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회사는 일년에 딱한번 승진 발령이 있습니다.
그동안 내부사정으로 올해는 승진발표가 좀 늦게 됬는데..오늘이 그날입니다.
아침부터 초조한 마음에..괜히 불길한 예감이 많았습니다.
반면 50대 50이란 말에 기대도 있었구요.
저녁시간이 지나고 전화가 안오고 저녁먹고 들어간다는 전화에 예감이 들었습니다.
아...안됐나부다..
밤이 다 되가는 시간에 전화가 왔습니다.
집앞 호프집에서 치킨하고 맥주를 한잔 하고 싶다고..
아이에게 아빠 기분이 좀 그럴꺼라고 자세히 설명해 주고 호프집에 들어섰습니다.
먼저 도착해 있는 남편은 약간 취기가 있었고 장미꽃 두송이를 따로따로 포장해서
들고 있다가 딸아이와 저에게 하나씩 건넵니다. 웬거냔 질문에
" 응..앞으로 당신하고 아이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나..부족한 사람이니까..앞으로도 잘 부탁해.."
순간 가슴이 덜컹하고 눈물이 나오려는걸 억지로 참았습니다.
이번에도 안되면..다음해 부터 장기 승진 탈락자명단에 올라 인사고과자체에서 감점이 주어진다는 걸 알기에..
남편은 대학을 졸업하고 14년째 다니고 있고 마흔입니다.
그동안 대리,과장은 한번도 누락없이 승승장구 하는 편이었는데..
차장진급에서만 3년째 고배를 마시고 있습니다.
이제 8년째 과장인 셈이지요. 만년과장... 그게 당분간 남편의 꼬리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남편과 이얘기 저얘기 나누는 동안..
사실..저는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러다 얼마 더 못다니면 어쩌지..애는 한참 클 시기고 변두리에 스무평 작은 집 살때 받은 대출금도 아직 많이 남았는데..시골에 혼자사시는 시어머니밑으로 들어갈 돈도 많은데.. 이럴때 나라도 능력있으면 얼마나 좋아..
얼마나 좌절감이 들고 창피할까..자존심은 얼마나 다쳤을까..그동안 회사일에 애착을 가지고 열심히 일했는데 인정안해주는 건 뭐야.. 그 인간고과 제일 낮게 줘서 두고두고 애먹이는 3년전 직장상사는 도대체 어떤 인간이야..
지난 주말에 교회를 빠진것도 잘못이었어. 남편을 위해 기도했어야 했는데..시어머니가 너무 심한 언행을 많이 하셔서 요즘 미워하고 잘 못해드렸는데..부모에게 잘못해서 벌을 받고 있나..많은 부분 내 책임인가..
남편은 씁쓸하게 웃으면서 얘기합니다.
자존심 못세워줘서 미안하다구요. 몇년째 과장와이프로 살아야 하니 남에게(동네에서) 챙피하겠다고
앞으론 가늘고 길게 가는 방법을 모색해야 겠다구요.
아직은 내가 회사에서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라 다행이라구요.
우리팀은 지금 내가 없으면 안된다구요.
뭐..지금 당장은 지금 월급으로도.. 인상이 되지 않아도..
시골에 용돈보내고..딸 자식 하나 키우며 불편하게 살지 않을 정도는 됩니다.
하지만..앞날에 대한 불안으로..답답한 게지요.
남편은 어려서 아버지 여의고 가난한 집에서 독하게 혼자 공부해서 겨우겨우 학자금 대출받고 친척에 기대고 입주과외하고 각종알바하고 어렵게 어렵게 명문대를 졸업했습니다. 졸업하고 취업도 어렵지 않게 했구요.
그동안 집에 돈없다는 거 제외하곤 본인의 능력자체로는 별로 좌절이라곤 몰랐을 사람인데..이번 일로 너무 큰 좌절을 겪었을겁니다.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촉촉한 눈빛만 봐도 가슴이 아파옵니다.
운이 없는 사람이지 무능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줬으면 합니다.
오늘..남편이 못나고 무심한 나를 많이 사랑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년에 두번째 탁락이 됬을땐 술을 먹고 들어와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앞으로 챙피해서 직장생활 어찌하냐며 울었기에 이번에도 걱정이 많았거든요.
무엇보다 본인 상심이 가장 클텐데.. 오히려 저를 위로해 주는 마음이 고마왔습니다.
앞으로 남편에게만 의지할께 아니라..저도 뭔가..깨어남이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10원을 100원같이 써야겠단 각오도 함께 들었습니다.
요즘같이 어려운 때에..직장마져 없어 하루하루가 힘든분들과 비교하면 저희 부부는 그나마도 행복이겠지요.
비온뒤에 땅이 더 굳는다고..
전화위복의 기회가 됬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엔 사십대가 얼마나 힘이 드는 세대인지 몰랐습니다.
전 아직도 삼십대 중반이지만..남편을 통해 사십대 중년의 위기감을 서서히 느낄수가 있을것 같습니다.
멀게만 느껴졌던 그때가 이제 코앞에 닥칠수도 있음을 생각하며..
더 많이 준비하고 더 많이 노력하며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