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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이면 공정무역 커피로


BY 일필휴지 2010-06-03

히말라야, 그리고 언제나 설봉(雪峰)으로 유명한 나라가 어디일까?

바로 네팔이다.


한 번도 가보진 않았으되 왠지 그렇게 고향의 정겨운 산하를

보는 듯 그렇게 살가운 풍경으로 다가오는 곳이 네팔이다.

이는 우선 내가 평소 좋아하는 가수 조용필의

불멸의 히트곡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그 근저를 이룬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


(그러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

산정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는 노래의.


이 노래를 예전부터 애호했던 연유는 멜로디도 좋지만

가사에 담긴 어떤 삶의 철학이 평소 나의 심지와 관련이 있는 까닭이다.

즉 아무리 물질만능주의 세상이라곤 하지만 나는 그럴지라도 비겁하게

하이에나처럼 먹이와 재물을 좇아 산기슭까지를 올라

어슬렁거리는 추접한 행동은 하지 않겠노라는 의지의 발동이 그것이다.


다 아는 상식이겠지만 하이에나라는 동물은 비겁함의 어떤 표본이다.

자연 다큐 TV에서도 자주 보듯 하이에나는

다른 동물(들)이 일껏 힘들게 잡아놓은 먹잇감을

비겁하게, 그리고 송두리째 강탈하는 그야말로 칼만 안 든 강도에 다름 아니다.


아무리 지금도 헉헉대며 없이 살긴 하되 줄곧 정직하고

옳은 길만을 걸어왔노라고 감히 자부하는 필부가 나라는 사람이다.

그러하기에 비록 산정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을지언정

비겁한 하이에나가 아니라 여전히 고고한 기상과

인품의 킬리만자로가 되고 싶다는 것이 나의 오롯하고 충만한 의지이자 다짐이다.


그런데 나는 왜 뜬금없이 네팔에 가고 싶었을까?

인구의 절반 이상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간다는 빈국(貧國)인 네팔에.


더욱이 부모를 잃은 고아가 많으며 에이즈와 조혼(早婚),

그리고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유독 많다는

그 나라이거늘 나는 어째서 그 나라를 연모(戀慕)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네팔은 이처럼 어려운 형편의 국가일망정 우리의 소싯적

농촌처럼 욕심이 없으며 또한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과 만족을 느끼는 국민성이 부러운 때문이다.


일전 글을 쓴 반대급부로써 ‘히말라야의 선물’이란 브랜드의 커피를 선물로 받았다.

이른바 ‘공정무역’, 그러니까 저개발국가의

커피 농부들에게서 정당한 가격으로 커피를 구입하여

생산자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그야말로 착한 비즈니스의 커피 말이다.


그 커피를 맛보자 지금도 공부하고 있는

모 사이버 대학에서 배운 강의 과목이 떠올랐다.


그건 바로 <세계 노동운동사>에 나오는 대목으로써

자본주의의 어떤 병폐와 폐해는 바로 소수의 부자에게만

부(富)가 집중되는 반면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오늘도

어제와 별반 다름없이 허덕이는 삶의 질곡과 빈곤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는 구절이었다.


공정무역으로 들어온 커피는 그래서 더욱 값지며 의미 있는 커피라 여겨졌다.

또한 유기농으로만 재배하였으며 해발 1,000~2,000미터의

고산지대에서 자란 100% 아라비카 프리미엄 커피라 하여

더욱 감칠맛이 새록새록 나는 걸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시판중인 거개의 커피처럼 여기저기 국가에서

수입한 커피(원두)를 두루뭉술하게 섞어 한국에서 볶은 뒤

시장에 내다 파는 커피와는 이미지까지도 사뭇 달랐음을 물론이다.


그 뒤로 나는 일부러라도 공정무역으로 들여온, 그리고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네팔 산(産) 커피만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