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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케네디언 선생님 소개.


BY 막내딸 2005-01-15

저는 현재 케나다에서 옛날에는 송아지로 보이다 지금은 황소처럼 커버린 두아이들과 살고 있답니다.

 

한국에서 하도 건망증이 심해 언젠가 기회가 되면 치매 검사를 받고 싶었던 아짐이었는데 어찌 어찌 외국을 오게 되어,  치매가 아닌가 하던 그 머리로 현재는 영어를 배우며 머리를 혹사 시키고 있답니다.

 

그런 저를 위로하며, 때로는 채근도 하시며, 무료로 저에게 영어를 가르치시는 선생님이 계신데, 그 선생님을 소개 하고 싶어요.

 

나이는 53세 정도 이시며, 열 여덟 무렵 성인이 되자  스위스로 부터 이민을 왔다고 합니다.   가족도 없이 혈혈단신....
이 세상에서 제일 이민이 어려운 곳이 스위스인데 그 좋은 복지 국가 스위스를 나누고 왜 케나다로(저는 겨울이 긴 이 땅을 가끔 동토의 땅이라 부릅니다.  )  가족도 없이 왔냐고 물었더니 스위스는 너무 좁고, 어느날 온갖 레크레이션이 넘치는 케나다의 광활한 땅이 좋아서 왔답니다.

 

어쨌거나, 선생님은 끝없이 자애롭고, 늘 웃으시고, 단정하게 옷을 입으시고 제가 수도 없이 영어 단어를 까먹거나 말거나, 묻는 말에 엉뚱한 대답을 하거나 말거나, 내가 봐도 말이 안되는 영어로 말하거나 말거나, 숙제를 원수마냥 여기거나 말거나..... 한번도 웃음을 잃지 않고 저를 대하시기에

 

어느날 저는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어찌하믄 이야기로 수업시간을 떼우나 궁리하며 현생활에 만족보다는 외롭다, 심심하다, 영어를 몰라 살기 불편하다, 불평을 자주 하였지요.
선생님이 저를 위로해주기에 ....

 

저는 선생님이야 말로 아무런 부족함이 없고 너무나 행복한 생활을 하시는줄 알았는데 이제는 거의 친구가 되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3년 전에 피터팬 증후군(평생 아이로 남고 싶은병)의 남편과 이혼을 했답니다.  남편이 자식과 가족 보다는 오직 본인의 생활과 기분 위주로 살고  전혀 가족을 돌보지 않아서 자식들이 다 컸을 때를 기다려 결국 이혼을 했다 합니다. 

 

그래서 돈 벌지 않는 남편 대신에 식당에서 웨이츄레스로도 일해보았고, 여름에는 과수원에서  과일을 따는 노동도 해봤고 그 후 자격증을 따 문제아을 둔 부모들을 상담하는 국가기관에서 좋은 월급을 받고 일했다 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늘 위로받고자 하는 마음을 부끄러워했답니다.
그러나 물러설 수 없지...

 

어느날 선생님 보다도 적은 내  나이를 내세우며, 왜  몸이 이리 저리 피곤하고 아픈데가 많을까 하고 물었더니

선생님께서는 몇년전에 유방암에 걸리셔서  한쪽 유방을 거의다 도려내고 지금도 끊임없이

재발을 체크하기 위해 병원을 다니신다 하네요.

 

그런 선생님인데 어찌 그리 밝게 웃으시면서 남을 돕기 위해 도서관에서 무료로 영어를 가르치며 선생님보다는 몇배 몇십배 형편이 나은 동양 아줌마를 끊임없이 격려하며 위로를 해 줬을까요.

 

제가 운동을 싫어 하자 늘 다니시는 공원에서 너를 만나야 되겠다며, 공원을 가게 되었는데 결코 만만치 않은 새 먹이를 돈주고 사셔서, 여기 저기 새 모이함에 넣으시고, 손바닥에 올려 새들을 먹이고 야생오리들까지 챙기시고, 온갖 ...이름만 개지 덩치는 뭔 송아지가 아닌가 싶은 수많은 개들을 어루만지고 인사하고 까마귀꺼정도 따로 먹이를 주시고.... (근데 다람쥐는 안 챙기심 ㅋㅋㅋ)

 

선생님의 어디에서 자연의 작은 동물들까지도 배려하는 사랑이 끝없이 나오는지.

 

하루는 산책이 끝나고 선생님 집으로 가서 점심을 먹자시며 저를 데리고 갔는데, 그기에도 새로운 선생님의 사실이....

