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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인데 당연히 써야죠!”


BY 일필휴지 2010-05-10

 

엊그제 어버이날.

아들이 오후에 온다고 하여 아침부터 마음이 보름달처럼 들떴다.


“직장 일로도 바쁜데 뭣 하러 와?”라고 말은 했지만 그건 정녕 본심이 아니었다.

효자인 아들은 극구 오겠다며 다시 또 전화를 해 왔다.


“수원역에서 방금 열차를 탔으니 1시간 반 뒤엔 집에 도착할 거예요.”

그새를 못 참고 동동거리며 집 밖으로 나갔다.


이웃집 할아버지께서도 집 밖으로 나와 담배를 태우고 계셨다.

그런데 상의는 여름용 러닝셔츠인데 반해 아랫도리는

겨울용 내복을 입고 계신, 그야말로

언밸런스룩(unbalance look)의 대표적 의상(?)을 자랑하고 계셨다.


“안녕하세요? 자제분들을 기다리시나 봐요?”

그 할아버지의 자제들도 효자들인지라 무시로

자신의 부모님(이웃집 할아버지와 할머니)을 찾곤 하는 걸 익히 보아 온 터였다.


그러자 할아버지 말씀이

“엊그제 미리 와서 용돈을 주고 갔어유!”라며 한껏 자랑을 하시는 것이었다.

대저 자식자랑처럼 좋은 건 다시없음이다.


이에 화답의 칭찬을 들으면 기분은 더욱 업그레이드(upgrade)되는 법이다.

“그러니 얼마나 좋으세요! 그럼 오늘은 자제분들이 안 오시겠군요?”


“글쎄 모르겄슈... 혹여 온다면 내가 좋아하는 회나 사 줬음 싶네유.”

이어진 할아버지의 말씀인즉슨 치아가 부실한 때문으로

다른 음식엔 관심이 없고 다만 싱싱한 회만큼은 잘 드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도 헤벌쭉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 하시는

할아버지와 잠시 대화를 더 나눈 뒤 집으로 들어와 아들을 기다렸다.

이윽고 도착한 아들은 나에게 양복을 한 벌 사 주는 것도

부족했던지 오리 한방 영양탕까지 사 주는 과용(過用)까지 마다치 않았다.


“우리 아들, 오늘 나 땜에 돈 많이 써서 어떡하니?”

“아니에요. 어버이날인데 당연히 이 정돈 써야죠.”


서대전 시민공원의 벤치에서 봄바람을 잠시 맞으며

아까 오리요리랑 먹은 술기운을 달래고 택시를 잡았다.


골목에서 차를 내려 집을 향해 걷노라니 이웃집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어느새 도착한 자제들, 그리고

손자손녀들과 함께 근사한 승용차에 오르고 계셨다.


순간 아까 하셨던 말씀이 떠올라 반갑게 외쳤다.

“할아버지~ 회 잡수러 가세요?”


할아버지의 입은 아까보다 확연하게 귀에 가 붙으셨다.

“그류!(그렇습니다)” 


헨리 나우렌은 ‘나를 기다려 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진부한 얘기겠지만 어버이날에 부모를 찾는 자녀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올 어버이날은 이렇게 지나갔다.


아들아~ 고마웠다! 수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