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라도 호의호식하고자 한다.
아울러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남보다 나은 환경에서 잘 살기를 염원한다.
이러한 바람의 귀착점이 바로 성공(成功)이다.
성공이란 누구라도 이루고자 그 목표를 세우는 지향점이다.
하지만 성공이란 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그 목적에 부합하려면 속된 말로 ‘피도 눈물도 없어야 한다’는
어떤 전제가 관건이자 수반의 동무가 되어야 한다.
물론 그런 초강수를 동원치 아니하고도
성공의 역에 도착한 이도 없지는 않을 터이다.
그렇지만 그 수는 기실 너무도 빈약하다는 데 있다.
하여간 성공이라는 열차에 올라 뒤도 옆도
안 돌아보고 앞으로만 마구 질주한 때가 내게도 있었다.
그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더불어 그러한 나의 열의와 열정을
상사와 회사로부터도 인정을 받게 되면 승진은 보장이 되리라 믿은 때문이었다.
그같은 얼추 우격다짐의 강행군은 마침내
회사 내에서 ‘전국 최연소 소장’이라는 타이틀의 획득으로 나타났다.
지난 시절의 그 서러웠던 비정규직이란 굴레를 벗고
나도 마침내 결국엔 정규직으로의 편입이란 꿈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하나 그 기간은 너무도 짧았다.
그래, 그건 바로 일장춘몽(一場春夢)의 극히 단편적 에피소드였다.
하필이면 왜? 내가 소장이 되고나서 얼마 되지도 않아 회사가 부도가 나느냐고!
여하튼 딱히 방책은 없었다.
매우 짧은 정규직의 ‘리무진’에서 내려와 다시금
비정규직이라는 털털거리는 ‘경운기’에 올라탈 수밖에 없었다.
그 길은 늘 그렇게 험악했다.
때론 고객들의 냉갈령스럽고 거센 거부의 돌부리에 넘어지고
실패와 좌절이란 물 깊은 논두렁에 빠지기도 일쑤였다.
밝았던 승승장구에서 어두운 지지부진의 터널로 들어서서
그 암담한 험로(險路)를 벗어나는 데만 참으로 오랜 세월이 소요되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자라야만이 그 빵의 의미를 알 듯
고생도 해 본 사람이 그 아픔과 비애를 절감하는 법이(었)다.
그러한 고생의 와중에도 세금 안 붙는다고
나이는 부쩍부쩍 먹어 불혹의 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그때부터 내 인생의 미래전략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성공의 대열에서 이탈한 지 오래다. 그렇다면?’
믿을 건 아이들뿐이었다.
이로부터 나는 열외시키고 아이들의 학교 공교육과
가정에서의 인성교육에도 남다른 열의를 발휘했다.
세월은 여류하여 나는 지천명의 언덕에 서 있고
아이들은 내가 경험한 것처럼 성공으로 가는 초입에 서 있다.
그렇긴 하더라도 나는 아이들에게 굳이 성공하라고 주문치 않으련다.
따지고 보면 성공이라는 건 극히 추상적 개념이다.
다만 중요한 내 나름의 성공이란 건 평소 가정이 건강하고
가족들 모두의 심신 또한 그에 준(準)하면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