 

넓디 넓은 호수를 바로 코앞에 둔 대 저택 같은 집이어서 속으로 깜짝 놀라며 따라 들어갔는데 하나 망설임없이 저에게 설명을 하시네요.

 

이 집은 선생님 집이 아니라, 남편과 이혼후 같은 도시에 살기 싫어서 그 길로 차 한대에 실을 수 있는 짐만 딱 싣고서, 동안 키우던 고양이 한마리 얹어서 혼자 이곳으로 왔고, 엄마가 오랫동안 아파 병원에서 몇년째 있어, 돌봄이 필요한 세아이들을 위해 이 집에서 일하고 있다고요. (한마디로 가정부 역할이시지요)

 

그리고는 아무 부끄러움 없이  그 집에서는 제일 작은 선생님의 방을 보여 주시며 선생님 아이들의 사진과 여러가지 추억에 얽힌 물건들을 설명하시는 겁니다.

 

힘드시지 않냐고 물었더니 아이들이 너무 좋아서 힘들지 않고 너무 행복하다시네요.
국민학교 일학년이 된 한창 개구장이 사내아이, 3학년으로 늘 하고 싶은게 많고 변덕이 심한 둘째, 이제 막 사춘기로 접어든 큰 딸 ...한명도 아니고 세명씩이나....
마음대로 소리 쳐 야단 칠수도 없고, 오로지 대화로 풀어나가야 할 케네디언의 자녀들인데.

 

그러나 늘 아이들을 위해 직접 빵을 만들고, 쿠키를 만들고, 그 아이들과 대화하고, 그 나머지 시간에 도서관을 나와서 무료 봉사를 하시고. 창작 글쓰기 반에 등록하셔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셨읍니다.  누군가라고 말 못하지만 친 아들 둘한테 짬짬이 냉동음식이나 피자로 식사를 대신하기 다반사인 한 한국아줌니 부끄러워 혼났네요  (뭐..접니당).

 

올 크리스마스에는 엄청난 양의 쿠키랑 케익을 만들고 아이들 친구들 선물용으로 스무개의 장갑을 직접 만드셨고, 수십개의 작은 손가방을 바느질 하시고, 2개의 파자마 바지를 직접 천을 떠 이미 만들었는데 막내녀석이 딴 무늬가 좋다 하여 몰래 그 천을 사서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맞추어 밤사이 또 만들어 선물 하셨다 합니다.

 

저는 선생님을 대할때마다 저렇게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어디서 부터 끊임없이 흘러나오는지, 하나 만족스러울것 없는 선생님의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그 얼굴에는 어두운 구석이라고는 어찌 찾아볼 수 없는지궁금하고도 궁금합니다.

 

제가 한끼 밥을 사겠다고 해도 절대로 허락 안하시고, 나이도 젊고 가진것도 더 많은 나를 항상 걱정해 주시고, 영어가 서툴러 힘들어 할때마다 너 잘한다 너 잘한다 끊임없이 거짓말 해주시는 우리 선생님.

 

제가 궂이 선생님 흉을 하나 보자면 선생님이 데려온 고양이와 대 저택에 있는 강아지랑은 둘다 무지 좋아는 하시지만 때로 표 안나게 차별을 좀......(둘이 싸우니 개를 밖으로 핑~)
아이들은 하도 사랑이 담겨 있어 듣다보면 친자식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면 돌보는 아이들 이야기가 대부분이고요. 

 

오늘 선생님을 만났는데, 새로운 제안을 하시네요. 
올 크리스마스 무렵 마종? (발음을 그리....)을 배웠는데 너무 재미 있다며 , 저보고 자꾸 친구를 만들어야 하니 같이 가자 하여 좋아라 하며,, 근데 그게 무언냐 하니 설명을 하시는데 바로 우리 시아버지 평생 재산을 날리게 한 "마작"을 이야기 하네요.

 

그래 알았다...내가 공짜로 영어를 배울라면 어디를 못가...
그리고 앞으로 홀시아버지 모셔야 되는데, 심심하시다 하면 저랑 마작이나 하시죵 하며 마작도구를 좌악 꺼내놓으면 우리 시아버지 어떤 인상을 하실라나?
그러나 저러나 이 마작을 우리 신랑한테 허락은 받고 시작해야 하나 걱정이네요.
이 사람들은 그것이 일본에서 온 독특한 게임이라 여기는데요.

 

이 팀을 사겨가지고 마작은 어떤지 모르겠고 내가 실력이 훨 나을 민화투나 (고스톱은 칠 줄 모르니) 가르치며 영어수업을 해볼까요?   (반대시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