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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업자들 양심선언


BY ㅠㅠ 2008-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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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협상 타결 전에 쇠고기 거래됐다”

한겨레  기사전송 2008-06-07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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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수입업자 25명의 ‘양심고백’

“30개월 이상 쇠고기 계약여부 아무도 몰라”

“예상치 못한 것 다 풀려…딸에게 안먹인다”

“만약 내가 카길이나 타이슨푸드에 송아지 고기를 달라고 하면 줄 것 같습니까. 가격이 안 맞아서 들여올 수도 없지만, 물량이 없어서 수입을 할 수가 없어요.”

“수입을 희망하는 업체가 최하 수백 곳에서 많게는 1천 곳을 넘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어떤 기준으로 70곳을 허가업체로 지정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미국 축산업체와 거래해온 회사는 거의 실시간으로 정보를 받습니다. 그쪽에서 ‘협상이 타결되니까 물건이 필요하면 미리 계약해라’ 이런 식인 거죠.”

“정육은 프라임급이면 프라임, 초이스면 초이스, 이렇게 등급으로 하지 30개월 미만이냐 이상이냐를 따지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죠.”

“그건 말이 안 되지. 내가 원한다고 30개월 이하만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쇠고기 시장에서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이 바닥 사정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본 사람은 다 아는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거라고.”

지난 6월4일 저녁 서울 군자동 한 음식점에서 국내 육류수입유통업자 20여 명이 모였다. 다들 쇠고기에 관한 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다. 마침 이날 오전 언론에 등장했던 문제의 ‘자율 결의’ 이야기가 나오자, 기자 옆에 앉아 있던 ○○미트 김아무개 사장의 얼굴이 한층 붉어졌다. 그가 말한 갑과 을이란 각각 미국 육류수출업체와 국내 수입업자를 가리킨다.

미국 거대 축산기업을 이길 수 있나

“만약 내가 미국 카길이나 타이슨푸드에 송아지 고기를 달라고 하면 줄 것 같습니까. 절대 안 준다고. 물론 가격이 안 맞아서 들여올 수도 없지만, 내가 가져오고 싶어도 물량이 없어서 수입을 할 수가 없어요. 게다가 쟤들은 우리가 갈비 좋아하는 걸 아니까 그거라도 받으려면 어쩔 수 없이 30개월 이상도 받고 곱창도 받을 수밖에 없는 거야.”

김 사장이 말한 송아지 고기란 12개월에서 18개월 사이에 도축된 쇠고기를 말한다. 미국 사람들이 선호하는 품목이기 때문에 대부분 미국에서 소비된다. 카길 등 미국의 거대 축산기업이 굳이 이를 한국에 수출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국내에 수입되는 쇠고기의 등급과 부위는 대개 미국에서 소비되지 않는 것들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LA갈비와 30개월 이상의 정육, 그리고 뼈와 내장 등 부산물이 그런 것들이다.

게다가 국내 수입업자는 상대적으로 영세하고 그 수는 많다. 반면, 쇠고기 물량을 독점하고 있는 카길, 타이슨푸드 등 미국의 몇몇 거대 축산기업은 자국 정부와 의회를 움직일 정도로 로비력이 막강하다. 업체 규모와 자금력에서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미국 업체로서는 까다롭게 나오는 국내 수입업체에 ‘안 팔면 그만’이라는 배짱을 부릴 수 있다.

박창규 한국수입육협의회 회장은 이런 상황에서 언론을 상대로 “수입업체의 자율 결의에 따라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 수입하겠다”고 주장한 것이다. 박 회장을 성토하던 ○○미트 김 사장은 잔에 남은 소주를 입에 털어넣고 말했다. “내가 죽지 않으려면 이걸(30개월 이상 정육 및 내장) 받아서 팔아야 한다고. 아주 더러운 상황이 되는 거지.”

김 사장뿐만 아니라 이날 모인 대다수 육류수입유통업자들의 생각도 비슷했다. 반대편 테이블에 앉아 있던 WFP인터내셔널 정운석 대표의 주장도 같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출입 시장이라는 게 사는 사람이 아니라 파는 사람에게 힘이 있어요. 수출업체가 자기들 입맛에 맞는 수입업체를 골라서 고기를 준단 말이에요. 예전 미국산이 들어왔을 때도 그랬어요. 힘을 가지고 움직이면 우리는 휘둘리는 겁니다.”

