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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디차이트지 - 노무현을 위한 촛불


BY 브리핑 2004-04-08

독일의 시사주간지인 ‘디 차이트(Die Zeit)’에 실렸던  메인기사입니다.
멀리 독일의 언론이 서울의 조중동 보다 훨씬 우리에 대해 정확히 알고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밝은 시야를 위해 가져왔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노무현의 출현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월드컵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외국에 주고 있습니다.

Kerzen für Roh

Südkoreas Wähler könnten den geschassten Präsidenten rehabilitieren

Kann man tiefer stürzen? Südkoreas Präsident Roh Moo Hyun steht vor einem Trümmerhaufen – so jedenfalls könnte es scheinen. Keine eineinhalb Jahre nach seinem überraschenden Wahlsieg hat das Parlament in Seoul mit Zwei-Drittel-Mehrheit ein Amtsenthebungsverfahren gegen ihn eingeleitet. Die beiden großen Oppositionsparteien werfen Roh vor, im Wahlkampf für die Parlamentswahlen am Donnerstag nächster Woche seine Pflicht zu parteipolitischer Neutralität missachtet und die ihm nahe stehende Uri-Partei („Unsere Partei“) unterstützt zu haben. Ob der Präsident sein Amt je wieder ausüben darf, entscheidet das Verfassungsgericht, das für sein Urteil sechs Monate Zeit hat.

Befindet sich die junge südkoreanische Demokratie also in ihrer ersten schweren Verfassungskrise, wie die konservativen Zeitungen in Seoul schreiben? Ist das Land gar „außer Kontrolle“, wie das US-Magazin Time titelt? Mitnichten. In Wirklichkeit könnte Südkorea nach dem unrühmlichen Amtsenthebungsverfahren erneut vor einer demokratischen Sternstunde stehen. Denn am kommenden Donnerstag entscheidet das Volk, und wenn nicht alle Umfragen trügen, wird der ehemalige Dissidentenanwalt Roh, Präsident oder nicht, eine parlamentarische Mehrheit für seine Politik gewinnen, die völlig ohne die alten politischen Kräfte der Diktatur auskommt. Kann man mehr erreichen?

Südkorea tickt eben anders, allen voran der entmachtete Präsident. Vor sieben Jahren, während der Asien-Krise, war Roh noch Mitinhaber eines Restaurants in Seoul. „Kim Dae Jung hatte damals seine Milleniums-Partei gegründet. Da wollten wir nicht mitmachen“, erzählt Rohs Freund Yoo In Tae. Yoo, eine Kämpfernatur mit breitem Lachen, war bis Februar Leiter des Büros für politische Angelegenheiten im Blauen Haus, dem Amtssitz des Präsidenten. In den siebziger Jahren war er wegen seiner politischen Aktivitäten als Studentenführer zum Tode verurteilt worden, kam aber mit einer Haftstrafe davon. Heute kandidiert er als Bewerber der Uri-Partei in einem Vorort von Seoul. Bisher hält die Partei nur 49 Sitze im Parlament. Doch selbst die Umfragen in oppositionsnahen Medien sehen einen Erdrutsch-Sieg von Uri voraus. Die Partei könnte 200 Sitze im 300-köpfigen Parlament erobern.

Kühl bilanziert Yoo heute die „Ära der Kim-Reiche“: „Kim Dae Jung und sein Vorgänger als Präsident, Kim Young Sam, haben sich als jahrzehntelange Gegner der Diktatur große Verdienste um unsere Demokratie erworben. Aber sie regierten weiter im alten, imperialen Stil. In ihren Parteien hatten nur sie das Sagen. Erst seit der Wahl Rohs zum Präsidenten im Dezember 2002 stirbt die konservative Tradition der koreanischen Politik aus.“

Wer das nicht merkt, verschwindet von der politischen Bühne – so wie jetzt offenbar die beiden Altparteien. Dabei hatten gerade sie sich von ihrem Amtsenthebungsverfahren gegen Roh Zuspruch aus der Bevölkerung erhofft. Der Präsident galt bereits nach 13 Monaten im Amt als unpopulär. Doch schon 30 Stunden nach der Abstimmung im Parlament demonstrierten 100000 entrüstete Bürger mit Kind und Kerzenlichtern gegen die Amtsenthebung. Am nächsten Tag waren es 200000. Über drei Wochen lang setzten sich die friedlichen Kundgebungen Tag für Tag fort.

Demonstrationen in Südkorea waren früher ein Synonym für Radikalität und Gewalt. „Diesmal zeigte sich der neue Mainstream“, schwärmt Hwang Seok Young, Südkoreas bekanntester und gewöhnlich beißend kritischer Schriftsteller. Noch nie war Hwang auf sein Land so gut zu sprechen wie heute. „Die Leute sind nicht naiv; sie sind klug, fast weise und immer gewaltlos“, sagt der Bestsellerautor. „Sie hegen eine Vision von Freiheit und Demokratie, keiner von ihnen käme mehr auf den Gedanken, einen Molotow-Cocktail gegen ein Ministerium zu schmeißen. Zwar lesen sie keine Zeitungen, aber sie nutzen das Internet und sind gut informiert.“

Ob das der Grund dafür ist, dass an der Polizeizentrale in Seoul neuerdings in großen gelben Buchstaben die Web-Adresse „www.police.go.kr“ zu lesen ist? Vor dem Gebäude tobten früher Straßenschlachten. Jetzt will auch die Polizei nicht den Anschluss an die Internet-Generation verlieren.

