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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인간 극장의 테마다.
아들이 어버이를 기리는 효심인데 무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 가족은 아버지가 지키려는 효심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때문에 아버지가 있어야할 자리에 엄마하나로 족해야 한다.
그 지어미는 효심이 지극한 남편 때문에 기쁠때나 슬플때나 같이 하여야할 시간에 혼자이어야 한다.
오늘은 소방서에서 나왔다. 산불 예방차원에서 걱정아닌 걱정으로 소화기를 바꾸어 주려고 그러니 그 소속된 소방서는 늘 걱정에 걱정을 하여야 하고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때문에 고통아닌 고통을 받아야 한다면 재고의 여지가 있는 것은 아닌지. 과연 그 부모님은 지금 그렇게 몸무게가 엄청 줄어 들 정도로 힘들게(본인은 힘들어 하지 않지만) 시묘살이 하는 아들을 본다면 계속하기를 원하고 계실까? 난방이 준비되어 있지도 않고 상하수도 시설도 되어 있지 않는곳에서의 아들의 그런 효심을 과연 받아 들일까. 어제는 큰 아들(형님)이 잠시 시묘살이를 해 주었다. 동생의 잣대로(3년 시묘 살이) 본다면 사실 형님의 모양새도 좀 그렇다.
우선 경제적인 문제가 야기 되겠지 생활 전선에서 3년간이나 비워 두었으니 그 역활은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 짊어지어야 하는 부분이다. 서울이나 시골이나 돈 없으면 살 수 없는 시대가 아닌가?
어머니의 3년 시묘살이가 끝났지만 아버지의 시묘살이를 1년 더 하여야 한다고 한다. 화를 내고 돌아서는 아내의 마음은 알고도 남을 것 같다. 아마 나 같으면 이혼장에 도장을 벌써 찍었겠다
이 남편의 말씀이 자기가 시묘살이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가족의 뒷받침이었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칭송해 마지 않았는데 이제와서 1년 남은 아버님의 시묘살이를 반대한다면 말도 안된다나..
사족
가까운 거리에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혼자 사시는 어머님을 찾는 남편 하나를 알고 있다. 후배는 이제는 거론도 하지 않는다. 일요일 마다(특별한 사정이 아닌한) 가는 남편의 뒷 모습을 아무렇지도 않은 마음으로 받아 들이기 까지의 그녀의 멍자국은 보이지 않는 눈물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보는 아이들의 마음도 더는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
시묘살이 하는 아들이나 매주 어머니를 찾는 아들이나 다 각기 입장이 있고 할말이 있겠지만 같이 더불어 사는 사람과의 조율이 비어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닐런지....
반대에 부딪치고 같이 사는 집안 식구의 마음 편하게 해 주지 않는 효심이라면 글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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