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대통령 시절이 좋았다" 라고 말하는 이들은 대체로 그 시절을 경험한 지금은 50대가 훌쩍 넘은 중년들입니다. 지금은 수구꼴통 취급을 받는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대한민국 국민자격을 박탈해 버리면 속이 시원할 인적 청산의 대상들입니다. 그들은 왜 천하에 재수없는 인물,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적어도 30년동안 발목 잡히게한 독재자를 그리워 하는지 답답 하답니다. 그들은 새 대가리인가? 박정희를 평가하는 그들은 전부 야간 초등학교 출신인가? 진정 그들의 머리통을 두 쪽내어 진보의 맑은 물로 씻어내야 정신이 들 것이란 말인가? 몇달 전이었지요. 영등포역에서 근무하는 역무원이 달려오는 기차로 부터 어린아기를 구하고 자기는 두 다리가 절단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모두들 아름다운 역무원이라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우리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지요. 이 역무원이 달려오는 기차를 보고도 뛰어든 까닭이 무엇 이겠습니까?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기차길에 뛰어든건 그게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목숨과도 바꿀만한 무엇을 얻을수 있다"라는 가치판단 때문입니다. 얻을수 있다는 건 나의 만족입니다. 어린이의 목숨이 아니라 내가 목숨과 바꿔 얻을수 있는 그 무엇 때문에 그는 기차를 향해 뛰어 들었습니다. 그건 어린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역무원 자신을 위해서 입니다. 이런 심리 현상을 교과서에서 뭐라고 하는지는 하도 오래 되서 다 까먹었습니다만 이런식으로 그 역무원의 행동을 평가 한다면 그의 행동은 칭송받을 이유도 없고 그를 아름다운 역무원 이라고 부를 이유도 없게 됩니다. 왜냐면 그는 결국 자신을 위해 기차에 뛰어든 거니까요. 정치학 전공 하신분들 잘 아시겠지요. c.j.morgan이 정치의 본질은 정치인의 자기실현에 따른 인민의 반사적 영향 이라고 했습니다. 이런식으로 따지면 박정희 뿐아니라 세종대왕. 안중근의사. 유관순 열사. 김구선생 몽땅 추앙받을 이유 하나도 없습니다. 인간의 행위를 평가할때 가장 순수한 방법은 행위 그자체를 가지고 평가해야 합니다. 역무원이 자기만족을 위해서 기차에 뛰어 들었건 세종대왕이 잘난척 하느라고 한글을 만들었건 그 결과로서 많은 이들이 해택을 받았다면 그 나타난 해택의 정도를 가지고 평가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역무원이라고 칭송하는건 그의 행동으로 인해 어린이의 생명을 구했다는 결과로서 당연한 것입니다. 박대통령이 경제에 목숨건 이유가 거지나라 왕초보다 자기도 폼나고 돈많은 나라 대통령을 종신토록 해먹고 대를 이어 해먹으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정말 그렇다해도 그의 욕심으로 인해 삼천만 거지가 거지꼴 면했으면 그것으로도 평가 받을만 하지 않습니까? 박대통령 아니었어도 경제발전 이루었으리라는 변명은 말하는 사람 구차해 보이니까 그만 두시길 바랍니다. 지금도 그가 통치를하면 우리가 더 잘살게 되리라고 생각치 않습니다. 누구 말처럼 패러다임이 바뀌었으니까요.그의 역사적 사명은 한국 경제 발전의 주춧돌을 놓는 것이었고 그 역할 충실히 하고 역사속으로 돌아갔습니다. 거지를 슈퍼마켓 주인으로 만들어 놓는것으로 그의 역할은 끝났습니다. 그가 아직도 살아 있었다면 그는 지저분한 역사를 남겼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슈퍼마켓 주인으로서 성실히 책임을 완수하고 세상을 떳습니다. 그건 그의 복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한국은 이마트 만큼 컸다고 합니다. 