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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매니아인 우리 아빠에게 함께 할 1년을 기대하며.


BY wiwi8915 2006-12-31

저희 아버지는 운동 매니아이십니다. 지금도 주말이면 새벽 5시에 일어나 산에를 가시던가, 여의도까지 뛰어갔다 오십니다. 한달이면 마라톤화 세켤레, 등산화 2켤레를 해치우시죠. 그렇게 열심히 운동을 하고 오셔선 힘들다고 엄마에게 파스붙여라 다리 주물러라 엄살을 부리시죠. 저와 제 동생은 그런 아버지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당장 다음날이 엄마 생신인데, 새벽 산행을 하러 지리산에 산악회를 따라 가십니다. 환갑이 다 된 나이에 새해 맞이 마라톤 대회에 나가십니다. 풀코스로 밤 11시부터 다음날 2시까지 뛰는 것을요. 그리고 절대 혼자 뛰지 않으시고, 그 한밤중에 가족들모두 불러서 응원을 하도록 하십니다. 우리 가족은 아빠의 성화에 한겨울에도, 한여름 뛰약볕 아래서도 마라톤 하는 사람을 보면서 들어오는 사람에게 일일이 박수 쳐 주며 언제 올지 모르는 아빠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서울에서만 하시냐고요? 마라톤 하는 곳이라면 전국 곳곳을 찾아다니십니다. 진주, 충주, 장성 홍길동 축제, 바다의 날 기념,...... 제가 쫓아간 마라톤 대회만도 지금까지 20곳이 넘으니까요. 어느날 불볕 더위에 마라톤을 하고 와서 끙끙 앓고 계신 아버지께 동생이 물었습니다. "이렇게 힘들어 하시면서 도대체 왜 하시는 거에요?" 아빠는 힘들어 하시는 목소리로 대답하셨습니다. "이게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간단한 대답이었지만 그 대답에는 굉장히 많은 의미가 들어 있었습니다. 아빠는 토목일을 하셨습니다. 제가 어릴때는 한강다리도 지으시고, 올림픽 공원 건설도 맡으셨었죠. 하지만 제가 나이가 들수록 아빠의 직장은 서울에서 멀어져만 갔습니다. 서울은 이미 계발이 많이 되어 적당한 공사가 그리 없었던 것이죠. 제가 중학교때는 경기도 외곽으로, 제가 고등학교 때는 충청도로 그리고 제가 대학교때는 경상도로..... 아빠의 직장은 점점 저의 집과는 멀어져만 갔습니다. 매주 주말이면 올 수 있는 주말 아빠에서 월말 아빠로, 그리고 급기에는 비행기 타고 왔다 갔다 해야만해서 몇달에 한번 찾아올 수 있는 그런 아빠로, 그리고는 명절때만 보는 아빠로....... 그렇게 아빠의 존재는 우리에게 희미해져만 갔습니다. 아빠 없이도 엄마, 나 동생 셋이서 잘 살 수 있었죠. 아빠는 외로우셨던 것이었습니다. 혼자 외로움을 견딜 수 있는 길은 술이나 담배 아니면 운동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항상 이야기 하셨습니다. 저희 두 남매 자식 낳아서 기르는 것까지 보고 싶다고, 그게 아빠의 의미인 것 같다고....그렇기 때문에 건강하셔야 했고, 술이나 담배 보다는 운동을 택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살아 있는 이유셨으니까요. 나이가 드셔서 이제 서울로 올라오신 아버지는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이 너무 행복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운동을 하며 자신의 전부인 가족들 데리고 다니시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아빠의 작은 목표는 죽기 전까지 마라톤 풀코스를 100회 완주하는 것입니다. 저의 바램도 돈, 좋은 직장 이런것에서 아빠가 작은 그 소망 이루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아빠 건강하세요. 그리고 저 아빠 자랑스러워 하는 거 알죠? 세상어디에도 아빠처럼 강한 아버지는 없을꺼에요. 존경하고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