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부정확한 통계에 전언론 떠들썩
"가계빚 2994만원"…전체가구수 작년 11월 수치로 엉터리 계산
7일 방송과 8일자 대부분 조간신문은 지난 2.4분기 가구당 부채가 49만원 늘어난 2994만원이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언론들은 사상 최대규모로 3000만원에 육박하고 있다는 ‘사실’도 힘주어 보도했다.
그러나 7일 한국은행의 실제 발표 현장에서 나온 얘기는 언론 보도와 전혀 다르다.
한은 발표에서 드러나는 첫번째 사실은 가구당 부채가 2994만원은 아니라는 것이다. 두 번째 사실은 가구당 부채가 2994만원보다는 상당히 적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세번째는 앞의 두 가지 사실에 비춰볼 때 통계의 정도를 지킨다면 8일 현재로 사상 최대를 논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가구당 평균 부채를 구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숫자가 필요하다. 하나는 우리나라 가계의 부채 총액이다. 이는 한국은행이 지난 6월말 현재 458조166억원으로 집계했다.
또 하나 숫자는 우리나라 전체 가구수가 필요하다. 458조 166억원을 가구수로 나눠야 가구당 평균 부채가 구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행이나 다른 통계기관은 이 숫자를 갖고 있지 않다. 분모에 해당하는 가구수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가구당 평균 부채도 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994만원은 2.4분기 가구당 평균으로 각 신문의 지면을 장식했다. 계산 불가능한 숫자가 나온 이유는 분모에 엉뚱한 숫자를 대신 넣었기 때문이다.
올해 2.4분기 가구당 총계를 놓고 지난해 11월 1일 기준의 가구수로 나눈 것이다. 11월 1일 기준의 가구수는 2003년 4.4분기 가구당 평균 부채를 구하는 데도 적용됐다. 올해 1.4분기 가구당 부채 2945만원도 똑 같은 가구수로 나눈 것이며 2.4분기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이번에 발표된 평균 2994만원은 대한민국 가구수가 2003년 11월 1일 이후 단 하나도 늘지 않았다는 상황을 전제로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상황을 전제로 ‘의미 없는’ 숫자를 끌어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구수는 인구수보다도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소가족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체적 수치는 알 수 없지만 총 가구수는 지난해 11월 1일보다 확실히 늘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에 따라 가구당 평균 부채는 실제 2994만원에는 못 미칠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한국은행은 통계의 타당성을 감안해 당초 가구당 평균부채를 연말에만 발표하고 2.4분기부터는 분기별 집계를 생략키로 했었다. 그러나 ‘기사 거리’가 부족해 허덕이는 취재 풍토는 최소한의 통계적 정확성마저 용납하지 않았다.
과거 방식으로 계산된 숫자라도 내놓으라는 취재진의 성화에 한국은행은 내부 참고용으로만 적어둔 숫자를 다시 공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집계 과정에 참여했던 실무자는 “서로 다른 기간에 집계된 분자와 분모를 갖고 구한 수치가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해석하기는 무척 어렵다”고 밝혔다.
지난 2.4분기 가계신용에서는 신용카드의 실적 급락세가 주춤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으로 나타났다. 곧 카드 사용이 다시 늘어날 수도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 대목이다. 카드대란 이후 급격히 위축된 소비의 회복 신호가 될 것인지, 아니면 무분별한 ‘긁고 보자’의 부활 조짐인지에 대한 점검도 필요했던 부분이다. 그러나 언론이 가계부채 3000만원의 숨바꼭질에만 매달리는 동안 이런 점들은 뉴스의 흐름 속에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