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제 다음 달이면, 아버지의 72회 생신이 다시 돌아옵니다. 그 동안, 언제나 이 못난 불효자식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하신 아버지께 늘 상,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지난 날, 남들 다 해 드리는 육순 잔치는 고사하고 꼭, 차려 드려야 했을 칠순 잔치마저도 부실하게 넘겨버린 이 아들놈의 막중한 불효를 어찌 필설로써 다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버지, 이제는 너무 실망만은 마세요. 비록, 늦기는 했지만, 이렇게 저도 이제는 제정신을 차리고 생활에 충실하고 있으니까요. 아버지도 아시다시피 지금 저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직장 생활에도 매우 충실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이제, 어머니의 칠순이 되는 이년 후의 그 때야말로 저희 자식들이 두 분을 위하여 제대로 한 번, 동네가 들썩거릴 정도로 크게 잔치를 열어볼까 합니다. 이제는 저도 한 살 두 살 자꾸 나이를 먹어가니, 그 동안에는 등 안 시 하기만 했던 우리 민족 전래의 풍습들에도 제법 자꾸만 마음이 닿아가고 있거든요. 그리고 아버지, 그 동안, 언제나 이 못난 손자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하신 할머니께도 늘 상,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지난 날, 남들 다 참석하는 팔순 잔치는 고사하고 꼭, 참석했어야 할 구순 잔치마저도 그저, 이 핑계 저 핑계로 외면하기만 하던 이 못난 손자였으니까요. 그러나 아버지. 그 또한 이제부터는 실망하시지 마세요. 늦긴 했지만, 이제 더 이상 예전의 못난 손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수 일 전에는 작은아버지께서 할머니의 병환 소식을 제게 전화로 알려오셨습니다.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시켜드리라고 했지만, 작은아버지는 그리 큰 병환이 아니니, 우선 집에 모시고서 지켜보자고 하셨었지요. 저는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친할머니가 몸져누우셨다는 그 기별을 처음 듣고는 마음이 매우 착잡해졌습니다. 꼭, 말썽구러기인 제가 병환이 드시게 한 것만 같아서지요. 물론, 저와 같은 심정은 당신의 큰아드님이신 아버지께서 당연히 저보다 더 하실 것이지만 말입니다. 생각해 보면 친할머니 역시도 아버지 못지 않게 어린 시절의 제가 가장 따르던 분이셨습니다. 어릴 때, 가끔씩 할머니 집에 들릴 때마다 과자 사 먹으라며 쌈지 주머니에서 꺼내주시곤 하던 꾸깃꾸깃했던 그 용돈의 기억들이 아직까지도 뇌리에 선합니다. 그리고 가을날이면 울안 감나무에 열린 감을 직접, 따내셔서는 제 작은 손에 꼭 쥐어주시며 환히 웃으시던 할머니의 그런 모습과 일부러 아버지나 작은아버지들께 시키셔서 동네 산 속의 맑은 개울물에서 가재를 잡아오게 하셔서는, 뜨거운 화로 불 위에 놓여진 뚝배기된장에 넣고 자글자글 빨갛게 익혀서는 뚝뚝 살을 잘라서 제 밥숟갈 위에다 올려 놔 주시던 그 추억들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네요. 그리고 겨울날이면, 얼음을 지치다가 개울물에 발이 빠져 흠뻑 양말을 다 적시어와도 언제나 어머니의 꾸지람으로부터 늘 상, 저의 방패막이가 되어주시기도 한 분이었지요. 그런 소중한 할머니가 이제 병환에 드셨다니, 정말, 큰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발, 건강히 더 오래 오래 사셔야 할텐데...... 그래야 이 못난 손자가 할머니 용돈도 더 많이 드리고 어릴 때처럼 재롱도 마구 부릴 수 있을 텐 데....... 아버지, 아마도 이번 주는 할머니의 갑작스런 병환 탓으로 다른 때에 비해서 우리 집안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는 진심으로 할머니의 쾌유를 빌어드리며 아버지와 어머니 역시도 언제나 오래오래 건강을 유지하시길 간절히 기원드릴 뿐입니다. 꼭, 그렇게들 되셔서 그 동안 미진했던 아들내미 손자의 효도를 두 분께서 아니, 어머니까지 세 분 이서 함께 아주 오래 오랫동안 누려 받으셔야 합니다.♧ 객지에서 불효자식 昌이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