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227

이제는 대통령마저? - 대한매일 최진순 기자의 글


BY 리를로 2003-09-23

이번에는 대통령에게 칼이 드리웠다. 노대통령이 태풍 매미 상륙 시각에, 청와대 비서실장, 경호실장 등과 부부동반으로 연극 공연 관람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조선, 중앙, 동아는 인터넷판과 종이신문 가리지 않고 톱 혹은 주요 기사로 비중있게 다루면서 대통령을 공격하고 있다.

김진표 경제부총리도 제주도에서 골프를 쳤다가 호된 구설수에 오르내렸던 것에 비추면 이 여파는 쉽게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대통령이나 각료가 큰 피해가 예상되는 태풍 북상 소식을 알고도 사적인 용무를 본 것은 공인으로서의 도리를 망각한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것을 다루는 언론의 태도다. 누가 보더라도 대통령이나 집권세력을 향한 독기가 서려 있다. 나쁘게 보지 않으려면, 이 일은 대통령이 국정을 외면하고 연극 공연을 보러 간 것도 아니고, 술에 취해 공연장에 온 것도 아닌 평범한 스케쥴이었다.

하지만 언론은 노 대통령이 "태풍은 아랑곳하지 않고 잘들 놀고 있었다."는 식으로 소설을 쓰려는 속내가 보인다. 피해를 입은 수재민들에게 미안하지 않느냐, 국민에게 사과하라는 여론을 만들려는 분위기다. 그것은 국민감정을 부채질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깔린 보도에 다름아니다.

투표권을 갖고 있는 유권자들은 본질(내용)의 지배보다는 외형(스타일)의 지배를 곧잘 받는다. 언론은 상징 조작을 교묘하게 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이 태풍 앞에 놓인 국민을 외면했다는 '가설'을 놓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또다른 소설식 기사 작성을 기자들에게 요구할 것이다.

만일 대통령이 태풍 피해가 계속 확대되고 있었거나 태풍 뒷처리 기간 중에 그런 일을 했다면 문제가 다르다. 그때엔 대통령도 지금보다는 더 따가운 비판을 받아도 마땅하다. 그러나 지금은 국가재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절실한 때이다.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의 연극 관람에 분개해야 하는가, 아니면 국가재난 시스템 하나 갖추지 못한 지난 날을 반성하고 지금의 형편을 새롭게 구상해야 하는가? 감정에만 충실했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언론들이 존재하는 한 똑같은 일-감정보도, 미봉적 수습의 악순환-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

비판은 언론의 생명이요 근간이다. 제대로 된 비판, 누가 봐도 명백한 부정에 대해서 보도의 성역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정확한 사실 관계를 확인하지 않거나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실에 대해 폭로로만 일관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빙자한 또다른 테러일 뿐이다.

청와대는 최근 동아일보의‘권양숙 여사 미등기 전매 의혹' 보도와 관련 "터무니없다."는 브리핑을 내놓고, 동아일보 기자들의 질의 응답에 응하지 않고 있다.

특히 청와대가 이 부분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는 것을 같은 비중으로 다루지 않는 것도 문제다. 또 그 첫 보도에서 입수 정보에 대한 사실 확인이 여의치 않다면, 될 때까지 기다려서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지 않도록 신중한 접근이 요구되는 데도 한번도 그런 진중함을 볼 수가 없다.

한국 언론은 언론권력을 마치 신성불가침의 영역인양 설정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언론자유를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지는 심히 의문이다. 언론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희생할 때는 부정한 권력에 빌붙었고, 언론자유가 확보된 지금에는 개혁정부의 언론정책을 힐난만 하니 말이다.

국제적인 언론단체라고 알려진 IPI가 "한국을 언론자유 침해 국가"라는 식으로 선언한 것에 대해서 국내의 다른 언론 참석자들은 몰랐다고 한다. 그 IPI가 노 대통령과 갈등관계를 갖고 있는 신문사 중 하나인 조선일보에 의해서 흘러간다는 지적을 받는 것에 비춰 보면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언론의 공정한 역할과 공공적 책임은 매우 소중하다. 조선일보의 인터넷자회사 디지틀조선(www.chosun.com)이 벌써 내년 총선 특집 페이지를 인터넷에 선보이고 있다. 정치일정을 수개월이나 앞선 여론선점적 장치가 나온 것은 주목할만하다.

언론이 내년 총선에 사활을 걸고 있음을 반증하는 대목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을 좌지우지하고, 정치를 희화화하고, 정치를 이성보다는 감정적으로 들쑤시는 데만 능통한 언론권력이 존재하는 한 한국에서 전면적인 '개혁'은 존재할 수 없다.

단지 유권자들이 성장한 것은 위안이 된다. 기성언론의 그런 보도를 뛰어넘은 선택이 두 차례 대통령선거에서 확인됐던 것이다. 기성언론이 장악한 감정적 굴레에 기반한 여론독점을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한 후보에 집중해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백명의 국회의원을 전국에서 뽑는 내년 선거는 형편이 다르다. 특히 노무현 정부와 언론의 死鬪가 어느때보다 치열하다. 노 대통령의 연극 관람에 따른 언론의 미묘한 감정보도, 동아일보의 권양숙 여사 의혹 기사 재탕, IPI의 부적절한 간섭 등 노무현 정부와 언론의 전장은 더욱 첨예하게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데다가 집권당은 유례없이 분열해서 정치실험을 목전에 두고 있다. 다시 한번 역사는 유권자들에게 '혁명'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 혁명은 종전의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것은 감정이 아닌 이성, 형식이 아닌 시스템에 기초하는 '개혁'이다.

특히 그 현장은 기성언론 대 (지식대중으로 탈바꿈한) 네티즌들의 격전장으로 대체될 것이다. 디지털 세상의 네티즌들은 다시 기성언론을 무릎꿇게 할 수 있을 것인가. 기성언론의 기자로서 그 다음의 역사적 장면이 다시 '나'를 부끄럽게 해줄 수 있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