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님,
두 달정도키우던 병아리가(영계 닭이 막 될 정도의..) 아까 변을 당했어요. ㅠㅠ
큼직한 박스에 넣어 얼기설기한 철지붕 만들어 거실 한 켠에서 키웠는데...
날이 점차 더워지니 조금씩 냄새도 나고...(닭 종류는 변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이 자주 봅니다. 먹는게 저 정돈데 어찌 저럴수가 싶을 정도죠. 깨끗하게 박스 속
청소하고 똥과 모이로 범벅이 된 물그릇, 밥그릇 씻어 넣어 주고 난 뒤 몇시간 후
보면 다시 청소하기 전의 상태와 비슷해 집니다. 기가막혀 혀를 내두를 정도...)
우리 애가 아토피가 있어서 삐약이가 푸드득 거리며 날개짓 할 때마다 좀 찝찝하기도
하고 잘 가둬 둔다고 하는대도 고 놈이 틈만 나면 재주껏 탈출하고 나와 (우리가 외출하고
없을때만... 제법 영리하답니다. 머리 나쁠때 닭대가리라는 말 쓰면 안되겠대요..)
온 거실을 똥 범벅에.. 지 똥 지가 밟고 찍으며 다니는 등 애들한테 위생적으로 안좋은것
같아 어제부터 좀 더 튼튼히 우리를 개조 해 마당에다 두고 키우기로 했지요.
초등 일한년인 우리 아들애는 삐약이를 정말 예뻐하여, 학교 갈 땐
" 삐약아, 형아야 학교 갔다 올게~"
이러며 제 여동생한테보다 더 다정히 대하는데....
떠돌이고양이가 혹시라도 헤코지할까봐 나름대로는 우리에 꽤 신경 썼는데....
아까 이상한 소리에 뭔가 느껴져 깜짝 놀라 마당에 나가 봤더니...ㅠㅠ
답답하지 말라고 빠꼼히 만들어준 틈이 훨씬 커져 있고.. 그 속에서 사람 인기척이 나면
예외없이 들리던 짹짹 소리가 안 들리며 그 어디에도 우리 삐약이의 모습은 안보이더군요.
이럴수가...
설마 이 정도면 고양이도 안되겠지 했던 내 자신이 얼마나 원망스러운지 모릅니다.
두 달이란 짧다면 짧지만 정 들기엔 충분한 기간동안
갓 부화 해 솜털이 보송보송하던 것이 조금씩 깃털이 나고 어느덧 날개짓에 몇십센치
정도는 푸드덕 뛰듯이 날 수 있게 되었고
그 사이 우리 꼬맹이들은 하루 한번정도 마당에서 삐약이 산책 시켜주며 마당 한켠의
상추도 뜯어 먹고 개미도 잡아 주고...
그런 모습속에서 아이들은 즐거워 하고 신기해 하고.. 그렇게 삐약이를 예뻐하며,
가끔씩 고 놈이 탈출 해 거실 어지럽힐땐 내가 삐약이 혼 낼까 봐 그러지 말라던 우리 아들...
( 병아리 혼낸다고 알아나 듣나..)
그 아이가 삐약이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 들일지 무척 마음이 아파요.
엉엉 울며 괴로와 할 게 뻔한데...
나도 생각이상으로 마음이 아프고 눈물까지 흐르는데....
그냥 다른 이유로 죽었다면 이렇게까지 괴롭진 않을텐데
삐약이에겐 무시무시한 괴물이나 다름없는 고양이가 ..그것도 단 번에 물어간게 아니라
안 열리는 우리를 억지로 틈 만들어 쳐 들어올 동안 얼마나 무섭고 끔찍했으랴..
비록 말 못하는 동물이지만 자신의 생존을 끝장내러 오는 그 공포의 시간이 얼마나
무서웠을지 생각만 해도 슬퍼져요.
차라리 즉사가 낫지...
삐약아 정말 미안해.
얼마나 무서웠니?
우리 아들애한테는 어떻게 설명 해 줘야 할까...
고양이에게 잡혀 갔다고 말하지 않고 삐약이가 혼자 도망갓다고 말 해주려 하는데
그 여리고 마음 약한 아이가 도망간 삐약이의 안전을 얼마나 걱정할지...
니들님 외 동물을 키우시는 분들..
두 달간 키운 병아리한테서도 이런 괴로운 마음이 드는데 몇년간 동물 키우며
정 주시는 분들은 이별후의 괴로움을 어찌 달래시나요?
그것도 별로 좋지 못한 이별이라면..?
전 이제 동물은 못 키울것 같아요.
니들님은 개들을 특히 좋아하시던데 그 동물들이 주는 기쁨이 이별의 슬픔을
이기니까 계속 키운시겠죠?
마음이 울적하고 답답해서... 전 원래 고양이 안 싫어하는데 당분간 고양이가 미울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