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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라일락 향기는 지금 어디에.....


BY 허브바람 2005-05-03

시간은 정오를 향하고 있었다.

개나리 만발한 서부간선도로를 달리며 라디오를 듣는데

그야말로 3040세대들만의 흘러간 팝송이 흘렀다.

가슴에 밀려오는 어떤 아련함이 눈시울을 적셨다.

대학 1학년 ! 소개팅으로 한 남자를 만났다. 자기가 엄청 잘난줄 아는 사람이었다.

단, 박력은 정말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내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 사람은 박력남이

아닌 그의 친구였다. 그 당시 내 박력남이 "문무대"를 방문하고 돌아 오던 날이었는데

그의 친구가 혼자 자취하는 집근처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날려고 하니

그 자취하는 친구가 대신 나왔다. 조금 늦을것 같으니 자취하는 자기집에 가서 기다리자고

..... 작은 키에 곱슬머리, 이용식을 생각케 하는 배,흰색 런닝셔츠,주황색 츄리닝 바지( 바지

고무줄이 끊어져 빨간 노끈으로 묶고 있었다)

화장실 슬리퍼, 부드럽게 구사하는 대구 사투리!

그가 안내한 집은 숭실대 부근의 자취방 촌이었다. 녹슨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사람만

겨우 지날 수 있는 길다란 골목이 나오고, 비닐이 쳐진 부엌이 나오더니 바로 2평도 안되는

방이 나왔다. 부엌이라고 하기에는 정말 형편 없는 연탄아궁이에 그 옛날 곤로,양은냄비, 밥

그릇 몇개와 수저 몇벌이 전부 였다." 대학 1학년의 자취 살림이라는 것이 이런거구나" 했다.

어린 마음에 이런 살림이 재미있고,신기하기만 했지만 그 친구가 쑥스러워 하는 모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 남자 친구가 부탁했다고 하며 밥을 준다고 했다. 내친구와 데이트

를 할때마다 늘 옆에 있거나 이야기를 많이 나눈터라 그와의 밥상이 그리 억색하지만은 않았

다. 특히 그는 누군가를 편하게 해주는 기술 또한 있었던것 같다. 밥상을 물리고 그가 타준

커피를 마시며 작은 텔레비젼을 켰는데 마침 "션샤인 (존댄버의 노래로도 유명한)"이라는 외

국 영화를 하고 있었다.여자 주인공이 골수암으로 죽는 영화였다. 그런데 그 친구가 그 영화

를 외면하며 다른 채널을 보자고 했다. 난 보고 싶다고 했더니 부탁이니 보지 말자고 한다.

조금 삐져 다른 채널을 돌리니 미안하다고.. . 그러면서 하는말 " 우리 엄마가 저 병으

로 죽었다아이가" 그 순간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다음말은 "믿지 못하겠지만

니가 우리 엄마 정말 많이 닮았다아이가" 그 순간 숨이 콱 막혔다.그랬구나! 그래서 나한테

잟 해주고 싶었단다. 그가 9살때 돌아 가셨단다. 그의 남동생은 새 엄마가 들어와서 낳은

아들이라고..... 그때부터 난 내 남자친구가 낯설고 그의 친구가 더 좋았다. 이성이 아닌 그 

어떤 감정을 ... 지금 생각해도 이성간의 감정은 아니었다. 그냥 그가 좋았다. 하고 다니는

차림새는 시골 유학생이라 보통 여자들은 잘 좋아하지 않는 타입이지만 그를 알고나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날 보면 자기 엄마 보는것 같아서 좋다는 그 말! 

난 얼마 되지 않아 내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 마음이 그에게 가질 않고,그 친구에게 향하는 

마음이 힘들었다. 내 친구들은 내가 눈에 무언가 씌였다고 정신 차리라고 난리였다.

얼마후 내 남자친구도,그 친구도 군대를 다녀 오고  난 사회인이 되었고, 그는 여전히 가난한

고학생이 되었지만 우리의 우정은 내 결혼전까지 유지 되었다.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

는지 알 수 없지만 여전히 그 따뜻한 마음으로 부인을 사랑하고,아이를 사랑하고, 이 세상를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을거라 믿는다." 그 이름 "ㅇ ㄱ ㅎ" ! 행복하고 언젠가는 한번 보자꾸나

가장 순수했던 시절에 만난 친구야. 너의 그 자취방을 향할때가 라일락 향기가 진할때라는 

것을 너도 기억하고 있니? 내 첫 월급으로 너의 방 작은 냉장고를 삼겹살로 가득 채워줄때

난 정말 행복했다. 결혼생활이 15년이 되었어도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항상 그게 바

로 너란다. 꼭 행복해라. 아이들 시집 장가가면 우리 꼭 만나자. 그 때도 너의 허리 끈은 빨간

색 노끈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