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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3학년


BY 일필휴지 2010-06-28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서울서 딸이 내려왔다.

“우산을 안 가지고 왔다고 하니 터미널에서 내려 기다리거라.”


우산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사랑하는 딸을 만났다.

“네 오빠도 잠시 전에 왔단다.

그나저나 아빤 오늘과 내일까지 1박 2일로 수련회를 들어가야 되니 이를 어쩌지?”


“하는 수 없죠, 뭐. 열공하고 오세요.”

“오냐~” 


3학년 동기생의 차로 충북 영동의 사이버대학

수련원에 도착한 시간은 그제(6월26일) 오후 5시 즈음.

장소가 한적한 시골이고 보니 쏟아지는 비의

양은 명실상부한 장맛비인 양 작달비로 대단했다.


“걱정이네! 이렇게 많은 비라고 하면 오늘 밤

11시에 치러지는 대 우루과이 전엔 응원단들도 많이 못 나오겠는 걸...”

“그러게 말입니다. 하여간 오늘 우리가 이기고 반드시 8강에 나갔음 좋겠네요!”


“암만~!” 

오후 7시부터 시작된 강의실에서의 수업은

월드컵 축구가 시작된 오후 11시까지도 끝날 줄 몰랐다.


궁금증이 발동하기에 아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아빠가 ’빡센‘ 수업으로 말미암아 꼼짝을 못 하니

우리와 우루과이 전의 결과를 실시간으로 알려 주렴!’


아들은 곧바로 현장 아나운서를 시작했다.

‘우루과이가 먼저 한 골 넣었어요.’


이런 이런!

지면 곧장 끝장인 18강에선 선제골이 제일이거늘...!


그러나 시간은 충분하니 반전의 계기를 서둘러 만드는 수밖에는.

그러한 염원은 다크호스 이청용이 그예 한 골을 만회했다는 낭보로 이어졌다.


‘와!!!♥♥♥‘ 

이같은 답신문자를 보내며 열광했으나 우리 축구는

한 골을 더 허용하는 바람에 결국 8강 행이 좌절되었다.


수업이 끝난 시간은 이튿날 새벽인 어제 02시 즈음.

식당에서 벌어진 이른바 뒤풀이 행사는 큼직한 홍게찜까지 잘 차려진 진수성찬이었다.


각자의 소개에 이은 술잔 돌리기는 새벽 7시까지 이어지는 또 하나의 강행군이었다.

“다음 달엔 제가 수필가로 등단합니다.

그러고 나면 우리 대학 수련원에 제 글이 수록된 책을 열 권 기증하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그건 그렇고 앞으로 뵈면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하니 지금부터 말 놓으세요.”


“그럴까.......” 

대전에서 날 태우고 함께 왔으나 술자리에선 쏟아지는 잠을

못 이겨 중간에 빠져나가 숙소에서 잠이 든 동기생,

아니 동지(同志)인 ㅇ형을 깨운 건 그 무렵이었다.


“더 자야 할 터인데 미안하지만 지금 출발하면 안 될까?

우리 아이들이 점심 경에 간 댔기에 보고파서!”

“그러죠, 근데 여태껏 술을 드신 거에요?”


“중간에 잠시 눈을 좀 붙였더니 이제야 술이 좀 깬 듯 싶어.

한데 어제 비가 많이 내리는 바람에

대전의 우리 동기들 중 셋이나 불참했더군.

여하튼 우리 더 열심히 공부해서 내년엔 나란히 영광의 졸업장을 받자고!”


고개를 끄덕이는 ㅇ형의 핸들 앞으로

새벽은 싱그러운 햇살을 동반하며 더 가까이 다가왔다.