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에세이 좋은생각, 발행일 2003.9.5
TV 에세이 좋은생각
▷ 제사상에 오른 바나나
아버지 제삿날이었다. 일요일이었지만 그날따라 현장일이 바빠 해가 떨어져서야 겨울 퇴근을 할 수 있었다. 마음은 몹시 다급한데 그런 내 마음과 달리 버스는 좀처럼 빨리 달리지 못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던 버스는 평소 한 시간 반이면도착할 부산까지 무려 다섯 시간이나 걸려 자정이 다 되어서야 간신히 도착했다.
“어머니, 형님. 고속도로가 너무 막혀서요. 죄송해요.”
쑥스러운 변명을 늘어놓으면 안방으로 들어서는데 제사상 위에 전에 보지지 않던커다란 바나나 송이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져서 “아니 제사상에 웬 바나나야? 하면서 얼른 바나나를 내려놓으려고 했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어머니의 벼락 같은 음성이 들렸다.
“그냥 둬라.”
어머니의 단호한 음성에 더욱 놀라 어리둥절한 채 서 있자, 어머니는 “와, 느그 아부지는 바나나 좀 묵으면 안 되나” 하시면서 내 손에서 바나나를 빼앗아 제사장에 다시 올려놓으셨다. 그리고는 계속 말을 이으셨다.
“이 녀석아, 니들은 좋은 세상에 사니까 맛난 것 다 먹고 지내지만, 느그 아부지는 한평생 느그들 키우느라 못 먹고 가셨다. 이 귀한 바나나, 얼마 전 나도 먹어 보니 참 맛나더라. 그래서 한번 잡숴보라고 내가 올렸다.”
소매 끝으로 눈물을 훔치며 휑하니 안방을 나서는 어머니 말씀에 나는 어찌할 줄 몰랐다.그날 나는 아버지께 절을 드리며 수없이 되뇌었다. ‘아버지, 잘못했어요. 맛있는 바나나 많이 드세요’라고.
그날 이후로 우리집 제사상에는 늘 먹음직스런 노오란 바나나 송이가 올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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