤 이었으리라..
카키색 원피스에 보랏빛 우산을 들고..왠쪽 가슴엔 은빛 블로우치를 꽂은체 나간자리..
한 사람이 자리를 비운틈에...우리는..메일..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즈음 나는..'마음을 나눌수 있는 누군가'를 간절히 바랬던 것 같다.
어쩌면 그 바램이 나를 그 곳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라면..마음을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욕심없이 내 마음을 받아줄 수 있을 것 같았고...나 또한 욕심없이 내 마음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그는..내 옆에 있지 않았다.
그렇게...시간이 흘렀다.
나도..그도..남은 사람들도...제 자리로 돌아갔다.
어느 잠 안오는밤...딸과의 약속을 지키려..다음에서 딸의 친구를 찾아..
메일을 보낸밤...스치듯 그의 이름이 떠 올랐다.
누가 시키기라도 한듯...나는 그의 이름을 그렸고..그를 찾았다.
그리곤 그에게 메일을 보냈다...망설임은 없었다.
그가 보지않을꺼라는 생각이 더 컸으므로....그저 보내는것만으로도
내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만족했다.
언젠가..어떤식으로든 내 마음을 표현하고는 싶었지만..그 결과에대한 바램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기대하지않았던 일에 대한 기쁨...이런것일까?
놀랍게도 그에게서 답장이 왔다...
그렇게...우리의 만남은 시작되었나보다..
그의 메일을 받고...내가 또 답하고..
그에게 나를 숨기고도 나타내고도 꼭 어떻게하고싶지는 않았다.
숨겨야할 이유도 없었지만..
나의 존재를 궂이 나타내고싶지도 않았다.
그저 마음을 나눌수 있는 사이라면 그것으로 족했다.
몇 번의 메일이 오고갔을때..그가 나를 알았다.
조금은 당황했었지만..변명하고싶지는 않았다.
어쩌면..그가 실망하게될까봐 걱정은 했었으리라..
그가..이러는 날..흉보면 어쩔까...걱정은 했었으리라...
그렇게...우리는 서로에대해 알게되었고..
이제는 서로의 모습을 그리며 메일을 주고받게 되었다.
그를 마음속에 오래 생각했던 탓일까?
아니면 유난히 편한 그의 행동탓이었을까?
나는 그에게 아주 쉽게 빠져들었다.
그의모든 것이 좋았고..그와함께일때는..행복했다.
두려움도 함께인동안은 이겨낼 수 있었다.
내게 이런용기가 있음에 적잖이 놀라긴 했지만
나의 이런행동이 후회스럽지는 않았다.
그를 만나고...손을잡고..포옹을 하고...입맞춤을 하고..
글쎄.....
내가..왜 그렇게 쉽게 빠져들고...허락하게되었는지..
어쩌면 나도 모르는 내 마음속에..헤픈마음이 숨어있었던건 아닌지...
그저..그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해 주고싶었다.
그게...내 마음의 전부였다.
그와함께 다녀온 서울...
그와 나눴던 대화..
그와 함께 맞았던 차 안에서의 새벽..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문신처럼 내 가슴에 새겨져 있다.
기다려도 오지않을 사람이지만..
아주아주 오래 기다려도..
결국은 남남으로 돌아서...잊혀질 사람이지만.
내 삼십대의 삶 어느중간에..문득 찾아와..
진한 그리움과 설렘을 가르쳐준 소중한 사람....
그런 그 사람이 참 좋았었다...
그와의 마지막 여행...
그가..허락해준...여행..
내가...기다렸던 여행...
그저..평생을 내가 그리다말 순간이었을 것 같았는데..그게 현실이 되었다.
함께 손을잡고..오랫동안 차안에서 나눈 대화..
그리고 그와함께 바라본 바다..함께 몸을 숨겼던 우산...
함께하던 저녁식사..그리고..한잔의 술...
모든 것들이...그저...오랜그리움으로 남을 추억이 되리라...
바다가보이는 모텔이었다.
그가..잠들어있었던 그밤..
그의 소매없는 내의를 대신걸치고...바라본 바다..
쉼 없니 내리를 빗줄기를 온 몸으로맞으며 서 있던 가로등..
경사진 아스팔트를...내리는 가로등불빛을 받아..반짝이며 흐르던 빗물..
성급하게 다가와 바위에부딛혀 부서지던 파도..
그리고..빗소리....
그의 낮은 코고는소리...
가만히 그의옆에 누웠다.
가슴에 가지런히 얹은그의 왼팔을 살며시 가져와 팔베게를 했다.
느낌이 좋다...그밤...나는..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포근한 품안에서 단잠을 잔 것 같다.
미동도 없던 그...포근히 안아주던 그 느낌...
이른아침..서둘러 일어나 세수를 하고..화장을 하고..그를 ...내려다 본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게..그가 가늘게 실눈을 뜨고..
그런 그에게 입맞춤을 한다...
정말...사랑하고싶은 사람이다....
정말 사랑스런 사람이다....
그리고...정말 정말...고마운....사람이다....
그가 내 뱉던 한마디 한마디의 말...
어쩌면 그를 그리워하는 시간..나는...그 말들을 되새김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무심하게 내 뱉았을지도 모르는 그 말을...나는 오랫동안
그리움으로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시끄러운 터미널..
그가...돌아섰다.
내가 떠났다..
그렇게...우리는 헤어졌다...
왜...그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까?
왜 그렇게도 아쉬웠던 것일까??
그는...나보다 조금 덜..내가 보고싶다고 했다.
하지만..나는...알 것 같다.
나만큼..그는 날 좋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나만큼 그는 날 그리워하지도...않을거라는 것을.
그저 기억속에 스쳐간 한 여인으로 남게되길 바라겠지.
생활의 중간 문득 문득..떠 오르는...그런...
주는 것으로 만족한...마음..
욕심없는..바램없는 마음..
그런 마음을가지고 싶었었다.
하지만 그건..마음일뿐...내 마음한켠엔 늘 기다림이 있었다.
그 기다림이 조금씩 지치는 마음으로 변하고..
그러다가..조금씩..미워하는 마음으로..그리고 포기하는 마음으로..
그러다가 이제는 이해하는 마음으로....
그냥...비오는밤..
빗소리를 들으며..그가 생각났다.
그리고..그와의 일들이 떠 올랐고..
그리고...버릇처럼..이렇게...마음을 그리고 있다...
이제는...더 이상 줄 마음이 없다.
모두 다 준 것 같다..
후회없어야 한다고했지....더 줄것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미련또한 없다고...
나는...표현하는 사랑이 아름답다...는말을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그래서 나는...모두 표현한다.
돌아서 후회할지라도..나는 모든 마음을 표현하고싶다.
줄수 있는건무엇이든 주고싶고..
표현할 수 있는건 뭐든 표현하고싶다..
그러므로...후회없는 날들이기를...
돌아서 후회하지 않게 되기를....
2003년 4월..비오는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