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유일한 진리는 가변성이다.
세상 만물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가만히 있는 것 같은 지구도 엄청난 속도로 자전과 공전을 하고 있다.
우주의 모든 별들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뿐만 아니라 늘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은 돌도 내면을 들여다보면 쉼 없는 변화가 일어난다.
동양철학의 중심인 주역이나 불교의 교리의 기초도 바로 가변성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화한다.
예전에 보았던 뇌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면 변화를 더욱 실감할 수 있다.
“인간은 뇌다.” 라는 BBC 다큐멘터리를 보면 인간의 모든 것은 뇌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뇌는 끊임없이 변화된다.
어릴 적에는 지적인 변화가 중심을 이룬다.
따라서 천재를 만들려면 태교에서 3살까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그 동영상을 최근에야 보았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ㅠ.ㅠ
그러나 너무 안타까워 마시라.
대부분의 천재는 성장하고 나서는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 이유는 바로 사춘기의 뇌 변화에 대해 잘 대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 특별하게 노력하면 누구나 자신의 아이를 천재로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창조적인 인간은 사춘기 동안 만들어진다. 천재는 남보다 빠른 학습능력을 갖춘 존재일 뿐이다.
그렇다면 위대한 창조적인 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사춘기의 아이들을 대하고 있는 부모들은 이 부분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
애들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만 해서는 결코 내 아이를 창조적인 인간으로 만들 수 없다.
아이를 창조적으로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사춘기에는 정서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뇌에서 일어난다.
따라서 평소 하지 않던 돌출행동이나 과격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감정 변화가 급격하다 보니 제어가 안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들은 모두 성장의 과정이다.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화가 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일도 많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가 아이의 두뇌가 창조적으로 변화하기 위한 과도기라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부모가 그 사실을 알고 이해한다면 아이의 감성변화에 주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창조적인 아이는 부모가 아이의 창조성을 알아주고 격려해 줌으로써 더욱 발전된다.
아이는 어머니 배속에서 출산할 때 어머니 못지않은 큰 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사춘기에 와서는 외부의 충격 없이 신체 변화의 충격으로 시달린다.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큰 고통의 시간이므로 더욱 세심한 배려와 위로가 필요하다.
학교에 가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얼마나 힘든 정신적 변화를 겪고 있는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떤 아이는 힘에 겨워 자포자기 상태로 지내는 경우도 눈에 띈다.
그런 아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충고와 체벌이 아니라 사랑과 위로의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보람 있는 일을 하며 살고 싶어 한다.
자신이 무능력하고 무가치하다는 생각이 들면 삶의 의욕을 잃게 마련이다.
우리 사회는 너무 이기적이고 경쟁적이다.
완전히 금수들의 살육전쟁터와 같은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성인들은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느라 아이들의 고충을 살필 겨를이 없다.
결국 아이들은 엄청난 정신적인 충격을 스스로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대가족 제도로 인해 조부모가 손자들에게 적절한 위로와 안식을 주었다.
따라서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쉽게 안정될 수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가정이 거의 없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인간의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身言書判이라는 것이 있다.
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判, 즉 판단력이다.
판단력은 이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뇌에 대해 조금이라고 배웠다면 판단력은 감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즉, 감성의 능력이 인간의 능력이다.
많이 배우고 많이 안다고 유능한 것이 아니다.
인간이 컴퓨터보다 가치 있는 것은 감성을 갖고 창조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풍부하고 창조적인 감성을 갖추도록 하는 것은 사춘기 아이들을 둔 부모의 책임이다.
지식만 강요하는 시대에 좀 이상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성인들도 스스로를 돌아보면
감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기는 바로 감성의 시대다.
질풍노도의 시대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시시각각으로 감정이 변화하고 하고 싶은 일이 넘친다.
육체적으로는 급격히 성숙해서 어른 흉내도 내고 싶어지는 시기다.
모든 것을 창조적으로 나름대로의 판단으로 하고 싶어지는 나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일방적으로 학습만을 강요한다.
그렇기 때문에 늘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일부 아이들은 부모의 지시에 따라 순종한다.
그런 아이들은 창조성이나 융통성이 매우 낮은 어른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 아이를 다루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가능하다면 아이들의 창조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대화를 통해 서로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조부모가 손자를 보는 관점처럼 때로는 넓고 긴 안목으로 아이를 볼 필요도 있다.
아이들 지도에 필요한 것은 적절한 칭찬과 격려, 그리고 충고다.
어떤 것도 남발해서는 역효과만 부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의 실천이다.
화목하고 따듯한 가정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기본이다.
가능하면 아이들과 함께 대화하고 공부하고 생각하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나도 늘 반성하는 부분이다.
청소년기 아이들이 바르고 창조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현명한 희생이 필요하다.
무작정 주는 사랑이 아니다.
아이들이 해 달라는 것을 해 주는 희생이 아니다.
자신의 시간과 사고를 아이들에게 맞추고 함께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솔직히 책을 들고 있으면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고 졸리다.
아이들과 대화를 하면 재미없고 잘 모르는 것이 많다.
그러나 아이를 위해 졸면서라도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아이가 하는 이야기가 재미없고 모르는 것이라도 열심히 들어 주자.
그리고 아이가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일탈된 행동을 하는지 미리 찾아보고 대응책을 마련해
실천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내 주관의 사랑이 아닌 아이들이 받고 싶어 하는 사랑을 해 주자.
모든 부모가 그렇게 노력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매우 밝아 질 것이다.
적어도 자포자기하며 길거리를 방황하는 아이는 없을 것이다.
사춘기 아이들은 버릇없는 철부지가 아니라 누구보다 큰 고민을 안고 사는 우리의 소중한 미래다.
그들에게 보람 있고 창조적으로 세상을 살아갈 용기와 희망을 주는 것은 성인들의 의무다.
끝으로 세상이 경쟁과 물질적인 풍요만을 추구하지 말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변화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행복하기 위해서지 풍요를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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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부모도 인간이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