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떳을때 어머닌 안계셨다 무성한 말만 나를 진저리 치며 흐느끼게 만들었다. 늘 죽지못해 사셨다고 하셨고 늘 격하게 겨루었다고 주위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하셨다 사랑없는 생활에 넌들머리가 나고 골머리를 앓았다고 했었다 늘 아버지와 치열하게 싸우셨고 참담하게 매질을 당해야 분을 가라앉힌 아버지는 쓰린속을 담배로 달랬지만 어머닌 부뚜막에 앉아 슬픔에 얼굴을 묻었다고 하셨다 주위에서는 이렇궁 저렇궁 말이 많았다 너희엄마는 씀씀이가 헤푸다 성격이 모난다 그러니 아버지에게 매질을 당하지 그렇게 눈물로 흐느끼며 사셨고 마침내 네가 자리를 털고 걸음마를 떼었을때 소리소문없이 떠나셨다 물론 네나이 8살에 완전히 이혼은 했었지만 두사람이 완벽하게 갈라선건 그전의 일이다. 나는 부모님사이에서 완전히 표류하는 섬이 되었다 사람을 기피하며 사람들과 섞일수 없었고 사람들에게 가진것은 극도의 히스테리와 경계심뿐 늘 곤두선 지독한 신경에 사람을 만나는것 사람과 눈을 마주하는것과 사람과 대화하는것조차 힘들었다 아버진 무뚝뚝하셨고 호통으로 사람을 다스리는분이라 싹싹하고 자상한 마음이 없었기에 나는 어릴쩍부터 마음을 일찍부터 빗장을 걸어놓았다 아마도 더 다칠까 싶어 남들에게 보이고싶지않은 나의 야휘고 야휜 속을 외투로 가리듯 두툼한 벽을 세우고 나를 방어하려고 필사적으로 살았다 . 점점 어머니에게 굶주려갔다 모성애가 무엇인지 가슴은 구멍하나가 크게 뚫렸다 아무리 해도 가시지 않는 이 기분과 감정이였다 주눅든 축 처진 어깨만큼 어릴때나 지금이나 사람들과 소통에서 자유롭지 못해서 나는 늘 변두리를 배회하는 인생을 살았다 학교에서는 두각없는 학생으로 소질없는 떠내기로 울며겨자먹기로 자원한 군대에서는 죽지못해 군복을 껴입은 나약한 젊은이로 그렇게 나는 구속을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나는 자유로울수 없었다 나는 늘 둔하다는 이유로 야유와 수근거림을 받으며 지냈다 많은 삿대질로 나를 빈정거렸고 은밀한 눈초리가 늘 나를 가렵게 몰아갔다 그렇게 벼랑으로 내몰리듯 나는 나를 죽음을 생각했다 살아있음이 이리도 눈물겹다니 죽음만이 해방시켜줄 것이라는 해서는 안될 생각을 하고 일을 만들었다 다행히 자살은 실패했었다 .정신을 놓고 논산훈련소에 쓰러진 날 들처업고 병원에 데려가준 조교가 계셨다 그리고 그 조교의 힘으로 겨우 헌병대에 개처럼 끌려가는 신세는 면했고 그럭저럭 궁한 가정형편과 나의 정신병력이 인정되서 면제를 당했고 집으로 돌아와 나는 오로지 술을 입에 마주하며 담배와 씁쓸한 입맞춤으로 살았다 넋나간 정신덕에 나는 군대면제를 받았고 방황과 좌절을 일삼으며 시간을 죽였고 무능한 세월만 쌓았고 무기력만을 낚았다. 그때 누이가 장사를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물론 그곳에서 어머니와 극적인 상봉을 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꿈꿀수 없었다 물론 철들지 않은 어린숙한 나이에 허무맹랑하게 어머니를 찾아간적이 있었다 20살정도 고등학교를 마치고 그저 엄마가 보고싶다는 생각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물어물어 어머니가 계신다는 광주로 찾아갔었다 하지만 어머닌 저를 보자마자 차비를 쥐어주며 매몰차게 등을 떠미셨고 잘가라는 말과 함께 사람들속에 섞였다 그것이 어머니와 첫번째 만남이다 얼마나 울었을까 얼마나 분했을까 얼마나 보고싶었는데...장사라고 하지만 형편없는 자리에 희망없는 장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구의 진밭골이라는 산골에 백숙가게를 차렸다고 했다 그저 산이라 오르고 싶다는 생각에 무턱되고 갔었지만 그곳에 낯선 얼굴이 있었다 홀로 어렵게 생활을 꾸리는게 너무나 힘들어 누나와 함께 살고파 이렇게 이곳에서 가게를 꾸리게 되었고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장담할수도 없었고 한번도 마음을 주고받으며 서로가 서로의 가슴을 들여다 본적도 없었기에 정말 부담스럽고 불편한 시간이였다 .