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밤이다.
답답하고 한숨이 난다.
6학년 수업시간,
한 녀석이 써 놓은 글을 첨삭하고 있다.
중언부언......한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맹구야. 너 선생님이 첨삭해 주면 3번 씩 읽으랬지?>
아주 짜증난다는 표정과 말투로
<읽는데요?>
<그런데 왜 이렇게 몇 달 씩 지나도 개선이 안돼?>
솟구쳐 오르는 화를 꾹꾹 누루며 계속 첨삭을 한다.
<선생님, 빈곤이 뭐예요?>
<가난한 것>
그 녀석이다. 대답해 주고 다시 첨삭...
<선생님, 원폭이 뭐예요?>
또 그녀석이다.
<원자폭탄>
다른 아이들이 먼저 대답한다.
<맹구야, 선생님이 "돼"와 "되"의 쓰임에 대해 매번 말하지?>
<"안"과 "않"의 쓰임에 대해서도 매 수업시간마다 설명하는데. 왜 이렇게 구분을 안 했니.>
녀석 시큰둥하게
<알았다구요~오>
너, 어휘력이 너무 부족해.
곧 중학생이 되는데 요즘 책 많이 안 읽지?
읽는데요?
동화책 읽을 때 국어사전 옆에 두고 찾아가며 읽어.
동화 안 읽어요. 소설 읽어요.
어휘력이 짧다는 건,
이해력이 짧은 것과 같아.
이해력이 짧다는 것은
기초학습 능력이 떨어진다는 거야.
중학교 가면 초등학교 때와 다르게 새로운 어휘가 각 과목마다 무진장 쏟아진다.
초등 어휘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중학교 가면 안 되니까 꼭 어휘력 늘려라.
친구들 있는 데서 신경직적으로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평소에도 유아스러운 면이 많이 있는 아이.
다른 아이들은 수업내용을 다 알아듣고 진도 나가는데
늘 혼자 이건 뭐예요. 저건 뭐예요. 해서 수업의 맥을 끊는다.
그렇다 해도 그 아인 내 고객이고
나는 무조건 그 아이에게 친절해야 한다.
감정이 개입되어 말한 건 프로의식 결여이다.
나는 오늘 밤, 내게 벌을 내린다.
고객에게 친절하지 못한 죄,
너무 쉽게 자신의 밴댕이 소갈딱지를 드러낸 죄,
그 죄값으로 최신판 국어사전을 주문했다.
4만원짜리, 다음 주에 그 아이가 오면 줄 것이다.
그리고 숙제를 내야지
<선생님하고 수업있는 날에는 새로운 어휘 10개 씩 노트에 정리해 와!>
그러면 그 아이 어휘력이 늘까?
죄값을 너무 가볍게 치른 건지, 아직도 마음이 편치 않아서 잠 들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