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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드는것의 미덕


BY 잔치집아지매 2005-03-09

"중년이 도대체 몇살 부터예요?"
남편도 아주버님도 잘 모르겠단다.오십부터가 아닌가?하신다. 그러면 난 억울 하다.
재작년, 양희은씨 덕분에 난 중년이 되었다. 그것도 지친 중년이 말이다.
막내시누이가 "양희은씨 콘서트 하는데, 제목이 죽이더라, "지친 중년을 위한
콘서트"라 카는데언니 니 지친 중년 아이가? 내가 표 사놓을께 퍼뜩 나온나"하는 바람에
난 꼼짝없이 중년이 되었다. 그것도 지친 중년이 말이다. 속으론 " 웃기네,
내가 벌써 무슨 중년이야 " 하면서 말이다.

여성시대에서 중년을 이야기 하자고 한다. 그래서 국어 사전을 찾아보니.
'중년:마흔 안팍의 나이"라고 쓰여있다.
"어? 중년맞네, 그것도 한참 지났네낼 모래면 오십인데..." 하지만 나는 요즈음
계절처럼, 화사하게 단풍을 준비하는 우리 마당의 라일락과 단감나무,살구나무처럼
내 나이가 참좋다.부모님 슬하에서 살던 단란했던 스무해는 제쳐놓고 지금 나는 참 편안 하다.
이런 느낌은 세월이 쌓여가면서 더불어 내공도 쌓여진 덕이 아닐까?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두아이의 어미가 되고, 한 집안의 며느리가 되고,
또, 생활인이 되어 살면서 참 많이 부대끼며 살았었다,
내 삶에서 편안했던 때는,대학을 졸업하고, 시골중학교 선생님을 할 때였다.
대학 4학년때 부모님이 돌아 가시고 서울에서 교편을 잡았었지만
부모님이 안계셔서 엄마같은 큰언니 집에서 같이 살아야했다.
결혼도 안한 막내 여동생을 혼자 살게 하는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 했었나보다.
나보다 두살 적은 조카를 비롯하여 두 아이가 더있는 언니의 집은 생각처럼
편안 하지가 않았고 혼자 살아 보고 싶었다.

친구의 소개로 경남 거창에 있는 중학교에서 근무 하게 되었고
자취집의 정많은 아주머니와 처녀 여선생님 들과도 참 재미있게 지냈었다..
4년 남짓근무 하는 동안 친하게 지내던 동료 선생님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결혼하기 전 그곳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순수의 시대였다.
사는게 뭔지도 모르는 ... 그러나 나는 지금이 더 좋다.
그때가 화사한 진달래, 개나리 만발한 봄이었다면 , 태풍에 가지가 찢기고,뜨거운 태양빛을 견뎌내어
주홍빛열매를 매달고 아름다운옷 입을 준비하는 창밖의 단감나무처럼 잘(?)살아낸 스스로가 대견스럽다.

그리고 우리나이엔 의무 에서 많이 벗어난다. 물론 아이들 결혼까지는 시켜야
부모의 의무에서 벗어 난다고 하겠지만 난 반대다. 결혼할 능력이 안되는 아이들을
나이가 먹었다고,결혼 시키는일은 웃긴다고 생각한다. 결혼은 시키는것이 아니고
당사자들끼리 하는것이고.스스로 책임질 수 있을때 하는거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아무 이의가 없다. 그리고 자기들이 잘 자랐다고생각한다.

난 아이들에게도 참 많이 감사한다.
이제 정말 내삶의 절반을 살아 온것같다.
정말 중년이다. 나머지 내삶에 대해서도 두려움은 없다.
오늘아침, 양희은씨가 말한것 처럼 "당당한 가난 "이란 이야기에 난 입가에 웃음이 돌았다.

서정주 님의 시 "무등을 보며"의 첫구절, "가난이란 한낮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라는 싯귀처럼 조금 남루 할 뿐이지 기죽을 일은 아니니까.
그리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가난하지 않을 자신도 있다.
이제 절정에 이른 단풍의 황홀함처럼 내삶을 느끼려한다.
그리고 나이드는것의 미덕에 대해서 생각하고, 또 행복한 노년을 위해서도 준비하려 한다.
어쩌면 내게 노년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천상병님 처럼 귀천할 때
"정말 자알 놀다 간다" 할수 있게 말이다.

 

 

 

몇년전 여성시대에 보냈던 글입니다.

나이드는것이 꿀꿀하지만 은 않은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