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지 어느덧 8년이 지났습니다 약 한번 제대로 못 써보고 허망하게 보내 드린게 억울해 많이 울었는데 이젠 아버지 얼굴조차 가물가물합니다. 이북에서 혈혈단신 월남한 아버지의 평생 소원은 당신 문패가 붙은 집을 갖는 것이었습니다.장례를 마친뒤 짐 정리를 하다가 테두리가 누렇게 바랜 한문 액자를 발견했습니다. 집 사면 걸겠다고 아버지가 사 두신 거라더군요.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사셨던 집은 남의 땅을 빌어 그 위에 손수 지은 집이었습니다. 대문도 담도없고 기와조차 제대로 못얹은, 비닐하우스 수준을 겨우 벗어난 집, 처음 그집으로 이사했을때 사춘기 소년이였던 저는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릅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초를 켜고, 낮은 천장은 내 작은 키도 닿을 듯 했습니다. 바람 불면 금방이라도 쓰러질것 같아 가슴 졸이기도 여러번, 처마조차 없는 집은 빗속에서 더욱 처량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소를 키우셨습니다. 새벽부터 엄마와 함꼐 무심천 둑으로,우암산으로 다니며 손수레 가득 풀을 베어다 마당에 부려놓던 아버지는 여물 먹는 소들을 흐뭇하게 바라 보시곤 했습니다.. 하지만 소 값 파동으로 애써 키운 소들을 송아지 값도 안되는 헐갑에 처분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손댄 것은 토끼였습니다. 열마리였던 토끼가 백마리 이백 마리로 늘면서 내 집 마련으 꿈을 드디어 이루나 싶었는데, 중국산 앙고라 토끼털 수입 개방으로 아버지의 꿈은 또다시 산산조각 났습니다. 토끼 천 마리를 땅속에 파묻으며 눈물 흘리던 아버지를 보며 내 가슴도 찢어졌습니다.
가시는 순간까지 당신묻힐땅 한 뙈기 없어 애태우신 가난한 아버지.. "착하게 살았다는 것밖에는 물려줄 게 없어 미안하구나" 라며 유언조차 당당히 할수 없었던 내 아버지... 하지만 아버지가 모르셨던게 있습니다. 아무리 험한 인생 속에서도 소리 한번 안지르고 저를 귀하게 키우셨다는 것을요.. 아버지의 품이야말로 푸근하고 따듯한 안식처였다는 걸 이제야 고백합니다.. 아버지가 없는 서른 두평 아파트는 휑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