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135
온전하신 이를 바라봄으로 온전케 됨
BY shiner1590 2004-04-21
자신을 바라보고도 절망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창조자를 바라보면 소망이 솟아날 것이다. 사람이 소망이라 함은 자기 아닌 다른 것을 보기 때문이다. 이는 자기를 직시하는 것이다. 바라보는 것과 직시하는 것은 다르다. 바라보는 것은 사모함이며 직시하는 것은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바라보았다. 결국 그것을 바라보면 그것이 밖에 있다가 내 안에 들어오게 된다. 그러나 그것을 직시하면 그것이 내 안에서 떠나간다. 내가 나를 참으로 알면 나의 못된 습관과 버릇을 고치지 아니하겠는가? 그러나 버릇을 고치지 않는 것은 자기를 직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라볼 것을 바라 보아야 할 것이며 직시할 것은 직시해야 할 것이다.
자기를 참으로 아는 자들은 자기가 아님을 알 것이며 자기는 자기를 모름을 알 것이다. 이것이 참으로 나를 아는 자인 것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있지만 자기를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철학자는 최고의 철학자이다. 이는 철학을 뛰어넘은 것이리라. 이 말을 지식으로 받아들이고 자기대로 알면 또 헛된 철학이 될 뿐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자기를 모른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자기가 자기를 잘 알고 있다고 여기고 있으며 자기 밖에는 자기를 알지 못한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오직 자기 안에 있는 생각대로만 밀고 나가려 한다. 이것이 인생의 어리석음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완고함인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모든 인생이 다 정신병자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 정도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정신병자는 자기가 정신병자인 줄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자기 상태는 전혀 알지도 못하고 자기 이외에 다른 사람이 다 정신병자로 보인다. 그러나 정말로 온전한 자는 자기의 잘못을 알며 자기의 부족함을 잘 알 것이다. 자기의 실수를 아는 자는 참으로 완전한 자이다. 자기를 탓하는 자는 남을 절대로 원망하지도 않으며 탓하지도 않는다. 자기를 모르는 이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인 것이다. 인생이 괴로워하는 것은 자기가 자기 처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난 그 자체로 선택 받은 것인데 무엇을 또 더 바란다는 말인가? 무엇이 부족하다는 말인가? 눈만 돌리면 생각만 바꾸면 천지가 다 내 것이 아닌가? 그것들을 소유하려 하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도 내 것이 아닌 것으로 여겨질 뿐이다. 그것들은 내가 소유하기 위해 있는 것들이 아니라 누리도록 주신 신의 작품들이다. 소유하려는 마음이 탐심이며 탐욕이다. 이는 허상이다.
신은 인간에게 실수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실수 할 수 밖에 없는 불완전한 것 같은(사람의 관점으로 보기에)사람으로 창조하셨다. 이는 부족해서 부족한 것이 아니라 부족함을 느끼고 다른 것을 찾도록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신이 인간을 대할 때에 완전하기 때문에 완전하다 하신 것이 아니시라 불완전하게 창조하시므로 완전을 사모하게 만드셨다는 것이다. 이는 갈급하게 하시므로 생수를 찾고 먹을 것을 찾도록 지으셨다는 말이다. 모든 생명은 생수를 갈급해한다. 살아 있는 자는 하나님을 갈급해 한다.
밭은 참으로 농부가 보기에 완전하다. 밭은 밭대로 완전한 것이 아니라 씨가 뿌려져서 거기서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기 때문에 완전한 것이다. 여자는 남자를 낳음으로 완전하게 되는 것이다. 남자에게서 여자가 나왔으므로 완전한 것이며 남자가 여자를 만나야 완전한 것이다. 남자 홀로 있는 것은 보기에 좋지 못하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가 함께 동거하면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모든 만물은 다 그렇게 지어졌다. 남자와 여자가 있는 것은 피조물과 조물주 관계를 알게 하기 위함이며 씨를 뿌리는 자와 씨뿌림을 받는 자와의 관계를 알리기 위함이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이며 여자는 교회의 형상이다. 그리스도는 교회라는 밭에 뿌려진 하나님의 씨이시다. 그 밭에서 수확할 것은 배가 되신 그리스도이시다. 이는 그리스도의 나라이며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가정을 원하셨다. 그 가정이 신부가 신랑을 위해 단장한 것 같은 새 예루살렘성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야 온전한 사람이듯이 신랑과 신부가 만나서 가정을 이루듯이 그리스도와 교회가 만나서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이는 다 생명의 관계이다. 모든 생명은 이렇게 하나로 만나질 것이다. 한 분 하나님 안에서 나오고 한 분 하나님 안에서 하나로 만나질 것이다. 이것이 태초에 있는 일이며 종말에 있을 일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첫 사역을 혼인잔치집에서 시작하시고 휘날레로 혼인잔치로 장식하신다. 성경 역사는 결혼으로 시작해서 결혼으로 마치는 역사이다. 교회가 신랑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고 교회 자신을 바라보면 타락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자기는 사라지고 오직 교회 안에 신랑의 기운으로 가득할 것이다. 신랑 이외에 다른 목적을 가진 신부는 더 이상 신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