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가 한창인듯한 봄날에 울긋불긋한 향기가 내뿜는 운동장에서 찍은 사진을 본 순간 난 정말로 놀랐다.
남학생이 서있는 것이다. 여학교라 축제때만 남자의 출입이 되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의 얼굴은 꿈에서라도 보기 싫은 얼굴이었다.
매년 그는 그날이 오면 늘 그자리에서 먼발치에라도 나를 보기 위해서 공부도 내팽개치고 달려온다는 사실도 그 순간에 알게 된것이다.
국민학교 6학년 부터 중학교,고등학교 까지 무려 7년간을 항상 나만 바라보면서 상상병동 걸렸다는 소식도 전해들었고 내 주위의 남자는 선배든 후배든 얼씬도 못하게 만드느라 주야로 바쁘게 다니면서
주변을 맴돌다가 한 번 말붙이면 똑 소는 말투에 지레 겁을 먹는 순박한 소년이었다.
영화를 좋아한다면 영화티켓을 연극을 좋아한다면 연극티켓을 내 주위의 친구에게 전해주었지만 매번 거절했고 아침이면 등교길에 정거장에서 저녁이면 교회의 마당에서 방학이면 수시로 건네는 그의 선물공세는 늘 잃어 버리기가 수십차례였고 어디를 가든 그의 시선은 나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그의 부모가 와서 한번만 만나게 해달라고 해도 끝내 나의 고집을 꺽지를 않았고 심지어 그를 좋아하는 여자친구는 나에게 눈물로 호소하기 까지 했지만 난 요동치 않았다.
무엇이 그토록 그를 싫어 했는지 조그마한 체구인 나는 그의 큰 눈과 덩치가 너무나 두렵고 징그러웠든것 같다.
난 그 축제에 온 그를 큰맘 먹고 데이트 신청을 접수 했다.
고작 간곳이라곤 나의 학교에서 그의 학교까지 약 10km가 넘는 거리를 걷는 것에 끝났다.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기억은 안난다.
단지 그에게 해줄수 있는 나의 최대한 배려임을 나 스스로 안다.
그에게 끌리지 않는 마음은 어쩔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20여년이 어느날 Tv속에서 CAN이라는 그룹을 보고는 나는 숨이 멎는줄 알았다. 그와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었다.
남자 문제가 늘 풀리지 않아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의 대한 나의 죄책감에 늘 마음이 아팠는데 그 화면속에 비친 배씨라른 성을 듣고 더욱 놀라웠다. 그의 이름이 배철효였다. 부산이라는 것도 같고 혼자라는 것도 같고 나는 그가 아닌가 더욱 봤지만 그의 부모가 건설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만 확인되면 되는데 하면서 그냥 지나쳤다.
5월이 다가오면 꽃가루에 몸살을 앓는 것도 그가 어디선가 나를 원망하는 느낌때문에 싫은 하는 사람일지라도 좋아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정말로 어렵고 힘이 들더라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친구야 정말 그때는 미안했다.
너의 마음의 100만분의 1이라도 생각했다면 진심으로 대하는 너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 죄책감이 더욱 크다.
부디 어디에 살더라도 나를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열심히 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