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말 신랑이 다니던회사를 그만둔다고 할때 말리지 않았다
굳이 다니기 싫다는 회사 다니라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4년동안 내가 관두라며 노래를 불렀었다
자기일을 하고 싶다길래 말리지 않았다
서른세살... 하고싶은거 하기엔 나이가 적당하다 생각했다
더 나이먹으면 말려야하니까
은연중에 그를 믿고 있었나 보다
4개월만에 원하는 만큼의 상황이 될 기미가 안보여 정리하고
고대하고 고대하던 중국을 갈거라 그랬다
말리고 싶었지만 말릴수가 없었다
대학때부터 중국과 관련된 무역일을 하고 싶다며 중국으로 1년 유학도 가고
무역쪽으로 공부도 많이하고
회사도 중국파견근무 갈수 있는 회사를 갔었다
그리고 그길이 막히자 그만둔거였다
우리에겐 4살된딸이 있다
그러나 말릴수가 없었다
사람이라면 평생한번쯤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죽어야한다는게
내 지론이었으니까...
가서 취직이 잘되고 안되고는 후의 문제였다
가란 소리도 안했지만 말릴수도 없었다
그냥 알아서 안가기를 바랄뿐...
그러나 그는 가족보단 자기를 택했다
........
신랑이 가있는 사이 난 아이하나 더 낳을까 싶어
열심히 노력한달엔 실패하고
가기전날이 배란일이라 별 기대도 안했는데...
임신을 했다
막상임신을 하자 이런~~~ 하며 후회했다
입덧이 장난아니었다
첫째때도 그랬지만 별 기억이 남아있지않아
내 어리석음을 탓할수밖에 없었다
신랑없이 입덧하며
시댁 친정의 눈치아닌 눈치를보며
(사실 두쪽다 아이는 하나만 낳아라셨다~~)
아이 학원보내고 같이 놀아주고(?)
쉽지가 않았다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울신랑은 특유의 경상도 남자라
내게 어떤 위로도 기쁨도 되주지 못했다
8주째 아이의 심장이 뛰지않아
계류유산으로 소파수술을 했다
혼자 병원엘가서 수술대에 누울때..
참 신랑의 빈자리가 컸다
전화도 늦게와 마취깨며
시발놈 시발놈..이 절로 나왔다 ^ ^
계속친정에 있어
슬퍼할수도 울수도 없었다
10일만에 집으로 왔다
순간순간 눈물이 자꾸나오고 심란하다
신랑은 취직이 되어 오늘부터 출근이다
빨리 얘기가 되어 중국으로 갔으면 좋겠다
평소 서로에게 얼마나 못했으면
우리부부는 서로를 그리 그리워하지도 않았다
난 딸이 있어 괜찮았고
그는 딸이 없어 무지 보고파했다
이번 유산을 겪으면서
난 내 딸이 얼마나 나에게 소중한 존재인지
든든한 존재인지 느꼈다
그아이라도 없었으면 견디기가 더 힘들었을텐데...
내가 울라치면 다급하게 옆에와 붙어선
"엄마 울지마 엄마 울지마"를 외치며 울지도 못하게 하고
조금이라도 우울해할 시간도 내게 주지않고 보챘다 ㅎㅎ
어떤 위로의 말도 위로의 메일도 받지 못한 섭섭함에
한때는 정말 이렇게 평생을 살기는 싫다싶어
이혼하고 싶었던 신랑이지만 -_-
(우째 남자들은 맘을 표현하는 방법을 이리도 모른다요!!!)
수술대에 오르며 친정부모도 형제자매도 다필요없이
신랑이 옆에 있었으면 했던 내 마음을 기억하며
아 부부란게 이런 존재구나
좋을때 보다는 슬플때 제일 필요하고 위로가 되는존재구나
라고 느끼며
중국가며는 자알 해줘야겠다 생각한다
울딸한테도 물론!!
중국에서의 생활이 우리가족의 울타리를 더 튼튼히 할수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쓸데 없이 주절주절 적었지만
이렇게 적고 나니 그래도 맘이 편해지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