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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살아가며...


BY 권경숙 2004-01-17

하루를 살아가며 조금 마음 답답해서 이렇게 몇자 적습니다...

 

사무실의 커다란 창문으로 보여지는 눈내리는 풍경은 참으로 평화로와 보이네요...

그러나 제 마음은 그렇지가 않네요...

 

몇일 안있어 설날이 돌아 오지만 결혼후 지금껏 혼자 해왔던 것처럼 이번 설에도

직장일을 끝내고 남편과 장보고 옮기고 음식하고...그렇게 해마다 혼자 하는것에

익숙함도 생기렸만...여러 다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우애 있게 지내지 못하는 시댁

식구들에게 이제는 더 이상의 희망이 없는것같네요....

 

제게도 3분의 형님이 계시지요...그러나 첫째 형님께서는 장사 하신다는 이유로 지금껏

시아버님의 생신날만 겨우 챙기시고...그나마 살겁게 정겹게 말씀하시는 스타일도 아니고...

대한민국에 맏이만 부모 모시라는 법 있냐고 제게 물으시는 분이지요...

제가 결혼하기 한참전에 시부모님께서 고향을 떠나오신 이유도 큰 형님께서 모시지 않는다

고 해서 밤에 야간 도주하듯 이불과 수저만 겨우 챙겨 그렇게 고향을 떠나 오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맏이 곁을 떠나 서울 창동에 10년 가까이 전세도 아니고 월세로 계시다가...

국가유공자이신 아버님께서 보훈청에 신청하신 아파트가 제공 되어서 제가 결혼하던

92년부터 중계동에 계시게 되었지요...

 

저역시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26살까지 직장생활을 하다 오래동안 사귀었던 한 사람과

이별을 하고 3여 동안 닫고 있었던 마음을 다시 열게 해준 남편과 짦지 않은 시간을

만나며 결혼을 했지요...

그때당시 남편도 여유 있던 생활이 아니였던지라...도금 공장장으로 하다 부도후 임대료와

직원들 월급 정리해주고 다시 월급장이로 자리를 잡아가던 중에 저를 만나게 되었지요..

상황을 짐작하신 부모님과 그리고 친오빠 같은 큰 형부마저도 결혼을 반대했지만...

전 결혼을 결국 했지요...

 

그리고 이어진 아무 연고자 없던 수원에서의 월세로 시작된 신혼 생활이었지요...

그러면서 저역시 직장생활을 다시 시작했지요...강남으로...3개월을 수원에서 강남으로

출 퇴근 하는것을 본 시아주버님이 많이 놀라셨지요...그때쯤 큰아이를 가지게 되었고

입덧이 너무 심해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서 의정부로 다시 이사를 오게 되었지요...

 

큰언니의 도움으로 의정부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그곳에서 큰아이와 둘째가 태어났고...

이때부터 시부모님 봉양이 시작 된 것이었지요...

 

남편의 월급이 80만원이었고 아이들은 4살 1살이었고...한달에 시댁에 갈때마다

4만원 가까이 먹거리에 비용이 지출 되었지만 ...시아주님들과의 왕래는 이때까지도

거의 없었지요...

이렇게 두아이와 그리고 세째를 임신해서 시어님의 칠순을 일주일 가까이 준비하고 음식

만들어 이틀을 집에서 치루어냈지요...

 

그렇게 흘러간 시간으로 세째가 3살 되던해 세째 아주버님의 갑작스런 바람과 이어진 이혼

그나마 유일하게 따뜻하게 정을 주셨던 형님이셨는데 ...그 이혼을 막아 보려고 남편은

강원도 속초까지 한걸음데 몇번을 달려 갔지만...끝내는 이혼을 하셨고...

그러면서 세째시숙의 새로운 여자를 따라가시겠다는 시부모님의 말씀...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께요...사무실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