Im Ausland hat der neue Stil der bürgerlichen Opposition bereits Eindruck gemacht. „Wir halten trotz politischer Unsicherheiten an unseren positiven Wachstumsprognosen fest“, schreibt die US-Investmentbank Goldman Sachs in ihrem jüngsten Korea-Bericht. Das Saubermann-Image des Präsidenten trägt zu seinem positiven Bild im Ausland sicher bei. Sogar Rohs Kritiker daheim räumen ein, dass die Justiz des Landes unter seiner Führung erstmals wirkliche Unabhängigkeit erlangt hat. Weshalb bereits 20 Abgeordnete im Gefängnis sitzen.


Die Zeit 2004. 04.07 (German)


Koreanisch


노무현 대통령을 위한 촛불

한국 유권자들, 탄핵 소추된 대통령을 복권시킬수 있어

이보다 더 깊은 추락이 가능할까?  어쨋든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은 현재 마치 폐허 앞에 서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에서 예상을 뒤엎는 승리를 거둔지 1년 6개월 밖에 안되었는데, 국회는 2/3이라는 다수의석을 이용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을 가결시켰다.
양대 야당은 노무현 대통령이 내주 목요일 실시되는 국회총선 선거전에서 공무원으로서의 중립 의무를 무시했으며 자신과 가까운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는 비난을 가하고 있다.
대통령이 다시 자신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서는 이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남아 있는데, 헌법재판소는 6개월내에 이러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렇다면 젊은 한국의 민주주의는 한국의 보수적 신문들의 논조에서 나타나듯이 최초로 중대한 헌정 위기의 상황을 맞은 것인가?
미국의 시사매거진 '타임'이 표제를 달았듯이 한국은 "통제 불능"(Out of Control) 상황에 처한 것일까?
그런데 사실은 한국은 대통령에 대한 별로 자랑스럽지 못한 탄핵소추 가결 이후 새로운 민주주의의 전기(轉機)를 맞고 있다.
왜냐하면 내주 목요일에는 유권자인 국민이 결정을 내리게되는데, 모든 여론조사 결과가 현실을 잘못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면 반체제 인권변호사 출신의 노무현 대통령은 현재 대통령으로서의 권한 행사 여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정책 추진을 위해 국회에서 다수를 확보하는데 성공할 것으로 관측된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은 낡은 독재체제에서 잔존한 정치 세력이 전혀 없이도 관철될 수 있는 것이다. 이보다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인가?

한국에서는 사태가 다르게 전개되고 있으며, 특히 탄핵 소추를 받은 노무현 대통령이 처한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7년전 이른바 '아시아 위기'가 발발했을 때만 해도 서울에 있는 한 식당을 공동 경영하는 일을 했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친한 측근으로 지난 2월까지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유인태 전 수석은 "김대중 대통령은 당시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했었는데, 우리는 민주당에 합류하지 않고자 했다"고 말했다.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투사형의 유인태 전 수석은 1970년대에 학생운동을 주도하는 정치적 활동을 하다가 사형 선고를 받은 바 있지만 징역형을 살고 출소할 수 있었다.
그는 지금은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수도권 지역에서 출마했다.
열린우리당은 그 동안은 국회에서 49석만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야당측에 가까운 언론사들의 여론조사에서도 이번 국회총선에서는 열린우리당의 압도적 승리가 예상된다. 열린우리당은 국회의석 300여석중 200여석을 차지할 가능성도 있다.

유인태 전 수석은 지금은 이른바 "3김시대"를 냉정하게 결산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은 수십년간 독재에 대해 항거함으로써 한국의 민주화에 기여한 공적이 크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과거의 권위적 스타일로 통치했다. 그들의 정당에서는 그들만이 명령권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2002년 12월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에 선출됨으로써 한국 정치의 보수적 전통은 종식을 고했다."

이러한 사태 발전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력은 정치 무대에서 사라지고 있는데, 이는 두 낡은 야당이 현재 맞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런데 양대 야당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를 시도하면서 국민들의 호응을 기대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한지 13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인기가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국회에서 탄핵소추가 가결된지 30시간이 지나자 10만명의 분노한 시민들은 아이들과 함께 손에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 다음 날에는 20만명이 촛불시위에 참가했다.
평화로운 촛불 시위는 지난 3주 동안 연일 계속됐다.

과거 한국에서 시위는 과격함과 폭력과 동의어로 이해됐다.
한국에서 가장 저명하고 가장 신랄한 비판을 하는 작가인 황석영씨는 "이번에는 새로운 추세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황석영씨는 과거 자신의 조국에 대해 지금처럼 이렇게 좋게 말하는 경우가 없었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그는 "이 사람들은 순진한 것이 아니라, 현명하고 지혜로우며 언제나 비폭력적"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비전을 갖고 있으며, 관청에 화염병을 던져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들은 신문을 잘 읽지는 않지만 인터넷을 활용하며 현실을 잘 파악하고 있다."

서울에 위치한 경찰청 건물에서 최근 큰 노란색 글씨로 적힌 웹사이트 주소(www.police.go.kr)를 읽을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과거 이 건물 앞에서는 가투(街鬪)가 벌어졌었다. 그런데 지금은 경찰도 인터넷 세대와 보조를 맞추어 나가는데 있어 뒤쳐지지 않고자 한다.

재야의 시민들이 주도가 된 이러한 새로운 스타일은 외국에서는 이미 강한 인상을 주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최근 한국보고서에서 "우리는 정치적 불안정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의 긍정적 성장 전망치를 고수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국 대통령의 청렴한 이미지는 외국에서 한국 대통령의 긍정적 인상을 심는데 기여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하는 인사들조차도 한국의 사법부가 노무현 대통령 정부 하에서 처음으로 실질적인 독립을 얻게되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미 20여명의 국회의원이 수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