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전, 긴 파마머리의 아가씨가 있었다.
청카바와 청바지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개미허리에 날아갈듯한 몸놀림을
하고 , 28살이란 나이에 ,결혼할생각은 하지않고..재미있게 살던 ..남자는 관심도 없던.........
그런 아가씨에게 어떤 키 큰 남자가,따라다니기 시작했다.웃겼다.
콧방귀만 풍풍 날리며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퇴근한 아가씨는, 안방에서 껄껄껄 웃는 아버지와, 동생들의 떠드는 소리.....
낯선 구두도 놓여 있고...이상했다.
"다녀 왔습니다."...하고 방문을 여니 ..어머 ? 그 키큰 남자가 아버지께 술을 따라 드리고....
엄마는 빈대떡 해서 방으로 나르시고 ,남동생들은 ...........!!!매형 매형 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삼십이 낼 모레인 날두고 부모님과 언니는 ,날 해치우질 못해서 안달이
나 있었고 ..난 나대로 직장생활하며 혼자 산다고 박박 대고 있던 ,......그런데...
내 퇴근 몇시간 전에 집에 찾아와서..주저리 주저리 .....어쩌구 저쩌구 ....
아버지와 엄마를 녹여놓고, 남동생들(쌍둥이)한테는 태권도를 가르쳐주니.어쩌니..
정말 ....그야말로 ...진짜로 웃겼다.
그사람을 끌어내서 한바탕 퍼부어주고,다시는 내 앞에 얼씬거리지도 말라하고
그렇게 내 쫓았다.
그런데 정말 웃긴것은, 나타나지도 말라고 윽박질렀던 그사람이 궁금해지기 시작한것이다.
하루 지나고...또 하루 지나고 ...삼사일이 지나가고...자존심이 구겨지기 시작 일보 직전...
스산하고 추운 저녁에 ,그사람이 골목 저만큼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추위에 잔뜩 얼어서,시퍼래가지곤 날 기다렸단다 두 시간동안이나...
웬 비싼? 장미는 그렇게 많이 사가지고.....ㅋㅋㅋㅋ장미에 내가 넘어갔지만...
몇일 전 집에서 내쫓긴 그 다음날 부터, 동생들을 데려다가 벌써 운동을 가르쳤다고 했다.
울 쌍둥이 남동생들은 완전히 그 사람한테 빠져 있었다.
엄마도 밥을 해서 체육관으로 퍼 날르고 계셨던거라고.....
그후 두어달 정도가 지난 1989년도 4월 23일 .............번갯불에 콩 구워먹고, 소화 되기도
전에, 그사람 옆에서 수줍은 신부인냥 웨딩마치를 올리고 있었다.
저 아랫지방인 경상도 남자와,직장생활 외엔 전혀 살림이란건 해보지도 않았던
아가씨가 한방에 또아리를 틀고 신혼이라는 전쟁이 시작됐다....그런데
나도 한성질 하는데 ,그 괴상한 경상도 승질은 당해 낼수가 없었다.
식성도 틀리고, 경상도 말도 잘 해석할수가 없고,그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막내였다.
밥은 삼시 세끼 꼬박 꼬박 제 시간에 먹어야 하고, 김치는 먹지도 않고, 매일 매일
무슨 젖갈종류, 멸치조림 ,연근조림, 들깨나물 무침 ,우엉볶음 마늘쫑 볶음
이런 반찬만 먹어댔다.
성격은 또 얼마나 꼼꼼한지? 바둑 좋아하고 ,낚시 좋아하고 운동이란 운동은 완전 마스터하고(전공이 체육대)한가지도 허술하게 그냥 넘어가질 않았다.
하루 죙일 그 사람 뒷치닥거리에 성질나서 한바탕 뒤집어 엎어버리기도 했고,
아가씨때 배우지 못했던 운전을 배우기도 했다.바둑도 배우고,태권도도 배웠다.
그렇게 일년을 살고 또 몇년을 살다보니 집도 사고 ,차도 사고,시부모님도 모셔보고,
참 시부모를 모셔보니 (남편 성격이 시부모님과 어쩜 그렇게 똑 같더라)
그래도 단한가지 좋은점은 담배와 술을 전혀 못한다.
난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면허딴날부터 운전을 해대기 시작했다.
집에서 가만히 앉아서 있기에는 내가 성에 차지가 않았다.
봉고차로 아이들을 학원에 태워 날랐고, 아침 저녁에는 공장 사람들은 출퇴근 시켰다.
막내아들이라 애지중지 하던 어머님은, 내사는거 보시더니 이젠 안심하겠다 싶으셨는지
7년만에 큰 아들집으로 가셨고, 홀가분해진 나는 친정엄마를 꼬드겨?옆집으로 이사오게
만들었다.
그리곤 14년동안 알뜰하게 모으고 저축했던거 ,몽땅 쏟아부어 이 피시방을 시작했다.
피시방 시작한지 이번달 이 꼭 삼년째 들어간다.
집안 살림은 엄마한테 많이 부탁하고, 아침 일찍 나오면 10시 넘어서야 퇴근을 한다.
쉬는날이 없어서 많이 힘에 부치고 ,고달프지만 나이가 더들면 더 힘들까바
열심히 정말 열심히 산다.
오늘 아침 남편이 출근길에 그런다. 딸딸이 엄마야.....
"16년전 4월23일이 내일이야 ..축하해...
엉 ? 무슨추카?.....
아 ...........결혼 기념일 ......아유 그래 당신도 추카혀...^^**^^
오늘도 난 씩씩하게 자전거를 타고 가계로 나왔다.결혼하고
16년동안 살면서 난 더 씩씩해지고 ,사근사근하게 변한 남편때문에 난 웃음이 나온다.
한번도 잊어버리지 않고, 생일과 기념일을 챙기는사람이다.
고맙다고 해야하나, 당연하다고 해야 하나.
당연한거지...그 예쁘고 잘나갔던 아가씨를, 이렇게 사십대 중년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지금 하고 싶은게 있다면, 울 딸들하고 남편하고 봄나들이 하고 싶다.
소래포구에 가서 맛있는 회도 먹고 싶고 ....
소래포구로 해서, 대부도 제부도로 ,시원하고 신나게 달려보고 싶다.
그렇지만 조금만 참고 기다리련다.
내꿈이 실현되는 내년을 위해서.....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