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화 파경] 최고 잉꼬부부는 연출이었다 개그우먼 김미화는 그동안 연예계에서 남편 김모씨(46)와 금실 좋은 부부로 알려져 왔기에 이번 이혼 위기 소식이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김미화는 지난 83년 KBS 개그맨 공채 2기로 데뷔해 85년 KBS 2TV ‘쇼비디오자키’의 ‘쓰리랑 부부’에서 ‘순악질 여사’ 캐릭터를 맡아 “음매 기죽어”란 유행어를 히트시키며 스타덤에 올랐다. 김미화가 남편 김모씨를 만난 것은 ‘순악질 여사’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86년 23세 때였다. 당시 김모씨는 형이 KBS 한 프로그램 제작진이어서 녹화현장에 자주 놀러왔다가 김미화를 알게 됐다. 이후 두 사람은 급속히 가까워져 86년 결혼에 골인했다. 김미화는 인기를 끌던 시기에 일찍 결혼해 말 많고 탈 많은 연예계에서 안정된 가정을 이룬 사례로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김미화는 워낙 몸이 약해 몇 차례 유산의 아픔을 겪은 끝에 결혼 후 6년이 돼서야 첫딸을 낳았다. 이어 3년 뒤 둘째딸을 낳았다. 현재 그녀의 큰딸(12)은 초등학교 6학년,둘째딸은 4학년에 재학 중이다. 그동안 연예계에서는 김미화의 가정이 화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미화는 여러 신문 잡지와의 인터뷰나 방송 출연에서 기회만 있으면 남편이 자신의 활동을 적극 지원해주는 ‘최고의 후원자’라고 자랑해왔다. 김미화는 지난 2001년 한 여성지와의 인터뷰에서 “남편은 항상 나에게 ‘당신은 큰 그릇이며 큰일 할 사람’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 인터뷰에서 밤늦게 들어와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자신을 위해 과일 도시락을 챙겨주는 남편의 살뜰함을 자랑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미화는 21일 인터뷰에서 그동안 방송 프로그램 출연이나 언론 인터뷰에서 보여준 다정한 부부의 모습이 “연예인으로서 어쩔 수 없이 꾸민 거짓이었다”고 토로했다. 김미화는 개그우먼으로는 드물게 사회참여 봉사활동 등 연예활동 외 분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김미화는 지난 2003년 ‘호주제 폐지 운동’에 참여해 홍보대사로 활동해왔다. 그녀는 지난해 6월 ‘호주제 폐지’를 지지하는 모임에서 ‘나의 성은 김씨가 아닌 박씨였다’며 어머니의 성을 써야 했던 가슴 아픈 가족사를 공개해 주목받았다. 미군장갑차 여중생사망사건 규탄모임이나 이라크전 파병반대모임에서도 연예계를 대표해 1인시위를 하거나 참여해왔다. 또한 그녀는 38세의 늦은 나이에 입학한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를 다니며 향학열을 불태웠다. 김미화는 이처럼 남다른 사회참여활동을 인정받아 지난해 10월 MBC 표준FM 라디오 2003년 가을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이란 시사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전격 발탁됐다. 김미화의 주위에서는 그녀가 학업이나 사회참여 봉사활동에 남다른 열성을 가지고 살아온 점을 들어 이번 이혼 위기 소식을 더욱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김재범 oldfield@sportstoday.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