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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내기 아내와 쐬주를 마시며 -펌-


BY 민승희 2009-07-27

‘자기야 오늘 술 한잔 하자.’

아내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싫어!’

전 그냥 한번 튕겼습니다. 이러면 보통 ‘ 왜? ’라는 문자가 와야 되는데,

13년을 넘게 살다 보니 아내는 저를 너무 잘 압니다.

‘내가 살게. 쪼잔이 아저씨.’

저야 물론 바로 ‘콜’했습니다.

 

가끔 가는 연탄구이 집에서 아내와 마주 앉았습니다.

아내는 대뜸 테이블 위에 2만 원을 올려놓고

 

“ 내가 2만 원까지는 사주고 나머지는 자기가 알아서 해! ”

 

갈빗살 1인분에 만 원인데···.

전 갈빗살 2인분을 시키고 테이블 위에 3천 원을 올려놓고

소주 한 병을 시켰습니다.

 

아내가 공깃밥 하나를 주문하더군요.

전 아내와 테이블을 번갈아 쳐다보며 눈짓을 보냈습니다.

아내가 어이없는 표정을 잠시 짓더니

천 원 한 장을 꺼내서 테이블 위에 놓습니다.

초등학생들이 분식집에서 떡볶이 더치페이 하는 것도 아니고,

나이 39살 동갑내기 부부간에 별짓을 다합니다. ㅎㅎ

 

아내는 여기 연탄구이 집을 좋아합니다.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고 고기 맛도 좋고

아무런 규칙 없이 벽에 붙어 있는 영화 포스터들도 맘에 들어서랍니다.

소주가 몇 잔 돌아가면 아내는 항상 마주 앉아 있는 저를 옆 자리로 부릅니다.

 

“ 우리가 불륜이냐 옆에 앉아서 먹게.

부부는 마주 앉아서 먹는 거야.”

 

이렇게 저는 항상 주장 하지만

아내는 아무 말 없이 저와 의자를 번갈아 쳐다보며 으름장을 놓습니다.

연애할 때는 그렇게 옆에 달라붙어도 불편한지 모르고 음식을 먹었는데

언제부턴가 마주 앉아 먹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아내가 발그스레한 얼굴로 속삭였습니다.

 

“둘이 있을 때는 남들이 볼 때

불륜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좀 행동하자···.”

 

연탄불의 온기가 따스하게 느껴지는 분위기에서

같이 사는 부모님 이야기··· 초등학생 두 남매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들···.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소주잔을 비워갔습니다.

아내가 막 술을 자기 잔에 따르고 제 앞에 놓인 빈 잔과

저를 번갈아 쳐다보며 눈짓을 합니다.

저··· 3천 원 테이블에 올려놓고 소주 한 병을 외쳤습니다.

 

이렇게 2만 7천 원의 만찬을 즐기고

아내와 저는 집까지 30분이란 거리를 걸었습니다.

물론 걸어오면서 아내가 주장하는 아주 불륜스럽게···

가끔 길거리 모텔의 반짝이는 간판을 보고 서로를 번갈아 쳐다보며

야릇한 표정도 지어보고···.

 

어디선가 귀에 익은 음악 소리가 들립니다.

엘튼 존의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

 

무의식적으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는데 아내가 휴대폰을 받더군요.

아내의 벨소리였습니다.

아내의 컬러링은 많이 들어서 알고 있지만,

아내의 벨소리는 사실 몰랐습니다.

 

오늘 동갑내기 아내와 소주 한잔을 하면서 아내에 대해 두 가지를 알았습니다.

아내가 학창시절에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과 롤라장에서 모던토킹의 음악에 맞춰 롤라장을 주름잡았던 사실을,

그리고 두 번째는 아내의 벨 소리.

 

새삼 동시대를 살아왔고

동시대를 살아가고 동시대를 살아갈 아내가

예뻐 보였습니다.

.

.

.

물론 술기운 탓이겠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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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함이 있어요,.

http://blog.naver.com/agora_nayana/150063035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