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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웅의원. 그는 ’박정희‘말만해도 감방에 가는 박정희 철권정권의 공화당과 수천명을 살해하고 독재정권을 세운 민정당에 이어 신한국당의 당적을 오가면서 국회의원 뺏지를 달았다’
지난 2002년 김원웅의원과 함께 개혁당을 창당해 노무현후보를 대통령에 당선 시킨 유시민 복지부장관은 이번 대선에 출마할 경우 김원웅의원이 아킬레스건을 작용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는 김원웅 의원의 행적이 유시민장관의 대선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김원웅의원은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정권때 공화당 공채로 사무처직원에 들어간후 보수정권에서 정치생활을 해왔다.
김 의원은 박정희 정권시절이던 1972년 공화당 사무처 직원으로 정치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민정당에 몸을 담았고 90년에는 3당 합당에 반대하며 홍사덕·이철·노무현 등과 '꼬마민주당'을 창당, 3김 정치와 거리를 둬왔다.
김 의원은 3선으로 중진이지만 매번 소속 정당이 달랐다. 14대 때 민주당 소속으로 처음 국회에 입성했고, 이후에는 한나라당(16대)과 열린우리당(17대) 소속으로 금배지를 달았다. 또 2002년 대선에서는 한나라당을 탈당해 유시민 현 보건복지부 장관과 개혁당을 창당하기도 했다.

그후 김의원은 2000년 신한국당의 당적으로 대전에서 국회의원이 된후 2002년 대선전까지 이회창후보를 지원하다가 탈당, 유시민씨가 이끄는 개혁세력에 합세, 개혁당을 창당해 대표를 옹립됐다.
그는 2002년 대선에서 개혁당 대표로 노무현후보의 지원에 나섰으며 노후보의 대통령 당선후 다음해 노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민주당을 와해시키는데 주역을 했다.
그후 김의원은 개혁당을 해산한후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해 열린우리당의 개혁당지분을 유지하면서 당내에서 발언권을 강화했다.
지난3월 초순 김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올해 대선은 개혁·민족진영이 반한나라당 단일 대오를 만들 수 있느냐가 승패의 관건"이라며 "확고한 역사의식이 있는 내가 개혁·민족진영의 결집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범여권에서 대선 후보 선출에 나설 뜻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김 의원이 처음이다.

김 의원은 "이번 대선은 진영 대 진영의 대결"이라며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과의 싸움만이 아니라 분단의 고착이냐 극복이냐, 역사의 전진이냐 퇴행이냐를 결정하는 선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그 누가 질 것을 알면서도 옳은 길에 정치 생명을 걸어본 적 있느냐"며 "나는 여야 정치인 통틀어 한번도 지역주의에 편승하지 않고 3김 신세를 지지 않은 유일한 정치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김 의원은 "운동 삼아 조깅하는 식이 아니라, 티벳 사람들이 절실한 구도의 정신을 갖고 오체투지 하는 것처럼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며 "신채호, 김구, 김대중이 걸어온 길의 연장선상에서 일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독립유공자 가족 등 30여 명의 지지자들이 참석했다. 김원웅 의원은 독립운동가 김근수 선생과 여성광복군 전월선 여사의 7남매 중 장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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