슈퍼마켓 운영의 틀(패러다임)로는 감당이 불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이 예전 수퍼마켓 사장을 그리워 하는가의 답은 이렇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나는 이 물음을 김용옥 교수에게 꼭 묻고 싶었습니다. 절라 어려운 언어 말고 내수준에 맞는 말로 답을 듣고 싶었습니다. 사람은 "재미'로 삽니다. 정치의 목적은 국민이을 살 만하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국민에게 "재미"를 주지 못하는 정권은 그게 국민의 정부든 참여의 정부든 능력없는 정부입니다. 초등학생에게 중학생이 되고 싶다는 動因을 주지 못하면 중학교 안갑니다. 동인이 뭡니까? 바로 "재미"입니다. 재미를 주지못하면 중학교에 가서도 불만만 쌓입니다. 그건 학생 잘못이 아니고 중학교 선생 잘못 입니다. 중학교 환경에 적응 못한다고 탓할게 아니라 적응할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왜냐면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배달의 기수입니다. 한달전 부터 새벽마다 신문을 배달하니까요. 회사 직원들도 그러고 마누라도 그럽니다. 궁상떨지 말라고.. 그래도 전 열심히 새벽 3시 40분에 일어납니다. 신문 한 부 배달하면 배달료가 한부당 70 원이 조금 안됩니다. 나는 신문 한부를 넣을때 마다 "70원 벌었다" 라는 재미를 느낍니다. 3시간 정도 걸려 250부를 다 돌리면 15000 원을 벌지요. 어째서 내가 돌리는 신문은 승강기 없는 5층 꼭대기 사람들이 많이보는지 처음 30분은 핵핵 거립니다. 그래도 70원의 재미에 열심히 올라갑니다. 우리가 그러워 하는것은 멋대가리 없었던 박대통령이 아니라 그가 보여준 재미와 희망입니다. 박정희 대통령때는 바로 이 "재미"가 있었습니다. 거긴엔 얼만큼의 최면도 있었을겁니다. 그렇다해도 우리도 잘살수 있다는 희망을 박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게 재미있었지요. 당장 나는 힘들어도 내 자식들은 부자나라에서 살수 있을 거라는 희망입니다.그리고 그 희망은 매일 조금씩 눈으로 보였습니다. 가난했어도 힘들었어도 재미와 희망을 준 댓가로 그의 18년 독재를 국민들은 눈감아 주었습니다. 지금 내 자식을 대학보내고 내가 자가용을 타고 다니며 휘발유값 비싸다고 툴툴 거릴수 있는 댓가로 나는 18년 박대통령의 독재를 감수했습니다. 내가 밑졌다고 생각 안합니다. 내가 수구꼴통 입니까? 구제불능 천민자본주의 의식에 사로 잡힌거 같죠? 그렇다면 한반도 최고의 진보주의자 송두율이가 목숨바쳐 존경한다는 김정일이 한테 한번 물어보시죠. 너 왜 치사하게 왜 쌀이 공산주의라고 했냐고.. 박대통령 시절엔 적어도 나라가 거덜날 거라는 불안은 없었습니다. 북한군이 남침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은 있었지만 그래도 죽기 살기로 싸워서 나라를 지키겠다는데 이의 다는사람 없었습니다. 이의 없으니 우린 모두 한편 이라는 안도는 있었지요. 내 뒤에 내가 알지 못하는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시절에도 돈없고 취직 못하는 사람 많았습니다. 그러나 나도 언젠가는 취직하고 돈벌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있었습니다. 왜냐면 나라의발전이 내눈에 보였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오년후 십년후의 이나라 그림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오늘의 백수는 내일도 백수고 오늘의 신불자는 죽어도 신불자 신세를 벋어나기 힘들다는게 모두의 생각입니다. 우리가 그리운건 박대통령 아닙니다. 사는 재미와 희망을 보여주고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거두어 달라는것입니다. 박대통령 이후에 우리앞에 나타난 대통령들이 보여준게 무엇인지 잘 생각해 보십시요. 추신: 밥없으면 라면 먹으면 된다는 분은 생각 안하셔도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