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1,310

당신이 싣었던 그 양말을 싣기던 그손길을... 다시한번 느낄수 있다면...


BY 산부인과 2003-04-30

25살 여름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식당을 하는 저에겐 여름이 곤역이였습니다
날은 덥고
배는 부르고
임신초기부터 심한 입덧에
피골이 상접한 얼굴로
새언니가 아길 낳고 누워있는 안방에
같이 누어서 누런 얼굴로
빙빙 도는 하루를 연명하며 살던 18주
그렇게 시간은 지나고
임신 7개월에 신우염이 걸려
조산과 진통이 와서
잦은 통증에 아기가 빨리 나올까 하는 두려움과
심한 고열
허리 통증은 아직 엄마로써 준비가 덜 되어 있는 나에겐
고통의 나날이였습니다
다행이 염증이 가라앉고
콩팥에 물이 없어지고
열흘간의 병원생활을 마감하고
그렇게 34주가 되어갔고


식당에서 카운터를 보던 어느날
주방에서 밀린 설겆이를 도와주려 쪼그리고 앉으려는 순간
미끄덩한 양수가 빠져나온걸 느꼈습니다
병원에 근무했었고
남들보다 아는것이 많았던 저는
그런 걱정과 두려움이 너무 많았습니다
아는게 많으면 탈이라고...
병원에 문의를 하고
그 다음날 바로 평택에서 서울로
병원에 가서 초음파를 보던날
양수가 많이 빠져나갔고
아긴 제 주수에 비해 2주나 빠지고
아직 조금은 시간이 있으니까
절대 안정을 취해서
양수가 어느정도 차 오를때 까지 기다리자고 했습니다
다시 친정에
꼼짝도 못하고 누워지낸지 일주일이 지난후
다행이 양수가 차 올라
다시 평택으로 하행...
예정일인 6월 23일에서
일주일 을 남기고 출산을 준비하러 전 다시 친정이 있는 곳인 서울로 이동을 했습니다
어서 어서 나와라 아기야
엄마와 아빠가 널 너무 기다리고 있구나
이제 몇일후면 아길 만난다는 기쁨에
하루가 일녀같은 시간을 보내고
매일 통화를 하면서
(아직 진통 없니?)
<응 없어>
(언제 나온데?)
<몰라>
신랑과 저는 매일 골백번도 통화를 하며 아길 기다렸습니다
예정일서 일주일이 지나 병원을 갔지만
선생님께서는 느긋한 놈이라고
아기도 작고 하니 좀더 기다려 보자고 했습니다
그려려니 하고 또 한주를 기다렸지만
그후로 지나가는 시간은
정말 일초가 일년같고
외출도 못하는 감옥같은 생활이 지겨워 졌습니다
신랑은 신랑대로
저는 저대로
친정 엄마는 엄마대로
아무리 기다려도 출산의 기미는 없고
태동은 격동적이고
7월10일
더는 기다릴수 없기에
병원으로 가서 유도분만을 하기로 했습니다
1998년 7월 10
전 입원수속을 하고
최대한 약하게 진행을 유도하는 알약의 유도분만제를 먹고
진통을 기다렸습니다
2시간 간격으로 먹는 알약을 한번 먹고난
8시20분
그땐 일일 연속극 보고 또 보고가 인기였습니다
엄마와 같이 텔레비젼의 연속극을 보면서 하하 호호
10시에 다시 알약을 먹고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데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입원수속 하면서 관장을 했기에
그 배가 아픈가 보다 하고 화장실을 갔는데
빨간 선혈이 뭍어 나오고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슬이 비춘거지요
기뻤습니다
드디어 아길 만날수 있다는 생각에....
분만실로 내려오라는 전화를 받고
엄마와 3층의 분만실로 내려가서
내진을 하는데
유도분만을 하는중에 자연 진통이 오고 있는 상황이라
자궁문이 1.5센티가 열렸다고 하는군요

