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항 없는 아이가 더 위험하다 (2004-05-31) |
고등학교 1학년인 재준(가명)이는 예전과 다르게 고등학교 진학 후 성적하락과 부모에 대한 반항적인 언행이 계속 되었다. 결국 가출소동이 벌어진 후 어머니는 재준이를 병원에 데리고 왔다. 어머니는 그렇게 착한 아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며 혼란스러워 했다. 어머니를 잠시 밖에 계시게 하고 재준이와 개인면담을 했을 때 재준이는 일방적으로 간섭만 하는 부모님과는 대화하기가 싫고 오히려 반발감에 하지 말라는 행동만 더 늘어난다며 제발 믿고 지켜보았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우울증이나 다른 정신병리는 보이지 않았고 반항적인 행동도 부모님과의 관계에서만 문제되는 정도였다. 사람은 성장하면서 두 번의 정상적인 반항기를 거치며 성인이 된다. 이는 뛰어넘을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 반드시 통과해야 할 필수적인 과정이다. 첫 번째는 만 2-3세 때이다. 인간은 출생 후 15개월 무렵이 되면 거절을 표시함으로써 비로소 자기주장을 시작하게 된다. ‘예’를 배우기 전에 ‘아니오’를 먼저 배우는 것이 인간이다. 이후 만 2-3세가 되면 반항적인 모습이 특히 심해지는데 아이는 무엇이나 혼자서 하고 싶어하고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심하게 화를 낸다. 이때 부모의 일관성 있는 애정과 한계설정에 따른 처벌이 중요하다. 두 번째 시기는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불리는 중기 청소년 시기이다. 사랑과 관심은 원하지만 제약과 통제는 본능적으로 싫어하고 몸은 성인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자아도 불분명한 혼란스러운 시기이다. 성적충동을 포함한 에너지는 급증하지만 사회적인 제약 속에 어린아이 취급을 당하고 억눌러야만 하는 괴로운 시기이다. 현대사회로 갈수록 2차 성징이 더욱 빨라지고 교육과 사회화의 기간은 더욱 길어지면서 인간만이 겪어야 하는 이 과도기는 계속 길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정상적인 발달의 과정에서 보이는 모든 반항은 이해하고 바라만 보아야 하는 것일까? 물론, 그럴 수는 없다. 청소년시기에 나타나는 반항심 속에는 성장의 동력이라는 긍정적인 면과 기존의 가치를 맹목적으로 거부하려 드는 부정적인 면이 혼재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와 부모의 개입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부모의 개입이 때로는 의도와는 달리 더 큰 반항을 불러일으키고 급기야는 '반항을 위한 반항'을 더욱 조장할 때가 많다. 특히, 부모의 말에 어긋나는 것은 모두 반항이라고 느끼는 부모일수록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알아들을 만큼 타일렀으니까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자신의 성장과정을 망각해버린 어른들의 오산일 뿐이다. 이는 자살이나 가출 등의 극단적인 자기 파괴적 행동들을 부추길 뿐이다. 성인이 되기까지 자녀를 보호하고 통제하는 것은 부모의 고유한 역할이고 자녀는 그러한 사랑 아래에서 성장하며 그 힘을 바탕으로 의존적인 위치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개체로 성장해 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부모와 자녀의 투쟁은 피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이 투쟁이 성장의 필수과정이고 자양분임을 부모와 자녀 모두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모는 이제 자녀들이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독립된 개체라고 인정하고 자녀들은 스스로의 반항심 속에 깃든 파괴적인 충동성을 느끼고 잘 승화시켜 나가도록 부모의 도움을 청해야 한다. 이러한 상호이해가 이루어진다면 싸움은 발전적인 성장으로 나아간다. 갈등과 투쟁 없이는 성장은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반항 없이 자라나는 아이 역시 반항이 심한 아이만큼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