미트윈의 문쌍진 이사는 “한국수입육협의회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체 업계에 자율 결의를 강요할 수도 없고 (자율 결의가) 가능하지도 않다”며 거들었다. 한국 사람들이 꺼리는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를 굳이 수출하려는 미국의 의도는 결국 ‘끼워팔기’에 있는데, 영세한 국내 수입업자들이 결의를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카길과 타이슨푸드 등 미국의 메이저 축산기업이 120일간 30개월 미만과 30개월 이상의 월령 표시를 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것이 이들의 견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수입업자는 “그건 누가 보더라도 지금 당장 들끓고 있는 한국 내 여론을 무마해보겠다는 것”이라며 “안 팔겠다고 나오는 게 아니라 월령 표시를 해주겠다고 하는 걸 보면 어떻게든 30개월 이상을 한국에서 처리하겠다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박창규 회장 자격 의심스러워

화제는 협의회가 추진한다는 자율 결의의 실효성에 대한 비판에서 박창규 회장이 말한 허가제의 모순으로 흘러갔다. 박 회장은 자율 결의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수입업체 신고제를 허가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컴퍼니 서 아무개 과장이 운을 뗐다. “그건 있는 사람들만 먹고살겠다는 이야기죠. 누구나 서류 작성만 할 줄 알면 원하는 물건을 수입할 수 있는 세상인데, 허가받고 하라는 건 돈 있는 사람만 수입할 테니까 없는 사람들은 로컬 구매나 하라는 거죠.”

‘로컬 구매’란 직수입과 달리 수입업체가 미국산 쇠고기를 들여와서 통관시키면 이를 다른 업체가 다시 사들이는 것을 말한다. 서 과장은 “허가제로 바꾸면 자기들이 물량을 쥐고 단가를 형성해서 흔들 테니, 허가받지 못한 나머지 로컬업자들은 자기들이 부르는 금액에 사라는 것”이라며 “가뜩이나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은 마당에 자기네 욕심을 채우려는 행태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쌍진 이사 역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희망하는 업체가 최하 수백 곳에서 많게는 1천 곳을 넘는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인데, 어떤 기준으로 70곳을 허가업체로 지정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창규 회장은 지난해까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했던 58개 업체와 신규 업체 10곳 정도를 합해 70여 개 수입업체를 대상으로 자율 결의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와 달리 업계에서는 육류수입업체가 적게는 500곳에서 많게는 2천 곳이 넘는다는 것이 정설로 통하고 있다. 업계 사정이 이런데도 박창규 회장이 허가제를 운운하는 것은 미 쇠고기 수입시장을 몇몇 업체가 독점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대다수 모임 참석자들의 견해였다.

“박창규 회장이라는 인물에 대해 업계에서는 초저가 수입 쇠고기 전문 프랜차이즈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정도밖에 알려진 것이 없어요. 그가 사장으로 있다는 에이미트도 메이저 수입업체가 아니에요. 그런데 누가 회장을 시켜줬답니까. 아무나 하겠다고 손들면 회장이 되는 거랍니까.” 누군가 박창규 회장의 자격 문제를 거론했다.

축산 관련 단체에서도 박창규 회장과 협회의 신뢰성과 자격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CJ푸드시스템과 농수축산물유통공사, 목우촌, 남부햄 등 60개 육류수출입업체가 소속된 (사)한국육류유통수출입협회 양형조 실장은 “농림수산식품부에서도 그 사람(박창규)이 누구냐고 연락처를 물어올 정도로 생소한 단체”라며 “이왕 수입업자 협의회를 만들려면 우리와 함께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수차례 제안해봤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같이할 생각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협의회의 구성 배경에 대한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와 관련해 이날 모임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국내 메이저 수입업체 가운데 한 곳인 한냉의 한 간부는 미국산 쇠고기 협상을 재촉하고 나선 수입업자들은 이미 수입 물량을 확보해놓은 업체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미 계약을 마친 업체가 있는가 하면 지난해 미국산 뼈 없는 쇠고기 5300t을 수입했다가 통관시키지 못한 업체들이 있잖습니까. 그들은 무조건 미국산 쇠고기 협상이 빨리 마무리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죠. 하지만 아직 미국 패커(수출업자)를 못 잡은 사람들은 좀더 지연되기를 희망하죠. 수입업자라고 해도 계약 유무에 따라 입장이 조금씩 다른 겁니다.”

타결 전 거래된 이유는 시장 선점 때문

<한겨레21> 취재 결과, 4월18일 미국산 쇠고기 협상이 타결되기 이전부터 “협상은 이미 끝났다”는 이야기가 국내 수입업자들 사이에서도 파다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상당수 수입업자들은 4월 초까지 수입 계약을 위해 직접 미국을 오가기도 했다.