호랑이 해에 태어나는 여자아이므로
제발 해가 있을때 태어나게 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웃으면서 엄마도 호랑이 아기도 호랑이...
12시가 채 되기도 전에
극심한 통증이 밀려오고
남들은 10분 간격으로 몇시간
5분 간격으로 몇시간
전 1분 간격으로 오는 진통으로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아~ 이렇다 정신 잃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새벽2시
혼자 온갖 비명을 다 지르고
병원이 떠나갈듯 울고불고 ....
수술을 해달라고 의사의 멱살을 잡고
끝내는 자궁문이 5센티 열린 상황에서 무통분만을 하게 됐습니다
근데 이게 왠걸
플라시보 현상(공갈 주사효과)만 당해서
무통분만을 하긴 했는데
이 주사액을 정말 병아리 오줌만큼만 주입을 시켜서
온갖 진통 다 겪고
전 아길 낳았지요
새벽3시가 되서
더는 못참는다고 수술을 해달라고 울고 불고 매달리고
끝내 진통을 옆에서 보던 엄마는
평택에 있는 저의 신랑에게
여차저차 해서 수술을 하게 되면 엄마가 보호자 승락을 한다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 시간 저의 신랑은
자다깬 상황에서 언능 경부고속도로를 밟고 서울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과속으로 카메라에 찍히는줄도 모르고
나중에 벌금 과 면허 정지나왔습니다
새벽녁에 도차한 신랑은
진통 막바지라 분만실에 들어올수가 없었습니다


진통중 흘러내리는 양수와 선혈과 통증은
아마 다들 아실껍니다
그렇게 아침 7시가 다 되어 가고
여름날 아침 해가 떠오른 순간
드디어 저의 여식
혜연이를 만날수있었습니다
분만 수술실로 옮긴후
비명 세번 지르고 저의 여식을 만났지요
머리가 새카맣게 숱이 많은
온몸에 털 수두룩한 원숭이 새끼를 보는거 같았습니다
(혜연아~ 혜연아~ 엄마야 엄마~)
너무 기쁘고 통증이 끝났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났습니다
못생기고 쭈글거리는 태지에 가려진 여식을 보니
내가 자연분만을 했구나
정말 내가 엄마가 되었구나
그렇게 아길 낳고 태반을 꺼내는 순간
예전에 난소의 물혹으로 3번이나 수술을 경험한 저였기에
유착으로 인해
태반이 제대로 나오질 못했습니다
간호사가 배 위로 올라가서 배를 누르고
의사의 다급한 목소리와 분주하게 움직이는 간호사들
정말 제 양 다리 사이로 의사의 손이 다 들어가서 태반을 잡아 빼고
난리 버거지였죠
의식이 없어지고 눈앞에 보이는 사물이 흐려지는 순간
다행이 많은 출혈이 있었지만
별탈없이 전 분만 수술실서 나올수 있었습니다


선혈이 낭자한 그 상태 고스란히
한여름에도 심한 떨림에
전 입술이 새파랗고
얼굴을 백지장보다 더 하얀(제가 피부가 검습니다)
상태에서 수술방 문이 열리고
저의 신랑은 열려진 문 사이로 절 보고 있었습니다
다가오지도 못하는 신랑
말도 못꺼내는 신랑
(괜찮니?)
대꾸도 못하고 전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회복실로 옮겨진후
새 입원복으로 갈아 입고
사시나무 떨듯
오돌거리자
저의 친정 엄마는 아무리 여름이라도 아길 낳은 산모는 양말을 싣어야 한다며 병실로 양말을 갖으러 올라갔습니다
갑자기 저의 신랑이 신고 있던 양말을 벗습니다
그러면서 제 발을 잡습니다
(발이 왜이리 차니.. 응?)
차디찬 저의 발을 두 손으로 웅켜 잡고 얼굴을 부빕니다
차가운 제 발위로 뜨거운 저의 신랑 눈물이 떨어집니다
그 무엇보다더 더 뜨거운 눈물이...
벗은 그 양말은 제 발에 싣겨줍니다


얼마나 신랑의 손길이 따뜻한지
얼마나 행복한지
하지만 잠시 그 행복을 느끼기도 전에
전 그만 혼절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두 눈을 뜨자 아침이 훨씬 지나고
붓기 하나 없는 산모의 얼굴로
친정아빠와 새 언니 신랑 친정 엄마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수고했다... 사랑한다.. 선영아~)
그때의 그 따뜻한 마음을 다시 한번 되새길수 있다면
지지고 볶고 이따위남자라고 여기면서
내가 왜 일찍 결혼을 해서 이 고생을 하누...
할때마다 그 손길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려고 하는데
시간이 너무 지나선가요?
잘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이 글을 쓰면서 가슴이 뭉클 거리는 건 ...왜 그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