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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BY 봄날 2005-04-14

여보!

어제 아이들과 당신의 산소에 다녀왔네요.
오랜만에 찾은 당신.
그래도 아이들이 있어서 많이 슬프지
않았지요.

새로 산 꽃으로 화병을 꾸미고 나니
묘지가 환한게 좋아 보였어요.
당신 좋아하는 술도 따르고
세 식구가 절을 했어요.

당신도 반가웠지요?

날씨가 추울까봐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바람도 없었고 햇살이 따뜻해서
그런데로 좋았답니다.

여보!

요즘 자꾸 당신 생각이 나요.
베란다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으면
당신이 보고파서 미칠 것만 같네요.

내가 앞산에 가는 날이면 베란다에서
내다보며 날 기다려주던 당신.
손을 흔들며 반가워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남아있어요.

제라늄을 사와서 화분 갈이를 하던 당신.
내가 꽃 좋아한다면서  꽃시장까지
가서 사왔잖아요.

거실 소파에 앉아있으면 발아래 당신이
누워있는 것만 같아서 자꾸만 그리로
눈길이 갑니다.
당신 많이 아파했었지요.
나도 그 만큼 아파했어야했는데 그러질
못했네요.
그냥 당신이 너무 괴로워하고 짜증을 내니
그게 힘들기만 했어요.

내가 아파보니 이제야 당신 심정 조금이나마
이해가 갑니다.
도저히 살 가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야 했을 때
당신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내가 외출이라도 하는 날이면
당신 혼자서 외롭고 적막한 집을 지키며
보냈을 시간들.
그 생각을 하면 너무 슬퍼져요.

이제서야 나 혼자라는 것이 실감이 나기 시작하네요.
그동안은 그 사실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외면하고 살았지만 이제는 어쩔 수가 없어요.
아이들이 모두 나가고 쓸쓸한 빈 집에서 하루를
보내다보면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당신과 다투고 살던 그 시간들이 그리워져요.
지지고 볶고 싸우던 그 날엔 이런 외로움은
없었으니까요.
혼자라는 것.
아무도 이야기 할 사람이 없다는 것.
앞으로도 계속 이런 날들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맥이 빠지고 슬퍼집니다.

여보!

내가 당신에게 해 준 것 아무 것도 없어요.
진심으로 당신을 아껴주고 위로해 주고
감싸준 적이 있었던지요.
날마다 당신을 비판하고 바닥으로 끌어내리고
무시하면서 살았어요.
미안해요....

여보!

참 외로운 날들입니다.
그래도 한 가지 당신에게 고마운 것은
마지막까지 열심히 살아 준 것.
늙어가면서 남들에게 추한 모습 보이지않고

살 수 있게 해준 것.
너무 고마워요.
풍족하지는 않지만 알뜰하게 살면 그래도
얼마쯤은 편안하게 살 수 있겠지요.
통장에 돈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아이들이 반듯하게 잘 자라주고 있고
제 앞가름도 잘 하고 있으니 더 이상
바라지 않을거예요.

여보!

이제 다시는 만져볼 수도 없고
찾아 볼 수도 없지만
그래도 당신과 함께 했던 시간들.
그 기억들이 있으니 당신은 영원히
내 안에서 살고 있는 거예요.
당신의 인생행로.
당당하게 아픈 운명을 받아들이고
꿋꿋하게 살다 가 간 당신.
그런 당신이 보고 싶어요.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