하지만 나는 그당시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늘 뒤척이는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희망보다는 절망에 가깝웠기에 몸과 맘을 어딘가 에 내려놓고 싶었다 어쩌면 어머니라는 사람에게 어꺠를 드리워 쉬고 싶었다 힘겹게 결심을 하고 진밭골에 살았다 해발 800산세 만큼 모든게 불편하고 힘겨웠다 말이 장사지 궁한 살림 뒤치닥거리 하는것도 보통일은 아니였다 어려운 형편에 가게를 했기에 뭐하나 있는것이 없었고 산골에서 사는것이라 연료비 생활비 그리고 누나의 아이의 교육문제도 신경쓰였다 그리고 제일 문제는 정말 손님구경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려웠다는것이다 늘 부족한 생활비에 한푼이라도 아끼려 어머닌 산에 올라 장작을 베어 연료로 사용하셨고 궁한 살림 펴기위해 안면가리고 뻔뻔하다 소리들을 각오로 여러 사람에게 부탁하며 겨우 굶지않을정도로 장사를 꾸렸다 휘는 형편이라 어머닌 장사가 되지않는날이면 텃밭에 올라 고추와 깻잎을 일구셨다.그런 어머니였는데 나와의 사이는 약5년동안 한번도 웃으면서 이야기 한번 나눈적이 없었다 뭐니뭐니해도 너무나 오랜세월 헤어졌으니 남이 되었기에 남다른 취향과 남다른 입맛과 남다른 생각과 성격등 하나라도 맞는게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충돌하고 부딪쳤고 격하게 다퉜고 때론 거칠게 싸우며 다투었다 역시 홀로 살아온 어머닌 모든게 거칠었다 늘 입엔 담배를 꼬나물고 술을 기울이며 앙금을 달랬고 속을 푸셨다 하지만 그렇게 모질고 거칠게 살아서인지 입이 거칠었다 물론 나또한 무능력하다 무기력하다는 생각에 그곳에 왔기에 누나나 매형이 곱게 보지 않았다 늘 열심히 집안일과 식당일을 했지만 없는 살림에 자꾸만 휘어가고 기울어만 갔다 빠뜻한 벌이라 나는 용돈조차도 없었고 일한 댓가도 없었다 그저 5년동안 어머니에게 겨우 외출에 나설때만 몇푼의 돈을 받았다 25살의 나이에 한달에 10만원도 안되는 돈을 받으며 꾸역꾸역 참으며 지냈다 물론 돈때문에 미웠든것은 아니였다. 어머닌 오랫동안 장사를 해서일까 ..늘 가식이며 위선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늘 손님들앞에서는 달콤하고 부드럽게 맞추고 싹싹하게 애교도 부렸지만 네앞에서는 늘 거칠게 욕을 했고 꾸짖고 시리고 시린 소리만을 늘어놓았다 참 서럽고 서러웠다 늘 굶주린 어머닌데 너무나 가혹하다 생각들었다 물론 어머니이기에 참아야 했었기에 몇년에 죽은듯 아무렇지 않은듯 한귀로 흘리고 들어도 모르는척 그렇게 참고 참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부족하고 모자랐기에 어쩔수 없다고 그렇게 속을 달래고 풀었다 점점 장사는 신통치 않았고 힘에 겨웠다 .나는 어머니와 살면서 자살을 가장 많이 생각했었다 나에게 치욕을 주는것은 오직 가까운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를 안다는것은 나의 이름을 나의 잠자리를 나의 이력을 나의 경력을 아는것이 아니라 네 속마음과 네 정신과 네의지를 아는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어머닌 나의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나또한 어머니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나는 어머니와 지낸 그 5년동안 느낀것이 있었다 사람이 총칼로만 사람을 베고 쓰러트릴수 있지않음을 잘알았다 사람은 살벌한 눈빛과 날카로운 목소리와 매서운 눈초리와 은밀한 수근거림과 음흉한 속마음으로도 사람이 사람을 얼마나든지 피말려 죽일수 있음을 잘 알았다 그래서 나는 5년 동안 참고 참았지만 일순간 네 마음의 방죽은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가장 후회가 드는일이 지금 떠오른다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나는 농약을 들이켰다 분하고 억울해서 서러워서 분통달랠수 없었고 찢기고 타들어가는 속 어디에도 풀수없음이 비통하고 비통해서 타들어가는 심정으로 정신이 서서히 달아났고 의식이 시들어갔다 죽음만이 처참한 나의 정신과 마음을 잡아줄것 같았다 하지만 어리석은 선택이였다 쉽지 않은 세월을 살았든것은 어머니도 같은데 누이도 나도 마찮가지다 누가 상처를 더 입었고 덜입었고의 문제가 아니였다 우리는 늘 칼네아데스의 판자를 치르며 살고있었다. 