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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보증도 경계하세요!


BY 일필휴지 2010-06-10

 

오래 전 일이다.

같이 근무하는 직원 하나가 웬 서류를 두 개 들고 와 쭈삣쭈삣했다.


“홍 형, 제가 00 백화점 카드를 만들려 하는데 보증인을 하나 세우라네요(立保)...”

그러면서 나는 자신의 보증을 서고 대신에 그는 나의 보증인을 서겠다는.


만날 아침이면 접하는 회사 동료였기에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보증을 서 줬다.

얼마 뒤 발급된 백화점 카드.


하지만 그건 나중에 골치 아픈 곡절을 수반케 하는 단초였다.

그 직원은 나 말고도 다른 직원들에게서도 그와 같은 방법으로

맞보증을 선 뒤 어느 날 바람처럼 사라져 종적이 묘연했다.


그러자 백화점 측에선 그가 마구잡이로

쇼핑한 품목의 대금을 나에게 청구하기에 이르렀다.

당시로서는 얼추 한 달치 급여에 버금갈 만치의 거액이었기에 난감하지 그지없었다.


“보증을 서준 건 맞지만 저도 어려운 처지니 분할로 해 주세요!”

하지만 백화점에선 일시불로 갚으라며 막무가내였다.


싸구려 양말 하나조차 만져보지 못 하였거늘 오로지 보증을 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처럼 백화점이 강공책으로 나오자 부아가 활화산으로 솟았다.


“그럼 당신들 맘대로 하슈!”

이튿날부터 소위 깍두기 머리 ‘형님들이’

우리 집 대문 곁을 맴돌며 무언의 협박에 들어갔다.


그건 내가 보증을 선 그 직원의 백화점의

미불된 ‘빚’을 냉큼 갚으라는 살벌한 시위였다.

“무서워 죽겠어!”


겁이 난 아내의 종용에 그만 지인에게서 돈을 빌어 일시불로 갚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을 살다보면 갖가지의 무슨 무슨 치(癡)들과도 조우하게 된다.


음주가무의 장소에서 하지만 춤을 못 추는 몸치, 또한

길을 잘 못 찾는 방향치와 최신형 휴대전화의 기능조차 무용지물인 기계치 등...


여기서 거론되는 치(癡)는 말 그대로 ‘어리석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 한자가 사용되는 범위로는 치매(癡呆)가 있으며

백치(白癡)와 함께 노래방에 가면 노래를 할 줄 몰라

연신 음료수(술)만 마셔대는 음치(音癡)까지도 거론되는 것이다.


이같이 어리석은 이를 일컫는 우리말은 상당하다.

뭐든 창조성이 없이 남이 가르친 대로만 하는 이는 ‘가르친사위’다.


말과 행동이 거칠고 미련한 사람은 ‘데퉁바리’이며

똘똘하지 못 하고 어리석으며 수줍음만 타는 이는 ‘뱅충이’다.


여하튼 백화점 카드의 곡절이 반면교사가

되어 그 뒤로 한동안 타인의 보증은 서지 않았다.

예로부터 보증서는 자식은 낳지도 말라고 했다.


또한 보증을 잘 못 서 패가망신했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었다.

그렇긴 하더라도 인간의 망각의 동물이었다.


왜냐면 백화점 카드 보증 뒤로도 한 번 더 보증을

잘 못 서는 바람에 더한 곤경에 처한 적이 또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나같은 경우는 ‘부탁 거절 못 하는 치’가 아닐지.

아울러 사물에 어두워 아는 것이 없고 똑똑하지도 못 한

놀림조의 대상인 ‘바사기’ 역시 날 일컫는 건 아닐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