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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우격다짐


BY 일필휴지 2010-05-06

 

올해도 어김없이 봄은 오는가 싶었으되 하지만 그 여진(餘震)은 매우 협소했다.

특히나 올 봄은 이상기온으로 말미암아 되레 추운 날이 더 많았다.


그래서 ‘춘래불사춘’이란 말이 올해처럼 딱 들어맞은 적은 또 없었다.

아무튼 봄이 그처럼 소리도 없이 사라지자 때 아닌 여름날씨가 습격을 감행했다.


하여 어제는 기온이 얼추 30도 가까이나

수은주가 올라가는 이상난동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어린이날이어서 휴일이었던 어제.

하지만 우린 아이들이 죄 자라서 성년이 된 까닭으로 고작 무덤덤한 날이었다.


아침을 먹고 뉴스를 보고 있는데

처제와 통화를 마친 아내가 이내 날 부려먹기 시작했다.

“00엄마(처제)가 곧 친정에 온대.

그러니 당신은 얼른 시장에 가서 닭 두 마리와 횡계 좀 사 와.”


횡계? 

황기는 알겠는데 대체 ‘횡계’는 뭐람?


그래서 다시 물었다.

“여름에 땀 많이 나지 말라고 삼계탕에 넣어 먹는 거 말하는 거지?”


“맞어, 횡계.”

“이 사람아, 심부름을 시키려면

똑바로 알고서 시켜. 횡계가 아니라 황기라고.”


하지만 아내는 계속하여 자신의 말이 맞다며 아예 우격다짐으로까지 나왔다.

“아녀! 내 말이 맞다니께. 하여간 인삼 파는 데 가서 횡계 한 무더기만 달라고 혀.”


아침부터 괜스런 걸로 언쟁하기가 싫어 더 이상은 함구한 채 시장으로 갔다.

단골로 가는 약국의 앞에서 인삼과 대추 등을 파는 할아버지 앞에 섰다.


“이게 황기 맞지유?”

“맞어유, 닭에 넣어서 드시게?”


“그류, 근디 얼마유?”

“2천 원이유. 대추는 안 사시고?”


“대추 값이 만만치 않아서유. 죄송한디 천 원어치도 팔아유?”

“그럼유~” 


할아버지는 덤이라며 한 주먹의 대추를 더 주시면서

인삼도 한 뿌리를 검정 봉지에 넣어주시는 게 아닌가.


“이렇게 파시면 부도 나겄슈. 아무튼 고마워유!”

“또 와유~”


아내가 말한 횡계는 한약재인 황기(黃芪)의 잘못된 표현이었다.

콩과의 여러해살이 풀인 황기의 뿌리는 약용(藥用)으로 쓰이며

그래서 한의학에선 이를 사람의 원기를 보충하고

땀을 그치게 하며 부종(浮腫) 따위에 쓴다고 알려져 있다.


대신에 횡계는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에 위치한 횡계리가 어떤 정답이다.

내가 나고 자란 충청도 역시 다른 지방과 마찬가지로 사투리가 여전히 엄존한다.


우스개 말로 “아부지, 돌 굴러가유.”라는 게

있기는 하지만 충청도 사람들은 그처럼 무식하진 않다.


사투리는 어느 한 지방에서만 쓰는 표준어가 아닌 말이다.

이를 방언(方言) 내지 ‘시골말’과 토어(土語)라고도 부르는데

하여간 사투리는 지역민의 단결을 도모하는 어떤 촉매제라는 게 평소의 시각이다.


이윽고 닭까지 다 샀기에 장은 다 봤다.

처갓집으로 들어서니 미리 온 아내가 닭과 황기 등이 담긴 봉지를 받았다.


“내 말이 맞다니께! 횡계가 아니라 황기라구!”

하지만 아내는 여전히 자신이 말이 맞다며 바득바득 우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