칼네아데스의 판자가 희미하게 떠올랐다 병원에서 속을 개웠다 정신을 놓고 깊고 깊은 어둠에 묻혔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지만 참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꿈인것 같았다 어머니의 젖무덤에 묻혀 어리광을 부리며 칭얼거리는 모습이 그려졌다 고통과 상처를 저울질 하려든 나의 철없음이 한없이 부끄러웠고 갈기갈기 찢긴 어머니도 힘겨워서 죽을맛으로 사셨다 어쩌면 죽지못해 기를 쓰며 사셨는데 밤새 나를 간호하시며 한잠도 이루지 못한 어머닌 눈망울가득 굵은 눈물이 그렁거렸다...정말 괴롭고 괴로웠다 아무리 해도 아무리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가까스로 농약과 지독한 독기를 개워내고 몸을 추스려 얼마후에 퇴원을 했다 물론 그때의 생활로 되돌아갔다 산꼴에 묻혀 모든게 불편했었고 장사에 빠져 근심하고 절망을 했었다...하지만 그때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은 말없이 네 손을 잡아주셨든 어머니의 따뜻하고 훈훈한 손이였다 나는 말하고 싶었는데 사람되라 종아리 치시든 어머니를 향해서 인간되라 쥐어박으시든 어머니에 대해서 정신차리라 거칠게 잡아주시든 그 감사함에 늘 말하고 싶었는데 쉽게 입이 열리지 않아 늘 주저하고 있었는데 .... 눈물겹고 지독한 5년이 가까스로 흘렀고 겨우 죽지못해 사는 인생이 우릴 반겼지만 우리가 그곳을 청산하고 각자의 보금자리로 돌아오게 했든것은 아마도 그것일것이다 한푼이라도 악착같이 아끼려든 어머니의 절약심에 들여놓은 고추가는 기계에 누나의 아이 즉 조카가 손이 빨렸고 그덕에 왼손4개가 달아났다 엄지손 하나만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그덕에 어머닌 누나와 매형에게 궁지에 몰렸고 어렵고 돈만 까먹는 식당을 접기로 하고 각자 뿔뿔히 흩어졌다 정말 눈물겨운 그곳인데... 얼마전 어머니가 너무나 아파 병원비가 필요하다는 전화를 받았다 나는 매몰차게 거절을 했다 물론 나에게 돈을 달라고 했든것은 아니였다 아버지에게 돈을 달라고 부탁드려달라고 했지만 아버지와 무심함에 상처입을까 아버지의 무정함에 가슴 찢길까 생각해서 주저없이 거절을했었다...지난 일요일 나는 진밭골에 올랐다 어머니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훔쳐보기 위해 하지만 이제 몸이 많이 상하고 아파 일을 다닐수 없다고 하셨고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정말 나는 몹쓸놈 추한놈 흉악한놈이였다 늘 휘어지는 어머니를 등꼴빠지시는 어머닐 그렇게 몰아 세웠든 나는.... 나는 그래도 되는줄 알았다 찬밥에 대충 때워도 되는줄 알았고 오직 당신을 위해서는 푸성귀하나 심지않았다는 어머니가 그래도 되는줄 알았고 시린 냇물에 빨래방망질이질 하든 어머니가 그래도 되는줄 알았고 어둠에 묻혀 우후 바람우는 밤 홀로 흐느끼든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줄 알았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보고싶다 왜 진작 마음 잡아주지못했을까 왜 진작 한번이라도 감싸지 못했을까요 그 아득하고 까마득한 어머니 아버지의 마음과 감사함을 너무나 보고싶은데 죽을만큼 보고싶은데 정녕 삶이란 무엇일까요 기를 쓰며 사는것일까요 기를 쓰며 죽는것일까요 삶이란 칼네아데스의 판자처럼 네가 행복해지기위해서는 타인의 행복을 뭉개고 짓밟아야 하나요 아니면 다른이의 위급함을 방관해야 하나요 저는 제 힘듬에 어머니의 상처를 방관했습니다 제 상처에 어머니를 무심하게 바라봤고 네 고통에 정신팔렸기에 무정했습니다 그래서 늘 무심하다 무정하다 말하며 어머닌 무관심하다 말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제가 어머니에게 무심했었고 무정했었고 무관심했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가슴에 오고가는것이 어렵고 부담스럽다 생각했었지만 왜 진작 한번이라도 가슴안아주지 못했고 가슴 어루만지지 못했을까요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다만 그래도 되는줄 알았습니다 정말 그래도 되는줄 알았습니다 (출처 : 아줌마닷컴 - 경험과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