수입업계의 한 관계자는 “업계 관계자들끼리는 이미 올 초 미국산 쇠고기 협상이 끝났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우리 같은 경우도 협상 타결까지 기다리지 않고 계약을 끝냈다”고 말했다. 그는 “뼈는 (개방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다른 품목까지 이렇게 완전히 열어버릴 줄은 몰랐다”고 덧붙였다.

○○미트 김 사장도 “지난 2월부터 3월 초까지 서울 마장동 유통업계에는 CJ푸드시스템이나 이네트 등 몇몇 메이저 수입업체에서 나온 영업사원들이 ‘미국산 쇠고기가 곧 들어올 것’이라며 가격 협상을 제안하고 다녔다”고 말했다. 마장동 유통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 최초에 제시됐던 가격은 LA갈비의 경우 kg당 10달러 수준이었다. 이 가격은 수입업체와 유통업체 간 협상 과정에서 3월 초 7~8달러까지 떨어졌다.

협상 타결 이전에 이처럼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계약이 이뤄졌던 이유는 시장 선점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또 수입업자들이 시장 선점을 위해 이처럼 분주히 움직일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 정부 관계자들도 ‘몰랐던’ 협상 타결 여부를 확신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ㅁ사 관계자는 “올 초 메이저 업체들이 갑자기 오스트레일리아산 재고를 털면서 자금 확보에 주력했다”며 “ㅇ사, ㅈ사, ㅎ사 등이 협상 타결 직전, 오스트레일리아산을 대거 내다판 대표적인 업체들”이라고 지목했다. △△컴퍼니 서 과장의 말도 같다. “꼭 우리 정부에서 나오는 정보가 아니더라도 카길과 타이슨푸드 등 미국 축산업체와 지속적으로 거래해온 회사는 그쪽을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정보를 받습니다. 그쪽에서 ‘이번에는 협상이 타결되니까 물건이 필요하면 미리 계약해라’ 이런 식인 거죠.”

문제는 이 과정에서 거의 모든 수입업자들이 쇠고기 월령과 상관없이 계약을 끝냈다는 사실이다. 미국 수출업체와 국내 수입업자가 계약할 당시에는 쇠고기 월령이 누구의 관심사도 아니었다. 당연히 계약 내용에 30개월 이상의 쇠고기가 포함됐는지 여부를 수입업체에서는 알 수가 없다. “갈비의 경우라면 1~12번 가운데 몇 번부터 몇 번, 길이는 얼마, 이런 식으로 계약하고 정육은 프라임급이면 프라임, 초이스면 초이스, 이렇게 등급으로 하지 30개월 미만이냐 이상이냐를 따지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죠. 갈비의 길이나 번호, 고기의 등급 등 업계에서 말하는 ‘스펙’(제품 표시)에 월령은 포함되지 않는 겁니다.” 미트윈 문쌍진 이사의 말이다.

이렇게 국내 수입업자들이 협상 타결 직전부터 미국에 부지런히 오간 결과는 미국산 쇠고기 가격의 상승이다. 국내 육류수입유통업자 커뮤니티 ‘미트피플’의 회원 ‘블루벨’은 5월9일 올린 게시물에서 “오늘 예전에 거래하던 (수출)업체들에 전화를 했는데 세 곳에서 ‘한국 업자들이 선금을 줄 테니 물건을 구해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돈 먼저 주겠다든가, 더 얹어주겠다든가 하며 미국 업체만 배 불리는 짓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도 딸에게 안 먹입니다”

6월4일 모인 육류수입유통업자들이 미국산 쇠고기 정국의 해법으로 내놓는 것은 재협상이었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마당에 ‘자율 결의’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행태로 국민을 속이려 하기보다 정부 차원에서 깨끗이 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자정이 훌쩍 넘도록 이어진 이날 모임의 마지막 대화들은 이렇다.

“제 딸이 중학교 2학년인데 광화문 촛불집회에 나가는 걸 막을 수 없었습니다. 솔직히 쇠고기를 수입하는 나도 우리 딸에게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쇠고기나 곱창을 안 먹입니다. 깨끗이 재협상을 해야 합니다. 댐이 무너질 때 조금씩 물을 빼야지 한꺼번에 빼면 댐이 견뎌냅니까.”(○○미트 김 사장)

”그렇게 했으면 이렇게 반발이 심하지는 않았을 거야.”(미트윈 문쌍진 이사)

“우리도 30개월짜리 필요 없잖아. 미국에서도 사실 뼈만 풀어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고.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것까지 다 풀려버렸는데, 누구 이야기를 듣고 협상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생각이 없는 것 같아.”(수입업자)

한겨레21 최성진 기자 cs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